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아저씨는 안내문을 따라 정확히 벨 한번 누르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저 소리의 주인공은 아마 옆집 할머니 일 것이다.
저 다급한 벨소리는 옆집 할머니의 급하지 않은 용무가 내게 있다는 소리다. 문을 열자 겨울철이라 보기 힘든 할머니는 행색이 초라한 몰골로 나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마스크 너머로 작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 동네 코로나가 터졌나벼, 마을 광장에서 코로나 검사한대니까. 어여 가봐"
시카고에선 매일 새벽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침 뉴스엔 어김없이 어젯밤 경찰 총격에 맞아 죽은 용의자와 범인 총에 맞아 다치거나 죽은 피해자 이름이 흘러나왔다. 미국에 총기범죄는 매일 듣는 사이렌 소리만큼 흔한 사건이고, 총기 문제는 선진국이며 동시에 후진국인 원시 미국의 민낯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중진국 한국보다 민주주의 경험이 많아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를 들려주고 각자가 판단해서 사는 나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그래서 diversity라는 단어를 처음부터 좋아했다. 다양성은 다름에 대해 얼마만큼의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수준"이라 그렇다. 미국은 사람의 존엄에 대해, 여성과 아동, 동물, 장애인, 약자의 권리에 대해 평등을 지켜내고자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사는 듯 보인다. 그래도 매일 들리는 사이렌 소리는 참 싫었다.
우리 마을에 그 사이렌 소리 없는 조용한 119 구급차가 등장했다. 우연히 나는 그 차를 따라 운전하다 제발 우리 골목 안으로 안 들어가길 간절히 빌었다. 분명 코로나 환자가 생긴 것 같았다. 그러나 응급차는 우리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우회전해서 빠져나갔다. 휴, 우리 골목은 이상이 없나 보다. (난 몰골이 망가진 할머니를 의심하고 있었다) 응급차는 교회 옆에 멈춰 분주하게 환자를 싫고 방호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방호복 입은 사람은 오징어 게임에 나온 관리자 네모 세모 이응 같았고 환자는 초록색 추리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