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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9. 2022

데칼코마니

 소년은 바람개비 만들기와 미술시간 데칼코마니가 가장 재미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람개비를 보면 흥이 절로 나 미소 지었다. 그래도 둘 중 하나 좋은 것을 고르라면 단연 데칼코마니였다.


 그날 소년은 데칼코마니 말고 추상화가 숙제인 것을 까먹고 혼자 도화지 없이 당당하게 학교 왔다. 그는  미술시간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번호 순서대로 발표하고 숙제 안 해온 애들은 복도에서 자동으로 손들고 있었. 하지만 그는 번호가 60번이었고 시간도 있었다. 갑자기 번호가1번인 짝쿵 도화지를 빌렸다. 책상 밑으로, 얼굴은 발표자를 보는 척하며 도화지에 일곱 칸을 그리고 그 칸에 빨,주,노,초,파,남,보 물감을 재빠르고 거칠게 발랐다. 유화같은 작품 완성에 십분? 그런데 아직도 28번이 발표 중이다. 그는 한쪽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콘텐츠를 구상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왔다.  솔직히 그동안 아이들 발표는 그 어떤 것도 매력이 없었다.  


" 빨강은 전쟁의 나라입니다. 주황은 혼란을 상징하죠. 하지만 세상은 노란 평화의 나라를 만납니다."   


말 같지 않은 추상화 스토리 텔링을 유창하게 이어자, 하얀 얼굴에 안경을 자주 들어 올리는,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예민해서 지적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고개를 까우뚱 하며 신박하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흠, 너는 아주 책을 많이 읽는 애구나. 상상력이 아주 멋졌어. 애들아 박수한번 쳐주자"


아주 멋쩍지만 그는 순간 창의력과 파괴적 상상력 덕분에 복도에서 손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 의기양양하게 V자 손가락과 미소를 머금은 채 늠름하게 자기자리에 앉았다.  짝쿵은 그를보고 윙크를 했다.


 그는 그때 두 가지 습관이 생겼다.


 하나는 흥미 없던 미술과목을 좋아하게 되었고 (진심, 미술관에도 다녔다) 다른 하나는 쫓길 때 따라오는 아드레날린의 강력한 맛을 알아서 마감시간에 찾아오는 긴장과 짜릿함의 중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쭈욱 시험공부는 벼락치기로 했고 원고는 마감일이 가까워야 잘 썼고, 회사의 IR은 초안을 작성해 놓고 놀다가 미팅 전날 수정하면 기가 막힌 결과를 생산한다는 것도 알았다.  


 데칼코마니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은 나의 미술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에 사는 가족에게 코로나가 왕림하셨다. 나는 스스로 코로나 비상대책 위원장이 되어 가족을 원격으로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우리 코로나 가족은 집안의 가장 어린 청년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아 거침없이 다니시다가 감염원이 되었고, 어른들에게 순서대로 코로나 배급이 시작되었다. 그중 나이가 제일 많은 어르신의 가장 위중한 증세는 공포였다. "오메, 나 죽네" 여기저기 몸이 너무 아프다고 하시더니 정작 PCR에서는 음성이 나왔고, 음성 판정을 받자마자 그분 통증이 사라졌다. 반대로, 말없이 잘 버티던 청년 엄마는 양성이 나와 가택연금을 당하고 말았다.


 나는 가족의 모습에서 나의 자화상을 본다. 부모에게는 내가 늙어서 행동할 미래가 보이고 자녀에게는 내가 어려서 하던 과거를 본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를 동시에 보는 현재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 이유는 지금 대학교수인 동생이 나보다 공부를 워낙 잘해서였다. 나는 우등상장 한장 없이 학급에서 받은 임명장 한장이 전부인데, 동생은 우등상을 어디서 몰래 복사해 오는지 매번 아버지께 대령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동생에게 주었다. ( 나는 그 아버지 오른쪽 바지 금고가 방에 걸려 있을 때, 한 달 동안 야금야금 돈을 훔쳤다. 결국 아버지가 파놓은 함정, 돈이 없어지는 것을 알고 정확히 액수를 확인하고 매직으로 점을 찍어 둔, 에 걸려 쇠고랑을 찼다.)  아버지는 책에 나오는 일본 순사처럼 나를 고문했다. 그동안 훔친 게 얼마고 왜 그랬는지 이실직고 하라고 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용서해 준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 사건으로 거의 한 달간 사랑의 하나님께 용서받지도 못하고, 매맞고 반성문만 쓰며 폐인으로 살았다. 가끔 도벽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흠, 나도 도둑이었지. 암튼 동생은 공부로 돈을 벌고 나는 딱 한차례, 여러 번의 도둑질로 큰 돈을 벌었다.


 부모님 방은 초록색 종이에 굵은 붓글씨가 적힌 동생 우등상장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성적뿐 아니라 나의 큰 문제는 사오정 끼였다. 아버지 말을 금방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오정 꽈는 미국 가면 더 심각한 고통에 빠진다. 그동안 한국에서 배운 영어가 다 무효 처리되어서, 사실 미국의 첫발은 눈치로 살아야 하는데 난  눈치도 없고, 정말 군에서 권총 사격하다 한쪽 귀가 멀어, 소리마저 제대로 못 들었다. 상상해 보라 청각장애가 있는 사오정. 그래서인지 나는 미국을 살아낸 나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은 완전한 나의 데칼코마니였다.


 다행히 사오정은 유전되지 않았고 데칼코마니 할 때 물감이 접히다가 튄 건지 큰 애는 우울증도 있었다. 그는 말이 없고 가끔 과격한 모습도 보였다. 과격, 그건 내가 어릴 때 아버지께 맞으면서 (지금은 세상 떠난 아버지를 이해 하지만) 생긴 후천적 분노의 화산 폭발이었지만, 내가 닮기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내가 살고 아이들은 나를 닮아가며 학습다.  


 언제쯤인가 평소 나를 스스로 느끼거나, 우연히 부모나 자식에게 들어 있는 나를 보게 될때가 있다. 굳이 유발 하라리가 그의 오래된 저서 "사피엔스"에서 변방의 유인원이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될 때까지를 읽지 않아도 난 우주에서 한 개의 원소가 인류가 되어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 자체에서 우리가 결국은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지점은 스캇 펙 (우리가 가야 할 길 저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추 잠자리가 우리보다 한참 선배 신데 그들이 비행하는 모습을 보다 갑자기 헬리콥터가 하늘을 날 헛웃음이 터졌다. (내가 머무는 시골집은 여객기 항로에다 근처 비행장이 많아 온갖 종류의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그뿐인가 어제 봄 날씨가 하도 좋아 산책을 나갔는데 고공을 비행하는 독수리를 보았다. " 저 녀석 아직도 고향에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바로 그때 독수리 너머 저 높은 창공에 여객기가 나타났다. 두 개의 점. 인류가 만든 날틀과 자연이 만든 조류의 비행 실력은, 소리 없고 매연 없는 조류가 의문의 일승이다.  


 불과 돌로 세상을 정복하기 시작한 인류가 지금은 컴퓨터와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지만 인류 대표선수 미국이 아직도 전쟁연습 비용으로 천조를 쓰고 있는 한, 인류 깡패 푸틴, 시진핑과, 뒷골목 건달 김정은을 잡을 리 만무하다. 아마 인류가 화성을 지구 대체 기지로 찾지 말고 지구 리모델링과 재활용에 전쟁비용을 투자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인류의 전쟁 유전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로 대신하면 어느 정도 해소될 텐데 아직 미국은 태평양 전쟁 이후로 특기가 전쟁이고 취미가 경찰인 국가가 되고 말았다.


데칼코마니.


나는 요즘 그렇게 산다.

아이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반성하고 어른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경계한다.


 또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내가 신의 성품을 지닌 인류로 태어나 찰나의 순간을 살며 우주를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면, 인류가 염원하는 사랑으로 온전한 삶을 한번쯤 이루고 또 나누고 살다 떠나고 싶다고.


데칼코마니에 찍힌 내 한쪽 모습엔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https://youtu.be/3csayYso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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