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Dec 21. 2021

여행 칸타빌레

즐겨 듣는 클래시컬 방송에서 칸타빌레(노래하듯이) 음악을 소개했다. 잠시 주춤하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 삶엔 왜 칸타빌레가 없지? 며칠 동안 나는 이 생각의 답을 찾느라 골똘히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답은 멀리있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에 외국인(내 국적이 여기가 아니라서) 코로나 부스터 샷을 문의하면서 그 답을 찾은 것 같다.   "내가 우리나라를 여행 중이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루한 삶의 공간에서 일탈을 누리는 여행, 그곳엔 칸타빌레가 있을 것 같았다.  


"내 삶도 우주여행인데, 그것도 잊었네..."




코로나가 지금 같지 않을 때, 가족들과 <제주 한 달 살기> 여행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애견 동반 여행이라 계획부터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고 속 깊은 준비도 있어야 했다. 우리보다 빨리 견생 여행을 마치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녀석에게, 우리가 함께 하는 추억은 짧을 것이 분명해 여행은 더 각별했다. 비행기로 쉽게 가는 방법은 포기하고 서울에서 남쪽 끝 완도까지 SUV로 운전해 차를 배에 싣고 제주로 넘어가는 길을 택 했다. 차에는 우리 삶의 무게만큼 짐이 한가득, 나머지 가족은 자기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로 들어오라 했다.


 제주 가는 배는 대학 졸업 때 친구와 단둘이 완도에서 타본 것이 마지막이라  설렜다. 승객은 적당히 있었지만 붐비지 않는 새벽 배편에 별도 마련된 아무도 없는 애견 전용방에서, 난생처음 배 타는 겁 많은 아기 왕자님의 두려움과 함께 웅크리고 앉아 여행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여행은 시작과 끝이 있었다.


 시작할 땐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 여행 중인 것을 늘 잊었고 떠날 땐 지나간 시간을 늘 아쉬워했다. 우리는 인터넷 구석구석을 뒤져 어렵게 애견 전용 단독 펜션, 마당이 있는 집 한 채를 예약해 놓았다.


 배는 새벽에 완도항을 출발해 어둠을 가르고 이른 새벽 제주항에 도착했다. 마치 미주노선 밤 비행기를 타는 기분이었다. 펜션 입실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새벽 바닷가를 산책할 웅장한 계획을 세웠지만 바람은 차고 거리와 해변은 황량했다. 펜션 주인에게 전화해 조기 입실을 부탁해 보았지만 예약한 집은 1박 손님이 퇴실하고 청소 마치려면 정오는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거지가 따로 없었다. 전날 하루 종일 운전해서 폐인모드에 홈리스 같았다. 스마트 신의 도움을 받아 애견 동반 식당은 겨우 찾았지만 아침식사 시간이 되려면 한참 멀어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거지들은 차에서 잠이 들었다. " 똑똑똑" "여기 오신 거예요?" 아침을 여는 식당 주인의 노크에 잠을 깼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그의 친절과 비교하기 힘든  맛없는 아침을 먹었다.


" 인터넷 신은 거짓말쟁이 야, 아마 숙소도 사진하고 다를걸?"


여행은 좋은 것보다 나쁜 기억을 더 선명하게, 내가 좋게 각색해 추억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서 웃는 일은 난관에 부딪힌 기억뿐이지 않은가?  


 시작하는 날부터 음식 맛 때문에, 설렘은 우리 곁을 말없이 떠났다.  

  그리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 펜션 입구에 들어서니 작은 애견 운동장과 그 유명하다는 애견카페, 단독 주택 펜션 다섯 채가 작은 마을처럼 아름다운 돌담을 끼고 나타났다. 마지막 집이 한 달을 살아갈 우리 집이었다.  역시 사진은 맞는데 실물은 틀리다.


 우리는 가구 배치부터 전날 투숙한 개 냄새까지 청소에 청소를 거듭하며 불편했고 설렘이 떠난 자리엔 불만이 친구처럼 찾아왔다.


 "여기서 한 달을 어떻게 살아? 미친 거 아냐? 침실과 주방이 붙어 있으면 어떡해?

하여튼 업자들은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


 그뿐 아니라 사진에 없는 축사 냄새까지(가까운 곳에 식용 말을 키우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불편한 감정이 포기로 바뀔 때까지 아마 일주일쯤 걸린 것 같다. 그때 기쁨도 자기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인생이 원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가는거지 칸타빌레는 무슨?


 그래도 한 달 살기는 그렇게 보름이 훌쩍 지나 새로 꾸민 집 같이 되었다.  우리 집은 서재로 만든 책상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제주여행이 우리 인생과 너무 닮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싸웠고 위기도 맞이했고 화해도 했다. 행복감 대신 피로와 거친 추억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와 달리 새로운 자연 냄새와 말똥 냄새를 사랑하는, 아침 산책길에 밖에 묶어놓은 말님에게 인사하러 가는, 하루 걸러 먹는 바비큐 고기에 쉽게 적응하신 우리 댕댕이는 칸타빌레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산책하던 해변에서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녀석은  냄새를 타고 도망갔다. 목줄 하고도 가끔 야생쥐 냄새를 맡으면 부리나케 뛰던 녀석이 목줄 풀리니 빠삐용 같았다. 요리조리 피해 해변을 탈출하고 찻길 입구에서 9회 말 투아웃 펜스 앞에 온몸  던진 선수처럼 놈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웃고 우리는 진심 울부짖었다. 우리는 교통사고로 애견을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제주항에서 돌아가는 배를 탈 땐 온몸이 멍든 것처럼 얼얼하고 영혼은 탈탈 털린 채 피로가 우리 일행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제주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을 배경화면 슬라이드 쇼로 설정했다. 


바로 그때, 제주에서 가출 설렘과 기쁨이 돌아왔다. 신기한 순간이었다. 


과거로 냉동시킨 추억이 나를 설레게 했다. 사진은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이 내 삶에 가장 멋진 시간 중에 하나였다고 말했다. 비로소 나는 내 삶 칸타빌레 들었다.


"저기 좀 봐봐. TV에 우리 살던 집 나온다. 어머 가구도 우리가 바꾼 위치 그대로네, 세상에"


방송에서 연예인이 내가 자던 침대에서 자고 내가 요리하던 부엌에서 문어를 삶고 내가 쓰던 책상을 사용하며 작가가 써준대로 칸타빌레를 흉내 낸다.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네..."   

     


         

https://youtu.be/dYzOTBsGi74

          


 


        

작가의 이전글 가짜 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