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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Feb 18. 2022

삶의 충전

코로나 때문이라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때부턴가 밥 먹는 일이 자동차에 기름 넣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가득이요"


가득해도 5시간쯤 달리면 다시 채워야 한다.


 나는 식도락가에 요리 좀 하는 남자인데 먹는 즐거움이 이처럼 저열한 것도 처음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입맛을 잃었거나 먹는 재미가 그저 그런 일이 되어 버린, 즐거움이 삭제된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식사를 두 끼로 줄였다. 구정 명절을 전후해 도시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냈더니 시골생활의 검소한 미덕이나 자연인에 가까운 건강한 식재료를 도무지 섭취하지 못했다. 도시에선 백신 패스로 식당 다니는 재미와 폭식에 기름진 음식까지 내 리듬이 망가져 버리고 가족들은 한 달새 놀랍게 달라진 내 모습에 " 얼굴에 살이 확 올랐네?'라고. 그들은 내가 시골에서 굶고 있었고 서울에서 잘 먹여서 그런 거라고 자위하는 듯 보였다. 하기사 나는 시골에서 귀차니즘 때문에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몸이 무겁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 이 무거움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침은 늘 하던 대로 원두를 곱게 갈아 에스프레소 마약 한잔을 뽑아 마시고 늦은 아침 브런치로 하루를 충전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저녁은 당연히 다섯 시쯤 먹게 된다. 그땐 내가 좋아하는 기내식을 만든다. 기내식은 양도 적거니와 주제가 분명한 음식이라 대한항공 수준으로 상차림 해서 먹으면 된다.


몸은 그렇게 하루 두 번만 충전해도 되는데, 삶과 영혼은 이 총체적 난국의 시대에 어찌 충전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삶의 충전에 대한 팁을 발견했다.






" 택배기사님 수고하셨습니다. 물건은 대문 앞에 놓아주시고 벨은 한 번만 눌러주세요"


시골집 대문 앞에 코팅해서 붙여놓은 안내문 덕에 내 택배는 제시간에 띵똥, 너무나 잘 배달된다. 옆집 할머니는 이 시골구석에 웬 택배차가 매일 들락거리나 내심 궁금할 게다. M사의 식품 배달부터 해외에도 상장한 C사의 상품들이 아마존 부럽지 않게 내 집을 들락거린다. 이번에 도착한 물건은 동생이 발송한 태양광 조명기구였다. 


 시골은 밤이 어둡고 골목을 조금만 들어가도 깜깜한 우주가 된다. 미국에서야 밤새 조명 켜고 사는 것이 습관이었지만 여기서 전기가 한 달에 200k 넘으면 가산세가 붙는 것을 알게 된 뒤 나는 전기절약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미 집 마당 잔디에는 막대기 형 태양광 조명을 사용하던 터라 이번에 벽에 거는 조명을 설치하면 우리 집은 드디어 RE100(ㅎㅎ)으로 어둠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명등은 손바닥보다 조금 크고 귀엽게 생겼다. 


반나절 충전해서 집 외벽 다섯 군데 나사를 심고 정성껏 설치했다. "흠, 놀라운걸?" 기대 이상이었다. 중간 상태의 빛이 유지되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5초 정도 밝게 비추고 자동으로 꺼졌다. 현관에 나서면 도열한 신하들이 시간차로 불을 밝히듯 빛이 자동으로 켜지다 꺼지고를 반복하였다.


"이리오너라"


나는 첫날 어둠에 싸인 마당에 순서대로 비추는 빛을 따라 돌며  " 주상전하 납시오" 놀이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점점 미쳐 가는듯 하다.


 하지만 문제는 충전이었다.


 태양전지는 우리 집 외벽 차양에 가려 빛을 스스로 먹지 못했다. 나는 매일 아침 태양광 조명을 양지바른  테이블 위에 놓고 태양 밥을 떠서 먹였다. 광합성하는 반려식물처럼 반려기계 여럿을 먹여 살린다. 그럼에도 밤마다 집 주변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빛의 기쁨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수고는 감당해야 한다고 여겼다.  






지난 설날 서울에서 지인 한 분을 만났다.  분은 나보다 연배가 십여 년 많은데 친구처럼 지낸다. 미국은 위아래가 없고 사람끼리 모두가 옆이라 처음엔 불편했는데 지금 나는 위아래 없는 그것을 이해하고 역시 그 위기에 젖어 산다. 그러나 여기 한국에 오면 "위-아래, 위-아래"에 또 맞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에서도 드물게 옆에 있는 분들, 수평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분은 몇 안 되는 옆사람이다. 그분이 서울에서 깜짝 회동을 제안했다. "우리 함께 걸을까요" 우리는 동작역에서 터미널까지의 도시 둘레길을 걸었다. 햇살 가득한, 낡음과 새것이 조화를 가진 도시의 동네길은 참 신선하고 흥미로왔다. 나는 그때 태양광 전지의 충전기처럼 좋은 동반자와 함께 할때 삶이 충전되는 것을 느꼈다.




애견과 걸을 때도 삶을 충전했다. 나는 가능하면 녀석이 집 나온 유기견처럼 자유롭고 제멋대로 길을 가도록 돕고 따라가 준다. 물론 위험하거나 더러운 것,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통제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노래도 불러준다. 개도 우리가 위에 있지 않고 옆에 있을 때 기대 이상의 사랑을 되돌려 준다. 


 나는 내가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고 지나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 알게 되었다. 태양에서 나오는 다양한 에너지의 성질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랑, 용기, 희생, 믿음, 희망, 보람, 용서, 나눔, 내려놓음, 절제, 검소, 겸손, 기쁨 등" 인생에 행복감을 주는 삶의 충전 에너지를 태양광전지처럼 먹어야 살 것 같았다.




 군 시절 리처드 포스터 교수의 "돈. 섹스. 권력"을 여러 종류의 책과 함께 군 교도소에 기증했다. 헌병대대장 웃으며 말했다.


"허, 이 책 제목에 좋은 것이 다 모였구먼..."


 나중에 내 은사가 된 저자에게 한국에서 있었던 그 이야기를 꺼내자,


 "그래도 자네가 내 책 사준 게 어디야?"  


 저자가 인세만 사랑하나? 내가 영어를 잘못했나? 유머?


세속적인 것은 빛이 아니어서 삶을 충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방전시킨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https://youtu.be/RwGObBcXt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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