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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16. 2022

라디오

 겨울잠에서 깨난 봄은 곰처럼 엉금엉금  땅을 기어 나다.

 

 그녀는 대지 찬란한 색을 토해내었다. 코로나가 오염시킨 잿빛 세상은 기발한 으로 어지고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잠시지만 봄의 색은 우리 삶을 치유한다.

 

 이런 봄에, 나는 한 번도 바깥세상에 나가못했다. 마을 곳곳 듬성듬성 자리한 벚나무와 우리 집 마당에  뛰어든 꽃을 잠시 쳐다보긴 했지만 잔디 사이 교묘하게 자라난 잡초에게 더 눈길 간다.




 


 어머니는 나를 나무삼아  봄을 느꼈었다.

"엄마, 밖에 개나리가 완전 노래, 이건 엄마 선물"  막 태어난 봄처럼 상큼했던 어린 나는 항상 봄꽃을 꺾어 엄마에게 봄을 선물했다. 엄마는 의상실을 운영해서 항상 바쁘고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감성이 통하는 듬직한 큰아들을 조금은 더 좋아하셨다.  


 나는 음악방송 라디오를 통해 봄을 느낀다. 

 여의도에 만개한 봄꽃은 사실을 연기하 전하는 배우의 목소리로 본다. 나는 그녀 목소리에서 꽃내음 맡고 거리의 봄 본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만 몰래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라디오는 책 같아서 이야기를 품었고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린 시절, 인류와 다른 종족이 지구중심 깊은 지하에서 땅과 지하를 오가며 지낸다고 상상했다. 높은 하늘 작은 비행기엔 비행 주사를 맞고 몸이 작아진 사람이 탄다고도 믿었다.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믿음이 좋은 나는 부모님의 종교도 물려받아 신화 같은 이야기를 참 쉽게 믿었다.


어른이 돼서 논리적 지성을 갖추자, 난 믿었던 이야기를 수정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믿음은 변치 않았다. 믿음은 항상 봄처럼 다시 태어나 척박한 세상의 봄꽃처럼 어둠에서 나를 일으켜 주었다.






 라디오 음악방송에는 작가가 써주는 대로 낭독하는 아나운서와 작가가 써준 것을 소화해 연기하는 연기자, 두 부류의 진행자가 있다. 나는 아나운서의 음악방송을 더 선호한다. 밋밋해 보이지만 적어도 메인인 음악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성향이겠지만) 가끔은 양념 맛이 통일된 한국음식보다 원재료의 개성을 살린 서양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듯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원재료인 음악을 살리고 해설을 절제하는 방송을 만나면 나는 평범한 음식에서 기대하지 않던 풋풋한 영감을 느끼는 행복 같은 것을 맛본다. 그런 삶의 맛이 인생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데 뭐가 그리 어려운지 아주 가끔 영감을 자극하는 삶의 맛을 만나면 나는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어찌 보면 나는 성격이 반듯하고 보수적인 편이라 내 방탕한 자유로움은 남에게 숨기고 혼자만 누리려는 경향이 있다. 코미디언처럼 자유롭게 사람과 삶을 웃기고 싶은데 두 가지 마음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이 웃다가 뒤돌아서 비웃을까 봐 머리가 커지면서 내 삶은 점점 웃음을 잃었다.    


요즘은 라디오 앱이 있어 참 편리하다. 미국에서도 나는 한국방송 절반과 미국 클래시컬 음악방송 절반씩 듣고 살았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도 나는 똑같은 영혼 공간을 유지한다. 모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던 내가 모국어로 생각하고 모국어로 말하는 특권에 감사한다. 우리 아이들은 영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할 때 불편함을 느꼈겠지. 그래도 두나라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으니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손흥민처럼 양발이 가능하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된다. 아이들은 머리가 작을 때 아빠가 코쟁이 미국인과 소통하는 모습을 존경하다가, 머리가 커지고 키가 자라자 문지방에 연필로 표시한 선이 높아졌을 무렵, 내가 Pork와 Fork발음을 제대로 못한다고 깔깔대며 비웃었다. 그래도 영어가 서툴고 세탁소 하는 동네 한국 아저씨가, 공부 잘하는 자기 딸에게 입학 허가서 보낸 뉴욕 대학에 보내지 않고 영어로 가게를 도우라며 작은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에 꽁꽁 묶어 논 것보다는 내가 훨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한국 라디오를 들으면 어디에 살던 고향에 있는 것 같아 좋다. 라디오는 시공을 초월한 내 공간이었고 내 삶의 영토엔 항상 라디오 꽃 향기가 난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한국 라디오 진행자들이 모조리 코로나에 걸려 전원 대타로 진행된 적이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하루 다섯 명 정도 진행자를 만나는데 모두가 동시에 사라진 셈이다.

참 우습지만 전쟁이 난 줄 알았다. 나는 하루가 초조했다. 낯선 이들이 아무리 아기를 달래 봤자 엄마가 필요하듯 나는 징징대고 있었다. 이전엔 "당신은 너무 사설辭說이 많아" "작가가 써준 거 읽으면서 자기가 아는 척하네" "자꾸 뭘 그리 가르치려 하지? 음악이나 해설하지."  혼잣말로 불평했는데, 이들이 사라지자 나는 반성했다.


 저음이 더 많아지고 명함이 확 줄어든 L 아나운서가 다시 등장하자,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우연일까 격리기간의 일치일까 다른 진행자들도 속속 방송에 복귀했다. 나는 일상의 행복을 느꼈다. 배부른 불평은 사라지고 그들의 존재가 고마웠다.


불편을 동반하는 삶의 일상,


어쩌면 그 일상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     


https://youtu.be/K7 hJvHaO_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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