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치는 소나기는 한국과 다르게 무섭고 섬뜩하다. 번개가 쌍으로 치는 것은 예사고 그 소리 또한 망치로 땅을 치듯 굉음에 우렁차기까지 하다. 한국은 가물다는데, 이 세찬 소나기를 내가 머물던 시골에 나르면 전에 심어놓은 장미가 얼마나 좋아할까? 그저 아쉬운 마음뿐이다.
나는 늘 앉아서 창으로 세상을 본다. 비 오는 것도 창문으로, 세상 소식도 윈도우 10으로 본다. 이 도시에 살면서 내 책상이 대형 창문 앞에 자리해서다. 모든 일은 창밖의 사건일 뿐 진짜 내 삶과는 관계가 없다. 자주 들리는 사이렌 소리는 교통사고 이거나 누군가 총에 맞아 응급실에 실려가는 소리일 게다. 폭우가 내리건 세상이 혼란스럽건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다.
그렇게 세상을 살다 보니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경계가 점점 애매해진다. 마치 옛날 학교에 카시오라는 전자계산기가 등장했을 때 더 이상 머리에서 셈을 할 필요가 없어진 듯했지만 나는 아직도 곱셈과 나눗셈 더하기 빼기는 머리로 하며 계산기와 머리 사이를 오간다. 팁을 계산할 때 싸인 코싸인은 필요 없다. 기계는 우리를 편하게 해 주는 듯 하지만 이제 우리는 기계의 노예가 되었다.
오래전 아시아나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 중 사고를 당했다. 조사 결과 조종사들이 오명을 얻었지만 사실은 보잉사의 B787에서 발생한 컴퓨터 오류가 추락한 B777에도 적용되는 오류라서 전파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 문제점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종사들이 계기를 믿고 착륙하다 난 사고라고 권위 있는 미국방송은 증언한다. 우리는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고 기계는 오류와 허점을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나 인류의 피를 마시며 진화하는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 전기로 잔디 깎는 기계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이름 있는 제품이라 어이어이 고장 서비스를 신청했고 배달의 민족답게 다른 지방으로 배달을 보내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리를 맡겼다. 하루도 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사진과 함께 문자로 자세히 고장 이유와 관리법을 적어 놓았지만 나는 어려워서 이해가 곤란했다.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하고 한국에서 처음 겪는 친절을 경험했다. 그는 상세하게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아니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어린 학생처럼 고분고분 그의 말을 경청했고 마지막에는 감동 머금은 목소리로 "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네요. 그리고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을 두 번이나 섞어 감사했다. 그는 아주 짧지만, 보람을 느낀 그의 미소를 살짝 소리로 듣게 해 주었다.
수리된 물건은 다음날 도착했다. 요구도 하지 않은 커팅 날을 하얗게 갈아 놓았다. 또 감사 문자를 하고 싶었지만 오버하는 것 같아 참았다. 한 달 만에 고장 난 기계로 맘고생하다 수리되어 돌아오니 속이 후련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문자나 기계 교환원보다 사람이 더 좋다고 느꼈다. AI는 인공 지능, 약자 A (atificial)는 미국에서 인공 감미료 aritificial sweetening 표시할 때 쓰는 그 단어다. 나는 인공감미료 탄 음료를 싫어해서 인공지능도 싫어한다.
컴퓨터로 연결된 네트, 세상을 이걸로 보다 보니 사람들의 감성과 인성도 메마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체인데 호모 사피엔스는 편리함과 돈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Homo Atificial Sapiens로 미들네임을 넣었다.
나는 이번에 한국과 몌별할 때 정이 많이 들었음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과거에 한국이 싫어서 나갔는데 이젠 화해된 느낌도 들었다. 그 화해의 힘은 한국의 빠른 인터넷이 아니라 따뜻한 자연의 품에서 얻었다. 어머니 한국의 자연이 깊은 맛을 가진 과일을 생산하듯(미국 과일은 대체로 밍밍하다) 우리 삶에 깊이를 더해주고 우리 아픈 곳을 치료해 준다.
윈도우 10으로 앉아 보는 세상과 일어나 몸으로 부딪히는 세상은 항상 많이 다르다.
나는 기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보다, 불편하지만 몸으로 마주치는 세상을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