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나보다 조금 컸고 머리는 록밴드 하는 사람 같았다. 적당히 나이를 먹어 그런지 아니면 염색을 해서 그런지 회색 많은 새치들이 예술가처럼 보이기 까지 했다.
갑자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시골집에 가까운 읍내, 내가 짜장면 사 먹고 혈압약을 처방받는 의원이 있는, 도시로 나갈 때마다 기차 타는 읍내, 이른 아침인데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행인조차 뜸한 역사 근처 찬 공기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야이, xx놈아 쭈욱 똑바로 가"
무슨 말인지, 뭐라는지 당최 해석이 되지 않았지만, 정말 내가 역사로 가려면 오분 가량 똑바로 걸어야 한다. 나는 큰 소리 나는 그쪽을 한번 쳐다보고 이내 시큰둥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어릴 때도동네에는 항상 저런 어른이나 아이들이 길에 있었다.저 어른도 아마 여러 가지이유 중 하나로 뇌가 망가졌을게다.생각해 보니 읍내에서 벌써 세 번째 저 사람과마주쳤었다. 그는 언제나 길을 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화가 난 듯, 교회에서말 잘하는사람이 랩처럼 술술 읊어대는 대표기도 하듯중얼중얼 거렸다.
시카고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대도시의 가장 번화한 백인 타운을 드물게 지나던 흑인이었다. 그는 거구에 아주 까맣지 않은 초콜릿처럼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도심 아파트의 데스크 근무자 제임스도 밝은 초콜릿이었다. 나는 제임스와 각별하게 친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날 때 내가 기르던 화초를 전부 맡겼다) 그래서 그런지 초콜릿 흑인에게는 습관적인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거인 초콜릿은 달랐다. 혼자 중얼중얼, 처음엔 귀에 이어폰 끼고 랩을 하나 했다. 아니 중얼중얼 기도문을 암송하나 생각도 했다. 가끔 그와 눈이 마주치면, 수업시간에 선생님 눈빛 피하듯, 눈빛이 무서워서 그를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소리로 행인의 시선을 강탈할 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미친.
나와 대화가 통하는, 내가 인생의가을인데 겨울을 깊숙이 지나가는그녀와 대화의 공통분모가 없을 것 같지만 우리는 만나면 즐겁게 수다를 떤다.수다는 드디어남자사람인 내가 여성호르몬이 늘어 아줌마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아줌마는 연속극 보고 울고, 뇌의 반사 기능이 발달해 상대방 말의 의도나 깊은 뜻은알지 못하고 조건 무조건 반사를 즉각 하는 나이를 의미한다. 오래가는 빠글이파마에외모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남편 추리닝이 자기 것보다 편한, 대한민국 아줌마, 우리네 엄마들.
여성호르몬, 남자에게 감성을 섬세하게 선물해 주지만 내가 남성 호르몬으로 충만할 때 한수 아래, 전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던 그 호르몬. 그런데 아줌마의 경계를 넘어 할머니 반열에 드신 호르몬에 밥 말아먹은 지인은 나보다 삶의 지혜가 무진장 많다. 그녀가 나에게 "인격 수양이 덜 되었다"며 가르쳐준 분노조절법이 나에게는 팔진미였다.
" 아니 그렇게 화가 나는데도 어떻게 참으세요?"
" 별거 없어요."
그녀는 나와 함께 아는, 경박해서 무례하고, 늘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분노 유발자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에 대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 나 같으면 박차고 일어나 한바탕 했을 텐데. 참 대단하십니다."
"저는 그러면 그냥 속으로 혼자 생각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저게 미쳤나' 하면서."
나는 그 단어 <저게 미쳤나>에 자지러지게 넘어갔다. "저게 미쳤나"는 얼마 못가 내 분노조절 특효약이 되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화에 미친.
조카는 바이오 쪽에서 일한다. 그녀는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 대기업에 일찍 자리 잡았다. 요즘이야 너도나도 유학파 자녀가 많지만 조금 더 옛날엔 영어 잘하는 자식은 금쪽이었다. 금쪽같던 그녀는 지금 대기업에서 피 말리게 혹사당한다. 이제는 석탄 같은 자식이다. 내가 봐도 자기 능력을 넘어서 일만 한다. 그런데 조카는 원래 성격이 그랬다. 무슨 일이든 한 가지 업무에 꽂히면 식음을 전폐하고 집중하는 거(그래서 공부도 잘했겠지) 재택이 많아진 요즘 바로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듣지 못한다.
그녀는 미쳤다.
일에 미친.
솔직히 말해 원래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나는 일을 빨리 잘한다. 공부도 요점정리를 잘한다. 사람도 얼굴만 척 보면 그 사람 특징을 잘 잡아낸다. 그뿐인가 연구에 들어가면 끝까지 추적해서 답을 찾아내고 만다. 그러다 보니 남들 눈에는 내가 유능해 보였나 보다 "사막에 갖다 놔도 살아남을 놈" 이란 백작 칭호를 얻었다.
그런데 웬걸. 조직에 몸담고 있다 나와서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간혹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 조직에 몸담고 있나 혼자인가 살펴봐야 한다.
얼마 전 백색 소음으로 틀어놓은 어떤 토크쇼에서 개그맨이 하는 성대모사를 듣다가 잠깐 하던 일 멈추고 그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남을 흉내 낼 때 그가 남의 특징을 빠르고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웃기는 사람은 원래 똑똑한 거야." 미친 사람처럼 나도 혼자 중얼거렸다. 사실 나도 개그맨의 탤런트처럼 부모님의 유전자 한 줌, 겨우 그것 가지고 잘난 척하고 살았던 셈이다.
우리 집 둘째는 미국에서 자기 형보다 공부를 무척 잘했다. 그런데 어라, 운동은 지지리도 못한다. 제 형은 이미 중고등학교 다닐 때 축구부에 스카우트되어서 어려서부터 레슨 받고 큰 백인아이들 제치고 주전으로 공을 찼다.(미국은 특기생이 없다) 그래서 운동신경 없는 둘째는 몸을 키웠다. 몸이 가슴부터 종아리까지 울퉁불퉁하다. ROTC 장교가 되더니 권투도 배웠다. 나는 안다. 녀석이 운동에 전혀 재주가 없음을.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는 이유는, 그가 강박이 있어서 공부를 완벽하게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의 성격일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 안다.
앞으로 전문적인 "일의 과정에 들어가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성격 없는 AI는 우리보다 더 일에 미쳐 있으니까. 쉬지 않고 일하니까. 그들은 곧 빼어난 글을 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죽었다 깨도 생산하지 못할 단어들을 문장 적재적소에 기차게 배치할 것이며 헤밍웨이 뺨치는 문장력과 현대미 넘치는 감성 깊은 글을 쏟아낼 것이다. 나이테를 간직한 나무가 책이 되어 세월 녹여낸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물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전자책에 담긴 기계들의 만화 같은 상상력이 자원해서 기계가 된 인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미쳐, 우리는 망했다.
실력이 좋다, 똑똑하다는 것,
앞으로 인간 뇌의 기술적 기능을 자기라고 정의한다면, 겨우 유전자 한 조각뿐인, 일과 공부에 미친 집착이 빚어낸 노력의 산물, 반딧불 같은 삶의 여정, 훅 반짝임으로 마칠 게다.
읍내에서 연신 소리 지르던 미친 남자가 나에게 멀어져 제 갈길로 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내가 역사까지 똑바로 가야 한다는 걸?
나는 오늘 도시에서 일을 본 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줄리언 반스의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를 서점에서 건졌다. 앞으로 얼마간 행복에 절어 재미없어 보이는 이 책에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