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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15. 2021

가짜 얼굴

 돌아가신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운 분 이셨다.

하지만 그분도 세월의 무게는 이기지 못하고 나이 들자 점점 무력해지셨다. 무서운 아버지가 무섭던 시절, 나는 그분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지인과(특히 여성) 대화할 때는 참 부드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콧소리? 애교 섞인 목소리? 나와 개인적으로 관계없는 그 애교 섞인 콧소리?



 

나는 나에게서 그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랐다. 백화점 직원에게 내가 아버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목소리 좋은 여자 상담원과 통화할 때도( 우연히 통화가 녹음돼서 지우다가 들었다) 내가 아버지 목소리를 냈다. 애교 섞인 콧소리.  나는 그래도 자식이 항상 부모보다 많이 나아진다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자식은 부모보다 못하거나 비슷하거나 나아도 겨우 하나 정도 낫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내 모습은 좀 시크하고 내성적이다. 그런데 남들이 오해하는 내 모습은 친밀하고 외향적이다. 나는 사람들과 오래 어울려 있거나 대중을 상대로 일을 하고 나면 극도로 피곤을 느낀다. 누구한테 들었는지 잘 모르지만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면 외향적이고 혼자 있을 때가 좋으면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기억났다.


왜 나는 가짜 얼굴로 살고 있을까?


 나는 남잔데 참 일찍 성형 수술을 했다.(지금 용어로는 성형시술) 내 미간 아래쪽 눈 사이에는 새끼손톱만 한 분화구가 있었다. 그것은 어릴 때 생긴 수두자국인데, 멀리서 보면 안 보이고 가까이 보면 알만한 자국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흉터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는 로션으로 거기를 메꾸고 다녔다. 친구들이 "너 코에 뭐 하얀 거 묻었어"하면 "어 그래?" 하면서 로션을 쓱 비벼 지웠다. 안경을 쓰면 흉터가 안 보일 것 같은데 이런, 나는 시력이 양쪽 다 2.0이었다. 눈이 나빠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시력은 1.5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 인생에 기회가 온 것은 군대 시절이었다. 내가 초급장교 때, 소식통에 의하면 "비행단 본부에 성형외과 군의관이 새로 부임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내 코에 새겨진 열등감을 지우고 싶었다.


"글쎄 이건 뭐, 수술하자니 애매하고, 놔두자니 좀 그렇고, 그래도 굳이 원하시면 해드리죠"


군의관은 이십 년 넘은 내 열등감을 쏘아보며 마지못해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준다고 했다. 휴가를 냈다. 내가 성형수술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눈부신 수술실 조명이 켜지고 마취를 했는지 안 했는지, 난 코에 붕대를 붙이고 귀가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분화구 2/3가 없어졌다. 내 열등감도 그 크기만큼 사라졌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내 눈은 점점 나빠져 안경을 쓰게 되었고 안경테가 내 분화구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 나머지 열등감 1/3은 안경이 해결해 주었다.  내 코의 분화구 열등감은 이내 관심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순리일 텐데 성형을 해서 딴 사람이 되면 원래 만나야 할 운명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또 성형한 얼굴은 부자연스럽고 ai로봇 소피아 같아서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내 친구는 "성형하면 어때 이쁘면 그만이지" 해놓고 자기 딸한테는 "내 시신을 밟고 가라! 죽어도 성형 반대!"다.


 대통령 후보 부인이 성형과 학위, 경력 논란에 휘말린 것은 우리 사회의 맨얼굴이고 세상을 거꾸로 역영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가끔 한국을 방문하며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언어유희 같은 말장난이다.  공익광고나 지방자치 단체 홍보문구가 때론 어법에도 맞지 않게 거리와 방송에 노출되고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말만 성숙해졌다.  선진국은 사람의 의식이 성숙한 사회를 의미하지 않을까. 밖에서 살다 보면 성숙한 나라도 얼마나 많은 위협과 부조리, 문제를 안고 사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아름다운 도시 시카고도 미국에서 가장 쥐가 많은 도시다.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 넌센스다. 




 우리나라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과 남의 박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현 정부가 김정은을 만났던 장면이나 옛날 의장대, 순국영령을 모셔오는 행사, 등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지만 왠지 부자연스럽다.

국가가 성형한 것 같다고 할까? 의지를 가지고 보여주려는 것? 자연스러우면 좋을 텐데...


어려서 나는 얼굴에 남은 작은 흉터로 열등감으로 느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얼굴보다 건강과 인간 내면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내과의사 와이프에 성형외과의사 엄마인 누나는 "보톡스 하자, 얼굴에 실 넣으면 너 찌그러진 얼굴 바로 돌아온다"  난 별로 관심이 없다. 솔직히 난 "유산소 운동, 근력운동, 유연성 운동, 혈압"에 관심이 더 많다. 아프지 않고 살아야 죽을 때도 살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가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할머니 한의사 한분은 "죽을 때 심정지가 와서 억! 하고 가는 것" 이 소원이란다. 처음엔 그 말을 이해 못 했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니 아버지가 평생 화끈했다고 말하다 우셨다.  


 요즘은  내 가짜 얼굴을 버리고 원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내 가짜 얼굴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얼굴이다. 나아만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 살던 아람인들, 그 가운데 군 사령관 나아만은 속은 문둥병자고 겉은 갑옷으로 강해 보였다. 그러던 그가 치료받은 이야기는 내 직업의 갑옷을 생각나게 했다. 직업의 갑옷을 벗고 한없이 초라해진 사람들. 내 친구 중에는 여전히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겸손한 인격이 있는가 하면 고위 관료로 살다 나와서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요즘 동생의 시골 아지트를 자주 방문하는 덕에 마음이 많이 건강해진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안 만나니 좋고 일도 인터넷으로, 글도 인터넷으로, 노동은 집안에서, 남에게 잘 보일 일이 전혀 없다. 처음에는 옆집 노부부에게 잘 보이려고 무진 애쓰다가 지금은 무심하게 지낸다. 그분들과 내 삶이 너무 달라 공통분모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 주엔 "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항상 내 편이 되어준 동반자 승이 형이 온다.


<메뉴: 바비큐, 순두부찌개, 청국장, 우거지 된장국, 미역무침, 도라지 무침, 잡채/ 브런치/

청소, 침대 시트 교체/ 외식: 추어탕 >


메모지가 차고 넘친다. 그래도 가끔은 혼자보다 사람이 좋은가 보다...

미국에서 백신 맞은 지 오래라 부스터 샷 예약을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mERRY pFIZER-MAS!

 

진짜 얼굴로 웃으며 거울을 보니 좋다.

힘들때 힘들다고 말하면 더 힘들더라.


     https://youtu.be/v_YjSKLqV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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