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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06. 2022

창窓

 시골집에 창호 공사를 했다.  


 십 미터 정도 길이의 마루와 연결된, 집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리문은 키가 낮고 허술하기 짝이 없던, 옛날식 불투명 유리와 투명 유리가 혼재한, 키작은 이중창이었다. 그런 미닫이 거실문은 옹졸해 보였다. 동생은 옛날식 미닫이 문이 정겹다며 그 디자인을 그대로 살리기 원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을 보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많은 뿅뿅이를 붙였어도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들어오시고 먼지도 장난 아니다. 이른 밤엔 하루 종일 묶여 사는 이웃 삽살개가 한 시간쯤 한 풀이하고, 이른 새벽엔 갇혀 사는 수탉이 아이꼬 아이꼬 곡을 한다. 소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봄이 오자 우리는 창호 전문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머리 싸매고 정보를 수집해 착한 전문가 네 명 정도 견적을 보러 오게 했다. 입사전쟁 같은 면접 시험을 치르며 가성비와 품질, 태도를 신중히 골라 마침내 업자를 선정했다. 우리가 업자에게 까다로워진 이유는 그동안 공사에서 단 한 번도 재미를 못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 공사는 한마디로 엉터리였다.  그렇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 서울에서 사람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시와 지방은 문화적으로나 삶의 질로나 커다란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보였다.  

 이번에 만난 업자는 부인이 영업과 제작을 돕고 남편은 직원과 함께 현장을 뛰는 기술자로 팀워크가 무척 좋은 업체였다. 공사 당일, 직원 세명과 함께 어마 무시한 크기의 통유리가 들어왔다. 냉난방과 소음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로이유리였다. 나는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 하며 도우미를 자청했다. 근처 식당에 모시고 가 식사도 대접하고, 새참으로는 요리 잘한다 거짓말하고 떡볶이도 만들어 주었다.


" 미국 사람이라 다르네요..."


 "네?"


 벌써 부쩍 가까워진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어디 가서 식사대접 못 받습니다. 밥이고 새참이고 다 우리가 준비하고 실내 화장실도 못쓰게 하는 집도 있어요"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진짜라니까요? 그니까 우리도 오늘은 운수 대통한 날이지요"


 그들은 내가 하루 전부터 준비한 멸치육수 만든 떡볶이를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었다. 

 덕분에 나는 억지 갑이 아니라 자연스런 갑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챙겨주고 그들은 고마워서 열심히 일하는 갑을관계. 사장 부부는 정형외과 의사처럼 중요한 부위를 먼저 수술하고 자리를 떠났다. 시다들은 남은 뒤처리, 실리콘 작업, 청소, 폐기물 정리, 하자 수정 등 늦은 시간까지 불평 없이 일을 했다. 처음으로 업자들에게 고맙고 참 좋았다.


집은 환골탈태했다.

키가 큰  통유리가 두 짝이나 들어서웅장했다. 낮에는 밖에서 속이 안 보이고 얼추보면 세련된 커피숍 같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작업 전에 커튼을 치워 놓았는데 그날 너무 힘들어 커튼 없이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침실이고 거실이고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였다. 물론 아파트처럼 반대편 건물에서 여기를 쳐다볼 리 없지만, 옆집에서 맘만 먹으면 우리 집 안을 훤히 들여다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밤은 일찍부터 불 다 끄고 쥐 죽은 듯이 지냈다. 길고양이가 마당에 들어왔다. 너, 다 보인다... 내일은 커튼 꼭 달아야지.






나는 마음의 창이 커서 속이 다 보이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제발 속 좀 보이지 말고 살아요. 다 보여" 나하고 친하지만, 왜 무당처럼 남을 읽어내고 예지력 있는, 교회는 다니는데 무속인처럼 살며 가스 라이팅이 취미인 지인이 나보고 속을 가리고 살라고 충고했다. 그녀 평가에 의하면 나는 "childish 한 순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배하고 싶었겠지) 그때마다 나는 "자기는 무슨 무속 교인이면서... 너나 잘하세요" 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계산적이지 못하고 영악함 없는, 이빨 무딘 맹수 같았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조직과 직책이 있어서 크게 무시당하지 않았지만 머리 쓰면서 방어하는 것 많이 피곤했다. 그런데 웬걸 미국은 참 편했다.(그래서 난 미국도 좋고 한국도 좋다)  뭐라고 할까, 사람들이 남의 평가도 잘하지 않지만 생긴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국 사람들은 솔직하기도 하고 대체로 평등했다. 물론 인종간 갈등이나 빈부격차, 속으로만 생각하는 다른 맘도 알지만, 대체적으로 독립적이고 개성이 넘쳤다. 나라도 독립적이고 개성 있게 생겼다. 50개 주와 한 개의 특별구 워싱턴 DC가 각자의 주권과 행정능력을 가지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국가로 산다. 하나하나가 각자의 맛을 가지고 모인 Salad Bowl처럼.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순혈 국가다. "우리가 남이가" 그렇지 비빔밥 가족이다. 뉴스부터 모든 일을 공유한다. 기자들은 브런치에 조회수와 구독을 갈망하는 열혈작가와 비슷하다. 기사가 실속 없이 요란하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간판과 소음인데 우리나라에 오면 이 두 가지로 자주 어지럽다. 우리는 점점 다민족 국가로 변하고 있고 혼혈 아이들도 태어난다. 숨어 참고 지내던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사회의 구조적 을에 갇혀 지내던 생명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선진국 산통이다. 


 과거에는 명문대 나오고 판검사나 장군, 의사가 되어야 가문의 영광이었다. 이제 검사 대통령 윤석렬이 지나면 그 시대는 끝났다. 물론 예체능 연예인병이 바이러스처럼 창궐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시대정신의 도약"이란 쿠데타가 우리나라에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쿠데타의 주역은 박정희도 전두환도 아닌 2030 같다. 그래서 나는 참신한 그들, 젊은이에게 기대가 많다.






나는 한국에 와 있는 지금, 우리 집처럼 내 마음의 창도 수리해서 그런지  더 크고 더 넓어져 속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마음의 커튼도 하나 새로 주문했다. 

 이젠 필요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커튼으로 마음을 가리고 누군가 에게는 마음의 창을 활짝 연다.  

 점점 한국생활이 자연스럽고 한결 편해졌다.


 나는 내 삶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다.  



            

      https://youtu.be/o54W8Dk3a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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