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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31. 2021

기다림 이란 여백

  삶의 여백은 언제나 나에게 소중한 삶의 재료다.


 조금만 서두르고 리듬이 엉키면, 어김없이 내팽개쳐 자빠지듯 일도 삶도 그렇게 그르쳐 버렸다. 내 천성 탓이기도 하지만 나는 여백을 사용해 숨 고르기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람이었다.


 여백은 은근히 기대하지 않던 음식에서 놀라 맛을 느낄 때와 비슷하다. 앞만 보고 나아가거나 성찰 없이 인생을 살다 보면 여백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것 같다.     


나는 음악의 쉼표와 여백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숨 고르는 순간, 깊은 호흡으로 긴장을 줄이고 박차고 나가기 직전, 의도와 상관없이 막혀 있으나 낭비가 아닌 순간. 나는 그 순간의 기다림이 많이 설렌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나는 한해의 여백을 누린다. 크리스마스에서 새해까지의 일주일은 여백으로 쓰기에 손색이 없다. 지루한 삶을 때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일 중독이라면 아까운 삶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백의 활용인 듯하다. 여백을 품은 그해 마지막 한주는 월드컵 4강에 오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의 경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내가 한해를 잘 살았건 못했건 간에 한주는 세상과 싸우는 인생의 휴전이다.     




 미국에서 골프 칠 때 자주 그 생각을 했다. 내기에서 이기는 게임은 여백이 많아서 매홀마다 풍경도 감상하고 동반자의 얼굴도 자주 보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홀이 없어지는 것도 아쉬웠다. 그 반대 경우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OB존을 사랑하고 정신은 산만하여 바닥나는 주머니 속 사정이 초조해 이 빌어먹을 경기는 언제 끝나나 고통스럽던 적이 많았다.  내가 그 곤혹스러움을 우스개 소리로 말했더니 미국사는 큰누나는 다음번 라운딩 때 꼭 쓰라며 빳빳한 백 불 지폐를 세장이나 주머니에 찔러 주었다.


 1불짜리 내기하면서 300불이 왜 필요하겠냐지만 난 뒷주머니에 은밀한 응원 판돈을 숨기고 경기했고 그날 100불이나 땄다. ( 매홀 타당 1불짜리 내기에 3,4등은 40%,60% 밥 사기)  그날 나는 일등인데 식사도 사고 "오늘 기분이다" 면서 딴 돈도 돌려주었다.  선배가 말했다. "오늘 되는 날의 비결이 뭐야?" 난 끝까지 누나의 비자금을 말하지 않았다.


 삶의 여백은 일이 잘 풀릴 때 즐겁게 맞이하지만
일이 안 풀릴 때 억지로 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나는 우리나라 생태탕을 무척 좋아한다. 

 야들야들한 흰살이며 고춧가루 듬뿍 들어가 칼칼하고 얼큰한 국물은 겨울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마력이 있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맛은 생선 내장이었다. 암컷의 알주머니 곤이가 듬뿍 들어 있고 꾸불꾸불한 수컷 생식소 이리. 그러나 내 머리를 신년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곤이도 이리도 아닌 애(간)였다. 나는 생선 애를 먹을 때 무한 쾌감을 느낀다. 


 꽃게 껍데기 안에 밥을 비벼먹는다거나. 김병만의 정글에서 먹는 랍스터 내장에도 그런 맛이 난다. 비슷한 맛이지만 역시 생태 애를 따라갈 맛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생태탕을 먹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음식을 기다릴 때 기다림의 여백이 설렘을 낳고 설렘 끝에 비로소 미각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비밀 말이다. 뇌가 터지는 맛의 폭죽. 결국 나는 기다림의 미학을 그곳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기다림을 여백으로 사용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삶의 여백을 멍 때리기나 쉬는 일로만 생각하던 습관이 설렘 머금은 기다림으로 바뀌게 된 것은 사실 요즘 생긴 일이다.

 

 올해 한 해는 즐거움을 주던 수많은 동기들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혼자 지내기는 지루하다. 어쩌면 어머니 지구가 장속에 나쁜 세균, 인간을 바이러스와 기상재해로 날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남기"보다 '어떻게 잘 살아남기"가 마음에 숙제가 되었다.


 나는 기다림의 여백, 한해의 마지막 주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살아서 뭉클거리는 설렘의 저력을 다시 느끼고 싶다. 


호모 코로나 사피엔스는 미각 잃는 것보다 삶의 설렘과 기쁨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할지 모른다.  


나는 새해가 오기 전, "한편 절망적이지만 여전히 설렌다"는 고백을 내 삶의 여백에 적는다.         


  https://youtu.be/3pH7loAMu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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