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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02. 2022

바람이 머무는 날

 어제 우연히 조수미가 부르는 "바람이 머무는 날"을 들었다.

 "바람이 머무는 날"은 기악곡 Kazabue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다.


바람이 머무는 날엔

엄마 목소리 귀에 울려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어둠이 깊어질 때면

엄마 얼굴을 그려보네

거울 앞에 서서 미소 지으면

바라보는 모습

어쩜 이리 닮았는지

함께 부르던 노래 축복되고

같이 걸었던 그 길

선물 같은 추억 되었네

바람 속에 들리는

그대 웃음소리 그리워


https://youtu.be/vbRd6 ygUd8 g


 음악을 듣다, 삶의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요에 머물렀다.  


......



이 고요가 얼마 만이지?


나비가 초록 마당을 난다.

뻥튀기 같던 살구나무, 꽃봉오리가 때마침 터졌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나비 되어 바람 타고 오신 건가?

소리 없는 눈물도 살포시 흐른다.

 

내 어머니는 작가도 아닌데 작가가 되고 싶어 돌아가실 때까지 노트에 글을 쓰셨다. 반평생 외국에만 사는 아들의 효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국제전화만 받다 삶을 마감하셨다. 나는 결국 영원한 불효의 굴레를 지고 살게 되었고 내 마음엔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신다. 언제든 어머니를 찾아가면 요양병원 옆자리 노인의 세상 떠난 이야기를 들려주실 게다.


 " 난 아직 죽을 준비가 덜 되었나 봐"


어머니는 어젯밤 죽음에게 잡혀가지 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종이비행기, 바람개비를 좋아했고 하늘의 모든 현상에 호기심이 많았다. 조종사 생텍쥐페리를 좋아해서 "어린 왕자"는 외우다시피 했고, "야간비행"을 읽을 땐 생텍쥐페리와 함께 비행했다. 기상현상을 관찰하고 우주를 동경했으며 하늘에 계시다는 신을 탐구했다. 이제야 좀 철이 들어 우주에 대해 신에 대해 인간에 관해 정리될 무렵, 나는 내 삶을 반딧불이처럼 반짝이고 싶었다.  대략 일 년을 자라 보름 정도 성충으로 살다 떠나는 반딧불이, 대략 이십 년 자라야 성인이 되고 근 육십 년 목적 없이 살다 하얀 연기가 되는 우리보다, 왠지 더 부럽다.     

  

유학으로 시작해 이민으로 마감한 이방인에겐 늘 향수병 home sickness이 따라다녔다. 


내가 조수미 노래에 공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해외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암에 걸려보지 않고 암 환우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듯, 동병상련을 겪어보지 않으면 관계의 공감은 어렵다. 마음이 넓은 사람, 상대를 포용하는 사람은 삶의 가장 밑바닥을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그녀의 삶을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힘들고 단한 삶을 살았다. 반항적이고 끼가 많은데 장인이 되기 위해, 엄마의 꿈에 제작된 자기를 참아내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가 빛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마 전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J.D 샐린저의 오래된 다큐 최근 우연히 보았다.


미국 사회에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킨 은둔 작가 샐린저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였다.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미국 젊은이에게 아니 그 시대 미국인들에게 준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책의 주인공 홀든은 투털이다. 매사 불평불만에 투털 거린다. 저자의 의식이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다큐를 보다 그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홀든이 탄생한 것을 알았다. 그는 세상 악의 밑바닥을 전쟁에서 보았고, 전투가 벌어지는, 인간 학살이 이루어지는 숲을 "고기 가는 기계"라고 묘사했다.  어찌 보면 전쟁 트라우마에 갇힌 환자였다. 그는 외로움으로 고문당했고 글을 통해 잠시 쉼을 얻었다. 그는 글을 쓰며 은둔하던 외딴 시골집에 자기만의 벙커를 만들어 숨어 살며 가정은 돌보지 않았고 여러 번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번 초신성 폭발처럼 크게 반짝였고 불행한 인생처럼 외로운 어둠에 숨어 살았다.     




바람은 외로움보다 그리움에 가깝다.



오늘은 시골집 창호 공사하는 날이라 커튼을 다 제거했더니 바람이 창문 틈으로 숨어 들어온다.  



바람은 어떻게 머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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