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 숨어 비루한 인생을 살거나 호텔에 누워 화려한 인생을 살든 삶이 인간에게 준 시간은 똑같은 값어치를 갖는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좀 혼란스러워졌다. 그건 순전히 잡초 때문이었다. 누군 잔디로 태어나고 누군 잡초로 태어나 참 다르게 사는구나. 여기를 떠나면서도 마지막까지 잡초를 뽑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봄은 내가 심은 무수한 식물과 어디서 날아 들어온 이름 모를 생명들을 한데 뒤섞어 앞마당 잔디와 뒷마당 텃밭을 가득 메꿔 놓았다. 비가 한번 오고 나면 그들 키는 쑥쑥 커져 귀한 놈이든 천한 놈이든(우리가 정한) 몰라보게 자라 어제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뒷마당 마늘은 마늘쫑을 뽑아야 한다는데 양도 작고 귀찮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양파는 여러 개 덩어리 져서 자란 것도 있다. 심을 때 무식해서 모종을 제대로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들을 수확하고 나면 동생은 방울토마토와 고구마를 심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마지막 일을 마치고 랩탑을 뒤적이다 우연히 다큐 한편을 봤다.
"Explorer; The last Tepui" (한국어 제목은 "신의 정원에 오르다")
아마존 오지를 탐험하는 생물학자와 암벽 전문가등 원정팀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다큐다.
팔십이 넘은 노인 생물학자는 아마존 밀림에 섬처럼 솟은 Tepui라는 고도를 탐험하고 싶어 한다. 그곳에 가려면 수십일 동안 정글을 헤치고 가야 할 뿐 아니라 정상엔 암벽을 등반해야 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 암벽 전문가를 고용하고 현지인도 함께 탐험에 나선다. 두 주에 걸쳐 정상 부근 숲에 겨우 도착했지만, 동행한 의사는 시니어 생물학자의 산행 포기를 권유한다. 이대로 가다가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고 암벽등반은 무조건 불가하다 선언한다. (암벽 전문가는 방법을 찾아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결국 일행은 암벽 등반가와 젊은 생물학자 등 몇을 선발해 정상을 정복하러 일주일간 등반에 나선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산 정상에 사는 생물의 표본을 조사해 채집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들의 탐험을 눈으로 따라나섰다. 다큐의 핵심은 암벽이었다. 이들은 처음 가보는 루트를 개척하며 목숨을 잃을지 모를 위험에도 노출된다. 그런데 참나, 암벽 등반가는 시종일관 침착하며 길이 막혀도 방법을 찾는다. 그들은 숨이 꼴딱 넘어가는 위험한 암벽 등반, 절벽에서 비박하고 한계를 넘는 고투 끝에 등정을 성공한다.
인간이 한 번도 다녀간 적 없는 신의 정원엔 낙원의 풍경 대신 투박하나 잡초같은 강인한 식물들이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기쁨도 잠시, 그들은 올챙이 한 마리를 포획해 내려온다. 목숨을 건 여정의 끝은 올챙이 한 마리였다. (훗, 올챙이, 잔잔한 미소가 나도 모르게입가로 번진다.)
밑에서 원정대를 기다리던 노 박사는 안전하게 돌아온 일행을 맞으며 행복해한다. 자기 인생에 마지막일지 모르는 탐사에,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온 일행과 올챙이를 만족해하며 감사한다.
나는 이 탐험에서 두 가지를 보았다. 노생물학자가 지닌 삶의 태도와 암벽등반을 성공한 프로의 태도. 노인은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등반가는 암벽에서 손가락 하나로 자기 체중을 견디면서도 길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잘 모르겠지만 길을 찾아보자"는 말을 암벽에서 자주 한다.
잔디와 잡초 사이의 불공정한 세상을 시샘하다, 신선한 충격이 다가왔다. 나는 살면서 남이 가던 길만 따라갔지 한 번도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는 길은 가보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삶의 안전을 사랑하고 위기의 순간을 감사로 여기는 축복은 놓치고 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머니엔 안전 열쇠만 가득하고 내 삶은 굳게 잠겼다.
삶, 직업의 귀천이나 배움의 차이, 재산 유무에 관계없이 쌩얼 그 자체가 아름답진 않을까. 굳이 재산으로 삶을 치장하고 건강으로 꾸미고 명예나 지위를 입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가 좋다"는 확신만 있다면 쌩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기저기 낙엽처럼 떨어진 삶의 의미들을 찾아 짜깁기하지 않아도, 가난한 그대, 건강하지 못한 그대, 평범한 그대로 사는 그 자체, 세상이란 공간에서 나라는 독특한 삶의 악기를 소리내보고 가는것이 너무 아름답다고 믿는 것은 좋아 보인다.
나는 한국에서, 외국에선 잊고 살았던, 타인과의 비교를 지우느라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이젠 좀 더 단단해져서 이곳을 떠난다. 어쩌면 시멘트 삶보다 흙의 삶이 인간을 좀 더 어른스럽게 만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