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남은 새롭지 않지만 왠지 떠나기 전엔 항상 숙연하다. 미국에서 들어올 때 자가 격리하느라 오피스텔을 단기 임대해서 고생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나마 좀 진정된 세상을 만나니 이젠 떠난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비행기 수하물에 맞추느라 많은 물건을 버린다. 머물던 이 시골집에 버려두면 또다시 고국을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두꺼운 박스에 크게 이름을 써둔 나는 두고 간다.
걱정도 포장한다.
내가 사라지면 매일 밤 찾아오던 길냥이 네로(검은 고양이)와 스레트( 낡은 스레트 닮은 색이라)그리고 네로 엄마 노랑이는 누가 밥 챙겨주나. 지난가을 씨 뿌려 얻은 캔터키 블루그래스 잔디는 누가 물주나. 벽에 걸린 태양광 전등은 볓 잘 드는 두 개만 자기 자리에서 밥을 먹고 나머지 세갠 굶다가 언젠가 점점 빛을 잃고 죽겠지. 그리고 나머지 공사는 누가 할까? 병약한 동생 가족은 아마 오빠 노비가 다시 돌아오길 새벽마다 기도하며 날마다 전화할 게다.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전기세, 수도세 검침원은 누가 만나나?
아, 잘 모르겠다. 얘들도 포장해야지.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놀이로서의 삶>을 즐겼다. 태어나 처음 낡은 집 천장도 철거해보고, 미장, 목공, 조적, 페인팅, 식목, 퍼티, 타일 공사 등 전문가가 지난 자리에 남아있던 최후의 시다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 미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젊은 부부 케이네(남편은 미국인에 증권가 직원 아내는 한국인인데 미국 항공사 승무원이던)가 낡은 집 사서 수리할 때 좀 거들걸 구경만 한 게 후회스러운 적도 많았다. 그동안 나는 직업으로서의 삶만 살다, 성취감과 보람을 노임으로 받는 생각보다 야무지게 사랑스러운 일을 하고 살아 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서 돈 받고 일하는 <직업으로서의 삶>만을 살아 이처럼 마음이 강퍅해졌는지도 모른다.
놀이로서의 삶을 살아보니 누군가의 지시나 갇힘 없이 스스로를 성찰해서 참 좋다. 그동안 나는 과거의 후회가 만든 네모에 갇혀 있었고, 항상 누군가를 의식하고 조심하는 선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또 내가 설정한 목표와 꿈이라는 더 크고 원대한 원으로네모와 선을 가두어 놓았다.
이제 난 나를 가두던 네모와 선 그리고 원 까지 다 지우고 자유롭게 떠난다. 혼자 보내는 동안 이처럼 비우고 채우는 것으로 삶을 사용해본 적 없는 것 같아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