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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08. 2022

걱정과 고민

 걱정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구정 연휴에 서울 올라간 것이 화근이었다. 원래 계획은 짧고 굵게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사람일은 그렇더라, 계획한 대로 되는 법이 없다. 시골집을 비울 때는 전기, 난방, 수도관, 잠금장치 정도 기본으로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하는데 나는 오랜만에 방문한 선배와 서울길을 동행하는 바람에, 아니 선배가 민항기 기장 출신이라 이륙시간을 준수하는 칼 같은 성격 때문에 승무원처럼 쫓기듯 여행을 떠났다.


 걱정이 지렁이 처럼 실실 머릿속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구정이 지난 다음날부터였다. 친족들의 호출이 여기저기 이어지고 시골로 돌아가는 날은 하루하루 미루어졌다.  차편이 뒤늦게 마련되자 머릿속 걱정은 머리끝까지 차고 들어와 격랑이 기 시작했다.


"도둑이 들었으면 어쩌지?"

제발 유리창 깨고 들어오지만 말아라, 문 따고 들어와 가져 갈 것 없으면 문단속 잘하고 나가라...


"수도관이 얼었으면 어쩌지?"

분명 화장실 샤워꼭지 똑똑 물 내리게 하고 왔나? 안 왔나? 아, 생각이 안 난다...


"전기는 다 내리고 왔겠지?"

맞아, 나올 때 주방 불을 안 끄고 온 것 같아.  침실 전기장판도 확인 안 했어. 요즘 전기세 많이 나오던데 불날 수도 있어...


"벌레가 들어와 사는 건 아닐까?"

아, 바퀴벌레, 꼽등이, 추우니까 집안 가득 모여 파티를 즐기는 건 아니겠지?


"보일러 온도 확인했나?"

16도로 세팅한 것 같은데 너무 높게 하고 왔나? 기름이 떨어진 건 아니겠지?



내 머릿속엔 도둑이 유리창 깨고 들어와 집안에 찬바람이 씽씽 들어오고 깨진 유리창으론 벌레랑 쥐가 들어와 난장판 만들고, 우리 집 순찰묘 냥이가 쥐 잡으러 온 방을 뛰어다니고, 아니 아니야 불나서 집이 없어졌겠다.  옆집은 내 전화번호 모르니까 재만 남았을 거야...


마침내 나는 칼을 빼어 들었다.

걱정으로 점령당한 내 머릿속 지렁이를  이성의 칼날로 단칼에 정리해 버렸다.





 

 두 주 만에 돌아온 시골집은 상상  그 이상 이었다. 


우선 집은, 도둑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 내가 걱정했던 잠금장치, 수돗물 내리기, 전기장판, 주방 전기, 모두 완벽하게 해 놓고 나왔다.  냉장고 음식은 2주가 지났는데 부패하지 않고 어떤 것은 정리해서 먹을 수도 있었다. 더 웃긴 것은 우유 유효기간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버리려다 맛을 보니 개봉하지 않아 그런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음식쓰레기 분쇄기잖아 먹어서 처리해야 해. "아, 뭐야! 그거 먹다 배탈 나서 병원 가면 돈이 더 들겠다. 버려!" 전화 너머로 가족들은 무식한 나를 투표할 국민처럼 세차게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우유 한통을 꿀꺽꿀꺽 다 마시고도 아프지 않았다.


 한데 모~든 것이 완벽한 듯 하나 다른 곳에 문제가 터졌다.


 난방 보일러 에러가 나서 집안 온도는 6도로 찍혀 있었고, 빨간색 스패너 모양 경고등이 번쩍번쩍 난리를 치고  난방이 미치지 못하는 주방에 연결된 화장실 좌변기 탱크는 1센티정도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아 놔, 정말 나는 꼬박 하루 동안 뜨거운 열정을 부어 차가운 냉기를 녹여야만 했다. 보일러는 모든 수리의 기초 "껐다- 켰다"로 해결하고 방 온도를 정상으로 만들기까지 1도와 사투를 벌이다 늦은 밤이 돼서야 겨우 사람 사는 온기로 회복시켰다.


피해상황보고(질병관리본부)
감나무 씨앗, 발아시켜 싹튼 아이들 열두명 전원 사망
화장실 변기, 수도, 동파 직전 구조
냉장고 음식 다수 사망, 소수 구조
보일러 동파 직전 구조


그래 이 정도면 양호한 거야, 내가 아무리 급해도 생각보다 뒤처리 잘하는 사람인 것은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그렇지 내가 소싯적 별명이 "용의주도 미스터 강"이었잖아 이쯤은 돼야지...




걱정은 때로 현실이 되고 그러나 자주 망상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곤 가끔 걱정보다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한다. 걱정은 지나치면 병이고 너무 없어도 삶이 재미없다. 그래서 걱정은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우는 것"이라고 사전은 말한다.




 나는 도시생활이 몸에 밴 자로서 시골집이 "법인"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사물이 인격을 가진다는 생각은 처음이지만 따지고 보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름대로 고유한 존재양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느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면 쉬이 낡을 것이고 낡음은 물리법칙을 따라 소멸로 향해 가겠지.


 그래서 가끔 오래된 물건에서 번뜩이는 영혼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집에서 가까워 자주 방문했던 헬렌 조지아에서도 그랬다. 미국 동남부 애틀랜타 근교에 작은 유럽 마을인 헬렌 조지아는 아름다운 과거의 유럽으로 항상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그곳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녔다. 즐비한 엔틱 상점에 백 년은 넘은 듯한 다기들과 장식을 만날 땐 그 찻잔으로 험난한 항해 끝에 도착한 동양의 차를 마시는 유럽 귀족들이 연상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시 환상에 빠져 그 시대 혼령들을 느꼈다.


요즘은 메타버스 시대라  과학적 도구들이 많지만 옛날, 야후에서 지도를 프린트해서 길 찾아다니던 시절에는 미국의 앞서가는 모든 것이 다 신기했었다. 나는 서부 디즈니 랜드에서 가상 영상을 이용해 과거의 사람들이 홀에서 춤 추고 내 옆에 앉아 있던 혼령 같은 특수장치에 흠뻑 빠진 적이 있었다. 아이들 데리고 디즈니 가서 내 취향저격으로 더 신나서 즐긴 셈이다. 그땐 아마 내가 애 어른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하기사 지금도 어른 가면 벗으면 영락없는 애 지만.


헬렌 조지아 엔틱 상점에서도 디즈니 같은 환상을 느꼈다. 그때부터 아마 나는 엔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미국은 워낙 거라지 세일이나 낡은 것을 즐겨 쓰는 버릇이 있어 우리처럼 웬만하면 새것으로 바꾸는  습관과 다르게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중고 물건을 마주할 때마다 이 물건을 쓰던 옛 주인을 상상한다. 그리고 물건이 내게 운명적으로 입양된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죽으면 이 물건은 또 누군가의 곁으로 가게 되겠지.

한국에서 당근을 만나서 당근 좋다. 다양한 중고 물건들을 교환하고 공유하고 아끼며 살면 좋겠지.


집을 인격이라 느끼면 인격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대부분의 걱정은 사물보다 사람에게 더한 것 같다.


나는 걱정보다 고민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걱정이 에세이 정도 글감이라면 고민은 단편소설 이상이라 생각한다. 에세이가 현실적인 자기 경험에서 주로 탄생한다면 소설은 진짜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뭐쥘 상상력과 창의력,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고민은 소설과 견줄만한 영역이라고 느낀다.


고민/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 (고뇌)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에서 고뇌했고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고민했다.  


삶을 고민하며 하루를 채우고 싶다.

집을 비운 사이 피클 담그려 보관한 비트에 곰팡이가 들어 칼로 다듬다가 비트가 피를 많이 흘렸다.

도마가 수술실처럼 변하고 나는 수술실 외과의사처럼 되었다.


붉은 피 흘리는 비트가 사람하고 똑같아 보다.        





       https://youtu.be/820eOOav6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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