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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21. 2022

태만怠慢

 그날 그 녀석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내 하루는 그럭저럭 온순했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다 이 집 때문이었다.

 우연히 장기간 머물게 된 동생의 시골 게스트하우스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물론 낡은 이 시골집은 구매단계부터 나도 개입해,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지만 더 큰 책임지분은 동생에게 조금 더 있었다. 적당히 고쳐 쓰면 될 것 같은 이 집은 고생 끝에 낙을 믿으며 아직도 고쳐가며 점점 새집은 되어가고 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항상 무언가 새롭게 만드는 일을 즐겼다. 어른이 되어도 그 버릇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면, 하다못해 집안 가구 배치라도 시계방향으로 바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까다롭고 적확한 눈썰미  완벽주의 성향도 있었다. 그러니 이 집의 수리에 대한 수준높은 흑기사가 필요했고, 같은 피를 가진, 피차 까다로운, 예술가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준의 사람으로 나는 가족중에 선발되었다. 아무튼 이놈의 시골집은 몇 달째 망치와 호미를 맞으면서 촌티를 벗고 전원주택으로 탈바꿈하였다. 전문가 시공은 대부분 끝났고 이젠 나도 리모델링에 반 전문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이 끝없는 작업현장의 감독이자 유일한 인부로 남았다. 물론 동생 가족이 불시에 들이닥쳐 북극에 구호품 내리듯 아라온호의 생필품과 초코파이가 주방 가득해지면 잠시 잇몸 만개한 원숭이처럼 웃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추가 노동의 바나나란 것을 원숭이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삶을 즐기고 싶었다. 


 한국의 창업 회사는 슬로우 했고 그럴 바엔 글쓰기처럼 내 에너지를 강하게 쏟아 집중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보람이었다. 익숙하지만 나에게 외국 같은 한국에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건축 관련 일을 취미로 해보는 것은 모르는 요리하기와 비슷했다. 글쓰기나 요리나 나는 내 생각에 정보를 찾아 초고를 쓰고 초벌구이 하듯 헛소리는 지우고 잡냄새를 없애 원재료의 풍미를 살린 작품을 탄생시키는 희열은 타인을 기쁘게 해 줌과 동시에 내 만족이기도 했다. 미국살이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인생은 묶을 때가 있고 풀 때가 있다"는 단순한 명제였다. 미국에서 새 집을 구입해 정성을 다해 만지면 평생 살 줄 알았는데 결국 그 집은 팔게 되었다. 거라지 선반을 만들 때도 있는 힘을 다해 나사를 조여 단단히 만들었는데 언젠가는 다른 이유로 나사를 풀어야 했다. 처음 생각은 항상 고치고 다듬어야 쓸모가 많았다. 


 탄생-죽음, 만남-이별, 있음-없음이 서로 동행하듯 자석처럼 두 개의 극단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삶의 자연스런 생태 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집을 고치면서 글을 퇴고하듯 과정을 내 것으로 삼지 결과는 소유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소박한 깨달음의 실천일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이 집엔 항상 수많은 물건이 배달되었다. 건축장비, 바비큐 그릴, 조립 가구와 첨단제품까지 집은 크기만큼 짐이 생겼다.


그날 등장한 그는 건재상에서 배달 온 사람이었다. 앞마당 담장 수리에 필요한 수십 장의 4인치, 5인치 블록과 벽돌, 합판, 시멘트, 황토 등 적어도 두 달치 공사는 충분한 자재들을 구입했다. 암튼 주문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배달까지 약속되었고 나의 지병, 완벽주의는 배달이 들어오면 물건 수납할 공간과 내가 도울 부분 등 생각을 정리하고 기사를 위한  마법의 액체 박카스와 생수 한 병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놓았다.


"띵동"

 

드디어 도착했다. 배달기사는 사십 대 정도, 배가 뽈록 나온, 이 바닥에서 이런 일에 어울릴 근육질에 구릿빛 남자가 아니라 방금 게임하다 그만두고 배달 나온 두부 같은 사람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물건을 내리기 전에 대문 안쪽에 물건을 쌓을 것이니 그렇게 내리자고 부탁을 했다. 두부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난색을 표하더니, 좋을 대로 하시라며 하역을 시작했다.


 그가 허리 아플까 봐 마루 위에 놔 달라고 부탁한 시멘트를 그는 땅에 던지듯 내렸다. 시멘트 포장 사이로 연막탄 같은 시멘트 먼지가 날리고 시멘트 포장에 틈이 생기면 습기가 들어가 덩어리 져서 일이 힘든 것을 알기에 나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이번엔 벽돌이다. 그는 트럭에서 작은 벽돌 무더기를 발로 밀었다. "우르르, 쾅" 난 당황해서 또 말했다. " 아니요, 그러시면 안 되죠"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다 이렇게 내리는데요?"

 나는 속이 점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참고 진정하자 그리고 차분하게 정색하고 말했다 "그렇게 일하면 벽돌도 깨지고 두 번 일을 하게 되잖아요?" 내 항의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벽돌 네 장씩을 공손히 건넸다. 우리는 배달 궁합이 잘 안 맞았다. 이번엔 더 무게가 나가는 사인치 블록이다. 그는 높게 쌓인 블록을 트럭 바닥으로 밀어내고 나는 한 번에 두 개씩 내렸다. 힘들어서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오인치 블록엔 손가락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 어? 미안합니다!"


 잠시 무슨 소린지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밀려왔다. 그가 차에서 블록을 밀어내다 힘 조절을 못해 오인치 블록이 내게 떨어진 것이다. (내가 미워서 일부러? 에이 설마...)  


"아!"


일은 중단되고 나는 바지를 걷어 올렸다. 살이 찢겨 피가 솟아올랐다.


피를보자 나는 동시에 거꾸로 피가 솟아올랐다.  


"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옆집 할머니가 집안일하다 뛰쳐나오게 소리 질렀다. 원래 나는 다혈질에 불광동 휘발유다. 젊어서는 격에 안 맞게 욕도 잘했다.(아마 군대에서 배운 것 같지) 훈련 조교처럼, 존댓말로 상대를 까부수는 내 말투에 처음 그는 흠칫 놀라고 살기를 띤 눈빛으로 방어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내가 만약 욕을 했다면 욕한다고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잘못을 이내 깨닫고 저자세로 연신 미안하다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다리 상처보다 그의 태도가 싫었다.


 " 아니, 난  그쪽이 물건을 배달해 줘서 감사하고, 당신은 보람 있는, 그것이 이 일의 목적 아닙니까? 왜 일 빨리하고, 집에 가는 게 목적인가요?"    


난 화가 나서 (아니 아파서) 니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도 묻고 싶었다. 내가 증오하는, 삶의 태만이 싫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시간을 적당히 때우며 생의 한 번뿐인 찬란한 순간을 순삭 시킨다. 나도 거기에 속해 보았다.


그는 배달 물건은 내리고 내 욕 한 무더기를 차에 싣고 떠났다.


 건재상 여사장 에게 전화했다. 상황설명하고 다친 것은 지켜보고 문제가 생기면 병원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 그 사람 직원인가요? 아님 배달만 하는 사람인가요?"


"아뇨, 남편입니다 "


"......"


나는 다친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당 의자에 앉아 그를 위해 준비했던 박카스를 벌컥벌컥 마셨다.   

   

      

태만怠慢 [태만]

명사.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고 게으름.  

유의어게으름 과태 나태

             


https://youtu.be/z2i8RDc1q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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