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영화 보기 전 사전 정보 찾는 습관을 좀 줄이려고 노력한다. 스포를 보고 영화에 들어가면 이야기의 힘도 놓치게 되고 산만해져서다. 하지만 이번에도 절반의 실수를 했다. 습관처럼 선을 넘어 버렸다. 그래도다행히 정신을 차리고 멈추어 서는 바람에 마지막까지이야기의호기심을간직하고보느라 그나마 깊은 감동을놓치지 않았다.
줄거리
혈중 알코올 농도 0.05%로 일상이 달라진다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마틴, 토미. 페테르,니콜라이는 의욕 없는 학생들 틈에서 일의 열정도 사라지고 삶은 우울하기만 하다. 그들은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주연 마틴은 친구들과 함께 실험에 들어간다. 그러자 그들의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관계에서도 활력이 생긴다. 하지만 그들에게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언제나 최소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 밤 8시 이후 술에 손대지 말 것!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는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한다, 과연 술은 인간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까?
술과 삶
나는 이 영화에서 술을 보고 삶을 읽었다. 영화의 덴마크 원제 <Druk>는 음주를 뜻하며 <Another round>는 "한잔 더"라는 뜻이다. 포스터에서 이미 청중의 시선을 압도하는 매즈 미켈슨은 덴마크의 국민배우며 그는 영화 <더 헌트>에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연기파 배우다. 또한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시류에 반하는 기술적 시도를 여러 차례 도전한 흥미로운 감독이며 이 영화는 영화 촬영 직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딸 아이다에게 영감을 얻었고 또 헌정하였다.
16세가 되면 음주가 가능한 덴마크 청소년의 관대한 음주문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되고 교사들의 술로 연결되면서 처음엔 술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차 나는 영화에서 술보다 삶을 더 진하게 느꼈다.
사랑의 묘약처럼 술은 열정의 묘약으로 장치되었으며 권태의 위력을 실감했고, 어느 부부나 갖는 부부생활의 영원한 평행선도 보았다.
열정의 묘약
열정은 언제부터 식을까?
나는 처음의 호기심이 충족되면 바로 식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열정 가득한 생명체여서 호기심에서 모험으로 동력을 얻어 끊임없이 욕망을 쫒는다. 욕망의 에너지는 열정이며 매번 정복하는 과정에서 열정은 계속 식고 그 열정을 뜨겁게 달궈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물을 만든 신을 넘어 술을 창조한 인간은, 적당한 음주로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불편한 현실을 잊는 통로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적어도 취해 있는 동안은 어머니 자궁의 가장 원시적인 안전에 머무를 수 있으니, 아니 불안에서 도피할 수 있으니, 적당한 술은 식어가는 열정을 되살리고 모험과 도전에 다시 익숙해질 장치라고 가정한 셈이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정치가들의 다큐 필름을 영화에 삽입한 것도 역사의 지휘자들이 술에 취해 연설을 하고 의사결정을 했을법한 장면들을 감독은 굳이 증거처럼 남긴다.
그뿐인가? 히틀러가 모범 인간 같지만 근면한 삶의 태도, 술 없이 사는 건강한 생활습관, 술 안 먹는 사람이 성실하다는 편견이 그의 악마본성을 가려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음주운전 농도 0.05% 어쩌면 미국에서는 "팁시 tipsy"라 하고 한국에서는 "알딸딸" 정도의 기분 좋은 상태는 네 명의 교사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주인공 마틴은 식어버린 직장에서 활력을 찾는다. 그는 가정에서도 일에서도 아니 삶이 통째로 무기력에 빠져 있었고 친구들은 그런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가 활력을 찾고 창의적인 수업에 임하자 학생들도 살아난다. 무능하고 지루한 교사에서 유쾌하고 정력 넘치는 사람으로 알코올 0.05%는 열정의 묘약이 된다.
평행선을 달리는 부부관계도 교차점을 만난다. 가족 캠핑에서 몸으로 만난 부부는 오랜만에 성적인 만족을 경험하며 섹스에 담긴 사랑의 감동을 맛본다. "우리가 그리웠어"라는 대사는 (해석이 잘된 것으로 간주할 때) 감동적이었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도전을 선택하고 우리 인류는 얼마나 후회를 하고 살아왔던가. "우리"를 잃어버린 우리는 그 우리를 그리워한다. 사랑의 묘약이 효력을 다했을 때 열정의 묘약 0.05%는 사랑도 깨워주었다. 나는 여기서 감독의 예리한 성찰을 느꼈다. 피할 수 없는 부부생활의 평행선에 대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권태의 위력
권태倦怠 [권ː태] :명사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술이 열정의 묘약이라면 그 반대에는 권태가 자리하고 있었다. 권태는 바이러스 같아서 삶의 모든 영역을 마음대로 통과하며 삶을 파괴한다. 우리가 슬럼프에 빠졌다면 그것은 권태의 중증에 해당한다. 나 역시 얼마 전 글 럼프에 빠져 글을 쓰기 힘들었다. 독자도 없는데 뭐하러 여기에 글을 올리나, 그래도 한 분의 독자를 위해 써야 해, 나는 분명히 글재주가 없어 등, 나는 글럼프에 빠진 나를 추슬러 겨우 지난 작품을 내놓고 지금 영화평을 힘겹게 치고 있다. 권태는 직업, 취미, 봉사활동, 건강관리, 부부생활, 신앙, 우정 등 모든 것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한다.
우리가 권태를 가볍게 여기고 우리 삶에 감염된 것을 무시하면 중증으로 번져 죽을 수 있게 하는 무서운 정신 인자다. 사랑, 용서, 화해, 미움, 분노 같은 추상적 단어들은 보이지 않고 만지지 못하기에 맘몬(돈) 신보다 작아 보이지만 빙산처럼, 이런 정신적 요소는 물로 이루어진 사람의 수면 아래 실체일 수도 있다.
나는 음악교사 페테르가 음악시간에 학생을 지도하던 노래 'i danmark er jeg født'에 깊이 매료되었다.(글 말미에 영상을 추가했다) 피터는 권태에 빠진 노래를 0.05% 열정으로 구출한다. 그의 열정은 권태에 빠진 아이들에게 영감을 자극하고 노래는 감동으로 변한다. 이 영화에 담긴 피아노 음악과 심지어 덴마크 국가에서도 그 감동을 나는 느꼈다. 권태는 음악도 시들게 만들지만 열정을 다시 주입한 음악은 우리를 감동으로 감격하게 한다.
부부의 평행선
부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평행선을 달린다. 우리는 그때 마치 사랑을 잃어버린 상실을 경험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정이란 새로운 열차에 갈아타면 결혼이 오직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모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의 우리는 과거보다 보편화된 이혼 사회와 미혼 사회를 통과하고 있지만 선진국은 종교나 결혼에서 우리보다 먼저 우리가 지금 겪는 사회적 경험을 통과했다. 내가 경험한 미국은 개인사에 관심도 없지만 이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종교도, 기독교만 보면 최소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정도는 구분하고 살아간다.
부부관계에서도 남녀차별의 종속의 관계, 경제적 지위에 따른 갑을관계가 아니다. 자녀 역시 내 것이 아닌 동반자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학부터 자립하고 학자금 대출은 직장을 얻고 스스로 갚아 나간다. 물론 부모에 대한 책임에서도 우리보다 자유로운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부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행선을 달린다. 나는 사랑이란 욕망이 사라진 그 평행선에 여전히 삶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기차 철도 같은 평행선에 있는 한 우리는 배우자의 소리를 듣는다. 마틴의 아내가 원했던 "우리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사랑의 원본을 찾는 간절함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변해서 익어가는 변형에대한 무지일 수도 있다.
문제는 평행선에서 탈선한 파국이다. 평행선에서 서로의 소리를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부부라는 열차는 탈선하고 만다. 감독은 부부의 평행선을 꼭 잡고, 마틴의 처연한 삶의 요동에서도, 마지막까지 가고 싶어 한다. 나는 이 지점이 참 좋았다.
과욕, 죽음
영화는 0,05%를 위반하고 만취에 진입한 네 친구를 수렁에 빠트린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신을 넘어서듯 인간의 욕망은 탐욕과 친하게 지낸다. "더, 더, 더, 더, (음주단속처럼)... 어나더 라운드" 그들은 선을 넘고 절망의 내리막길을 과속으로 폭주한다. 마틴의 회복한 부부관계는 다시 깨지고, 0.05%의 힘으로 체육시간에 루져 소년을 사랑해준 체육교사 토미는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애견은 어디 갔을까?)
영화는 술의 과욕이 욕망을 타고 들어와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물리적으로는 토미만 죽었지만 나머지 세 친구도 삶에 사망선고를 받는다. 엄밀히 말해 네 친구는 다 죽었다. 영화는 이 어두운 죽음에 공을 들여 밀양을 비춰 주지만 무거운 죽음의 슬픔은 모두를 질식시킨다.
감독은 학생들의 졸업과 마틴의 춤으로 슬픔의 어둠에서 우리를 구출한다. 실제 발레리나 출신의 매즈 미켈슨은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춤의 마법에 걸린 댄서처럼, 갑자기 주위를 밝게 만들더니 결국 죽음을 덮어 주었다. (좀 의아한 삽입이었지만 용서할만한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