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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y 10. 2022

여독

 시카고로 돌아왔다.


 시차 적응을 못해 몇 날 며칠 사경을 헤맸다. 아침에 눈 뜨면 여기가 시골집인지 미국집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한다. 과거에는 미국에서 한국 다녀오면 쉽게 시차를 적응고 한국에 들어가면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도무지 미국 시간에 적응을 못한다. 글을 쓸 수도 없고 글맛이 당기질 않는다. 여기 오후, 한국 새벽시간을 맞춰 글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참 신기하게 몸이 반응한다. 글맛이 돌아오려나 보다. 한국의 강력한 기운은 이미 내 몸을 완전히 점령한 것 같다.


 한국생활은, 늘 그렇듯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되어 추억으로 남았다. 솔직히 말하면 시골 논둑길을 걸으며 여기 미시간 호를 그리워했는데 지금은 미시간 호를 걸으며 시골을 그리워한다. 내가 떠나오기 전 길냥이 세 마리 중 가장 강자였던 회색 고양이 스레트가 집냥이가 되고 싶은지 챙겨놓은 밥을 먹고 항상 집 마당에 머물며 서성 거렸었다. 내 인기척이 들리면 슬쩍 빠져나가 담장 위에 앉아 있지만 오랫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종이박스로 녀석 집이라도 만들어 줄걸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집이 자주 비어 있어 이젠 밥 주는 이도 없을 텐데 스레트와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다. 아니 한국이 전부 아쉽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후회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묘지에 가면 늘 무덤 발부분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셨다. 구들장 시대, 우리가 겨울밤에 추울까 봐 아버지는 유담뿌라고 불리던 물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수건을 두르곤 한 개씩 넣어주었다. 한 방에서 온 식구가 자던 시절에 윗목은 유담뿌없이 자기 힘들었고 아랫목은 더워서 잘 수 없었다. 우리 식구는 번갈아 가며 잠을 잤다.  "아버지는 항상 유담뿌를 발 쪽에 끼고 주무셨지. 늘 손발이 차서 따뜻한 물을 좋아했어" 천국에서 아버지 만날까 봐 천국 안 간다던 어머니 행동은 인생이란 게 그저 미운 정 고운 정들며 살다 가는 것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 어머니도 이젠 내 곁에 없다. 교포들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면 점점 한국을 찾지 않는다.


 한국에서 오지 캠핑을 준비하다 유담뽀를 만났었다. 어릴 때 보던 그것과 사뭇 다른, 플라스틱으로 정교하게 만든 유담뽀는 과거보다 성능이 좋아졌고 나도 유담뽀 좋아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 우린 가끔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나이 들면 꼭 그들처럼 행동한다. 정말 열심히 유전자 개혁을 하지 않으면 내가 싫어하던 부모 단점이 고스란히 내 몸 어딘가 아니 아이들 몸에라도 묻어있다.


 



미시간 호를 다시 걷는다.

시카고 대 화재로 거듭 태어난 놀라운 이 도시는 그래도 한국만큼 선명하고 멋진 꽃 없다.   


이제 글맛을 찾았으니 서서히 여기 이야기를 써 봐야겠다. 몇 안 되는 브런치 독자들이 기다려 주시겠지?


 아직도 시간에서 완전히 깨어나진 못한 듯하다.


가끔 죽은 뒤에도 하늘에서 눈을 뜨면 지금처럼 여독에 빠져 게슴츠레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들과 사랑하는 이들도 달려 나오면 좋겠지...



https://youtu.be/W1_yL7seE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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