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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22. 2022

Adios Invierno

안녕 겨울

이번 추위가 지나면 매섭던 겨울도 곧 떠난다.


봄은 우리의 움츠린 어깨를 활짝 펴게 해 줄 것이고 봄의 대지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초록 양탄자를 다시 깔아줄 게다.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녹기 시작해 오랫동안 우울하게 얼어있던 재난의 긴 터널 통과하는 데 조금은 여유가 생길 테지. 올해 코로나 겨울은 폭탄 저기압이 많이 찾아와 제법 눈도 많고 추위도 매서운 편이었다.  너를 품기엔 다소 힘들었지만 정상적인 겨울의 모습이라 생각하 그리 낯설지   않다.


한국에서 배운 말 "라테는 말이야" 그래 라테는 겨울에 눈도 많고 늘 추웠다. 그 겨울에는 썰매 만들어 주던 아버지가 살아 계셨고 스케이트 선물 받은 다음날부터 아침마다 눈 뜨면 얼음 얼었나 보려고 산책 아닌 순찰을 돌았었다. 서울이었지만 동네 곳곳엔 스케이트장이 있었고 그곳 비닐하우스엔 언제나 뜨거운 어묵 국물과 떡볶이동네 여학생들 북적거렸다.       


 작년엔 시카고에서 겨울을 만났다. 


 시카고는 겨울이 매서운 도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그곳에서 기대만큼 멋진 겨울은 만나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올해 만난 겨울이 더 늠름하고 멋져 보인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지" 오랜만에 만난 잘생긴 겨울이 곧 떠나려 한다. 이번 주가 지나면 쇼트트랙 선수처럼 훈풍은 맹렬한 기세로 밀고 들어와 북풍을 밀어내고 봄의 결승선에 먼저 발을 디밀 것이다. 우리 몸에 난 오리털은 모조리 벗겨버리고 태극기를 반쯤 어깨 위에 걸친 채 살짝 오만한 표정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겠지.  


 봄의 시작, 오묘한 계절의 경계, 냉정과 열정사이, 그곳에 지금 우리는 서 있다.


 떠나는 것은 언제나 계절이었지 우리가 아니었다. 공항을 자주 들락거리는 나는  떠남의 루틴에 익숙하다. 떠나는 사람은 분주하게 떠나고 나중에 느낀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은 이별의 빈자리와 먹먹함으로  한참이나 삶을 멈추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웃으 탑승하고 비행하며 울었다. 언제더라,  한국을 떠나며 출입구 옆  여승무원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이륙하는 순간 어떤 아쉬움의 감정에 울컥해서 이륙 후 고도를 잡을 때까지 나는 소리 없이 한참 눈물을 흘렸다. 어색했겠지, 승무원은 나를 슬쩍 쳐다보고 비행기에 물이 새나 천장 한번 보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많이 보았겠지. 떠나는 승객의 눈물과 애통을.    


 이별이 죽음이라면 그 눈물은 평생이 되기도 한다. 떠나보내면 늘 남은 자에겐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 인간 지성은 떠나보내고 나서야 후회하도록 설계된 것 같다. 함께 할 동안 왜 감사도, 기쁨도, 행복도 잊고 살았을까?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그랬고 자신에게도 그렇. 나는 오늘이 내 존재 유일의 순간임을 잊을까 봐, 현재를 무심하게 만날까 봐, 몇 번을 되뇌고 또 반복해서 오늘을 신중하게 대하려고 중얼거린다. 가능한 좋은 시간으로  채우고 싶어 세상이 주도하는 삶의 방식은 부정하고 세상이 보여주는 행복의 공식도 거부하며 내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는 내 삶에 필요한 영혼의 양식들, 영적인 삶의 레시피를 세상 마트에서 구하지 않고  스스로 구하고 정리해서 그것만 먹는다. 언론엔 관심 없고 여론은 더더욱 관심 없다. 나는 내 삶의 각론과 총론에만 전념한다. 네이버와 구글엔 필요한 것만 찾아 쓰고 애초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 북등 기계와 다정하게 손 잡고 살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 댓글에 현혹되지도 않고 식당에 사람이 많이 앉아 있어도, 방송에 나온 적이 있어도 맛집이라 믿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 하지 않고, 귀에는 줄 달린 이어폰 끼고 하얀색 아이팟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전자파는 가뜩이나 멍청한 뇌를 더욱 망가트릴 테지.)


 처음 한국 들어왔을 땐 유행에 뒤지는 것이 촌스러워 보여 한국인을 따라 했지만 지금은 다수의 서양인처럼 익숙한 검소함과 깨끗함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요즘 동생은 자기 개성을 살려 소형 jeep SUV를 탄다. 뭐 그 흔한 불자동차 BMW 같은 류의 자동차야 미국의 빈촌에 가더라도 길거리에 흔해서 차를 말로 생각하는 그네들 분위기 때문에 몰랐는데 한국은 자동차가, 입은 옷이, 사는 동네가, 가진 직업이, 신분이라는 것을 너무 젊을 때 나가 사느라고  전혀 몰랐다. 동생이 현대차 탈 때보다 지프 정도 타는 것으로 사회에서 우대받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 나도 하마터면 우리 사회가 가진 지독한 열등감 늪에 빠질 뻔했다.


 너튜브에, 구원받고 돈 버는, 사람 낚는 어부들이 "해외에서 난리가 난 이유"라는 제목 미끼를 애용하는 까닭, 우리가 천성적으로 남에게 보이려고 사는 무리라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척 씁쓸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다, 간혹 자신의 주인공으로 사는 삶의 주연급 작가 글을 읽으면 감동 먹고 배가 부르다. 그들만이 진정성이란 감칠맛을 글에 뿌릴 수 있겠지.     





겨울은 추우니까 방구석에 들어앉아 삶을 생각하게 해 주니 참 좋다.      


 겨울은 봄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캘리포니아 주 살 때는 계절이 없어 무척 힘들었다. 겨울엔 눈 대신 비가 오고 크리스마스는 아이스크림 끓여먹는 기분이었다. 혹독한 고난이 있어야 성공하듯이 우리 인생에도 겨울은 중요해 보인다.  


우연히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유영과 김예림의 경기를 보았다. 해설자는 그들을 김연아 키즈라고 말했다. 연아, 추억의 그 이름. 그 아이들 때문에 겨울의 연아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허~ 참, 연아의 연기는 뭔가 좀 다르다. 겨울에 혹독한 고난을 이겨낸 초목처럼 깊은 우수가 몸에 배어있고 야릇한 카리스마 근성이 담겨있다. 누가누가 잘 도나 얼음 위에서 팽이처럼 빙글빙글 도는 기술점수 말고 손끝에 한이 서려 있다고 할까? 무언가 독특한 선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품위 있는 모습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라는 봉 감독의 유명한 인용처럼 연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다움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 그녀는 얼음 위에서 긴 겨울을 보내며 많이 울었고 봄의 시상대 에선 조금 웃는다. 그리고 관객은 엉덩이에 털 날 텐데, 울면서 웃는다.


겨울이 떠나간다.


어쩌면 잘생긴 겨울의 마지막 모습 일지 모른다. 다음 겨울엔 영국에 몰아친 윈터스톰 처럼, 일본을 강타한 핵폭탄 4미터 폭설처럼 우리에게 폭력적이고 미쳐버린  못생긴 겨울을 만날지 모른다.


 나는 잘생긴 겨울이 참 좋다.  


 영원히 안녕, 겨울22호...


      


https://youtu.be/duE8_8_4 AMo


https://youtu.be/edYbMICyLsM 강 건너 봄이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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