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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07. 2022

치유의 여정

 가슴 아프게 맞는 올봄은 전쟁과 화재, 정치인의 핏대 선 외침만 난무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깨어남도 있다.


 아무리 세상을 초연하려고 노력해도 세상 아픔의 파장이 은밀히 우리 마음에 닿으면 우리는 이내 진한 픔을 느낀다. 그 픔에서 나는 치유라는 단어를 마음에서 떠올렸다. 모든 파괴적 폭력에 미력하게나마 대응하는 약자의 방어가 치유 밖에 없다는 생각에 미치다가 갑자기 배달 온 나무를 만나며 정신을차렸다.


"이 녀석들이 이래 봬도 3년 정도 자란 건강한 놈들입니다."


 화원 주인은 태양을 이겨낸 시골 사람답지 않게 단정하고 뽀얀 피부를 가진 젊은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아버지 가업을 이어받아 같은 곳에서 무려 40년 된 화원을 운영하는 알찬 청년이었다.

 아직 리모델링이 끝나지 않은 우리 시골집에 나무라도 심으면 겨울을 힘겹게 견딘 잔디들과 어울려 한껏 수려해질 것 같은 상상에 들떠 나무를 맞이했다.

 

" 처음에만 물을 듬뿍 주시고 분갈이 용 흙과 주변 흙을 잘 섞어 심으시면 됩니다"


화원 주인 너에겐 나무 심기가 간단한 일 같지만 나는 아직 분갈이 한번 해보지 못한 도시 남이라 전부 버거운 일로 느껴졌다. 마음에 정해둔 지점에 흙을 한 움큼 팠다. 지난주에 얼어서 포기했던 그곳에 삽이 푹 들어간다. 땅 속은 이미 봄이다. 축축하게 고운 흙과 겨울을 버텨낸 잔디와 뿌리만 살린 잡초들이 딸려 나온다. 나는 정성스레 구덩이를 파서 나무의 집을 만들어 주었다.


" 나무가 활착 때 까지는 보살펴 줄 시기고 그때를 지나면 스스로 살아남도록 해야 합니다"


화원 주인은 나무 오기 전 내가 이미 예습한 정보들을 AI처럼 전해 주었다.  "만약 매일 나무에 물을 주시면 나무는 하루만 물을 주지 않아도 앓다가 죽지요" 그래 맞아. 우리 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감나무가 그랬다. 오 년이나 빈집이었던 이곳에서 길게자란 잡초에 둘둘 말려 처음엔 몰골조차 마주하기 버거웠던 녀석, 지난가을에 가지치기며 보온재며 챙겨놓으니 세련된 도시공원 나무 같아졌다. 하지만 노인 피부처럼 메마르게 남은 흔적들, 지난 세월을 항변하며 스스로 버틴 상처들은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강원도 야산엔 그렇게 가는 세월을 견딘 꿈나무들이 숨 막다 비명 지르며 타다 죽겠지. 자연에게 인간은 웬수다. 모든 나무들은 해마다 몸살을 앓으며 얼마나 자주 자기를 스스로 치유하며 견뎌냈을까.


 우리도 스스로를 치료해야 살아 남겠지.  사람들은 타인에게 위로라는 약을 받아먹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지만, 나는 위로가 가짜약 placebo effect 이란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즐겨 듣는 아침의 클래식 음악방송에서 작가생각이 짧은날 위로라고 던져놓는 얕은 위로중견배우 깊은소리로 들려오면 조용히 스위스 방송으로 떠난다. 그곳엔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가 나오고 알아듣는 음악이 나온다.   나는 사람해설 없는 음악에서  진심 위로를 느낀다.  





나는 사오정 끼도 있고 예민한데 둔감한 사람이다. 래도  나이브 naive 하지 않다고 가족들은 증언한다. "뉴요커, 서울깍쟁이"가 사실은 내 이미지다. 그런데 내가 나를 평가하면 좀 멍청하고 맘에 안 든다.  내 둔감의 특징은 어떤 상처든 공격받는 현장에선 못 느끼다 잠들기 전, 뭔가 불편한 마음을 복기하면 그때 가서 아프고 시리다. 한마디로 감정이 느리다. 그 공격이 논쟁에서 나오든 상대의 낯선 무례함이든 나는 뒤늦게 상처를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의 생채기를 치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의 둔감 때문에 버려둔 상처들은 흉터로 남고, 어느 날 커져버리면 흉기가되어 견디기 힘든 우울감으로 곪은 것이 터질 때가 많았다. 그 우울감은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는 단순한 일을 할 때  어김없이 찾아왔다. 혼자 나무를 심을 때,  그동안 모인 상처들이 잡념을 가장해 머릿속 갈라진 틈을 파고 들어와 고통을 안겨준다. 집안일을 할 때,  혼자 산책을 할 때(그래도 산책은 풍경이 잡념을 어느 정도 막는다), 단순한 일을 반복적으로 할 때 오랜 세월에 숨어있던 상처들, 나의 잘못, 후회, 미숙한 판단의 결과, 어려운 순간 나를 외면한 친구들. 오래된 상처들이 스멀스멀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뇌로 기어 올라온다.


 작년 가을 나는 캔터키블루그라스 잔디 씨를 뿌려 마당 정원을 만들었다. 75% 정도 발아에 성공했고 아기 잔디는 겨울을 이기고 지금 수줍게 초록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번 주에는 다시 씨를 더 뿌릴작정이다. 그런데 그동안 땅이 유리조각이나 돌을 토해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보았다. 겨울에 안보이던 수많은 흙 아닌 조각들이 올라온다. 나는 살아 숨 쉬는 땅을 만난 것 같았다.  "그래 아주 느리더라도 치유 하는 거야"


나는 내 마음에 박혀있던 상처들을 뱉어 내기로, 그리고 그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좀 더 자유롭고 무엇엔가 매이지 않는 삶의 기초를 좀 더 단단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두 그루의 나무와 함께 심었다.


우리 집에는 이제  살구나무와 삼색 도화나무가 산다.

앞으로도 벚나무와 감나무가 새 식구로 들어 올 준비를 하고 있다.


봄은 "치유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https://youtu.be/CP-G4zRZ-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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