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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un 09. 2022

시간에 기대어

 하늘은, 까맣고 무서운 얼굴로 소나기를 땅에 마구 패대기친다.


요즘 나는 "번아웃 증후군" 같은 무기력증에 시달린다. 시카고 세찬 비가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어쩌면 비가 답답한 가슴 뻥 뚫어 줄지 모른다는 희망 잠시 젖어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무기력은 최근 한국에서 열리는 A매치 축구를 보다 평소 수면 리듬이 깨져 그런지도 모르고  아니면 미국 생활이 답답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원인이 무엇이든 내 마음은 물 빠지는 배수정이 막혀 고인 형국이다. 뚫어주지 않으면 시간이 가면서 물은 고일 테고 결국 힘이 생긴 고인물은 나의 무엇인가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브런치 글의 영감을 잡아보려고 몇 번이나 키보드 앞에 앉았었지만 두줄 쓰고 나면 지우고 또 지우고를 반복한다. 겨우 한 완성하면 퇴고를 포기하고 작가의 서랍에 꾸겨 던진 후 다음날엔 그 글 마 삭제한다.  




 어릴 때는 시간에 쫓겨 살았다.


그리고 제발 시간이 좀 많은 날을 꿈꾸며 지냈다. 그때 스트레스야 쉬는 시간이 부족해서 오는 것인데 웬걸 어른이 되자, "나잡아 보라"며 나무를 빙글빙글 돌며 시간과의 로맨스를 즐길만한 때, 나는 시간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쩌면 욕구불만이다. 매일 원두를 갈아 똑같은 힘으로 탬핑을 하고 정확히 물을 섞어 아메리카노를 만드는데 매일 커피맛이 다르듯 시간과의 싸움은 상황에 따라 늘 달랐다.

 

"왜 매일 시간과는 싸워야 하지?"


시간에게 쫓기고 시간 즐기다 곧 시간을 죽이는 그런 변태 같은 루틴을 떠나고 싶었다.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마을에 풀려 지내던 주인 있는 강아지가 있었다.  그 녀석은 내가 산책을 나서면 꼭 나를 따라나섰다. 처음엔 그 동행이 참 즐거웠다. 그래서 나는 간식도 챙겨주고 물을 들고 다니며 녀석을 먹였다. 그런데 하루는 자전거로 읍내를 나가는데 녀석은 위험한 찻길까지 한사코 나를 따라 나왔다. 나는 녀석을 다시 데리고 돌아와 집에 가는 척하고 들어갔다. 그리곤  몰래 다른 길로 돌아 나왔다. 그때부터  그가 부담스러웠다. 동네 나가는 길이 두 군데밖에 없는데 그는 산책길 입구 수문장이었다. 나는 산책길을 포기하고 점점 녀석을 피해 다른 길로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산책은 줄어들고 집에는 길 고양이 스레트가 수시로 들락 거렸다. 나의 애정전선은 견공에서 길냥이로 변했다. 그때도 가끔 일관성 없는 내 모습이 싫었다.


 시간도 그렇다. 그렇게 쫓길 때는 한가해지면 시간을 사랑할 것 같더니 결국 시간을 죽인다. 




오랜만에 단골로 다니던, 다운타운에서 멈직한 미용실에 들렀다. 미용실 주인 지코는 그대로인데 같이 근무하던 나이 든 백인 아주머니는 없어졌다. 지코는 다른 손님을 돌보고 있었고, 일 년 만에 돌아온 단골손님을 못 알아봤다. 그리고 새로 온 젊은 직원에게 나를 맡겼다. 그녀는 히스패닉으로 40대 후반 가량 안경을 써서 그런지 야무진 얼굴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내 몰골이 자닝 스러운지 얼마 만에 머리 하러 온 거냐고 물었다. "아마, 한 달 반?" 나는 창피해서 거짓말했다. 사실 두 달가량 미용실에 오지 않았다. 내 머리는 한 달만 넘으면 두 주 가량 잔디 손질하지 않은 정원처럼 되어 버린다. 그녀는 물 흐르듯 상냥하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물론 나는 입으로 대답하며 눈으로는 내 머리를 잘 손질하고 있는지 감시했다. 이들은 한국 미용사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잘 흐르던 대화 흐름이 잠시 멈추자 내 마음처럼 말문이 막혔다. 애매한 침묵을 못 견디는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너는 손님이 많아서 바쁠 때가 좋아? 아니면 한가한 게 좋아?"


그녀는 가위질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흠, 난 바쁜 게 좋아. 한가하면 시간도 안 가고 하루가 지루해서 싫어"







 내가 어려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쉬는 시간 십 분은 일초처럼 지나갔고 좋아하는 선생님의 한 시간 수업은 일분처럼 지나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 두 개의 영어 수업이 있었는데 하나는 사감처럼 생긴 이대 나온 교수님의 교양영어와 똥뚱한 미국 백인 여자가 가르치는 영어회화였다. 지금 생각하니 둘은 시간강사였고 똑똑한 한국 교수는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과 눈 한번 안 마주치고 두꺼운 원서를 혼자 해석해 주었다. 간간히 칠판에 단어 숙어 몇 개 적는 것 빼고 한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혼자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한 잠을 잤다. 한 시간이 하루 같았고 그녀는 우리 취침을 지켜주는 불침번 같았다.


 조용한 수업시간에 가냘픈 여인의 작은 목소리, AI 같은 스승의 번역하는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할 때 주위를 둘러보삼십 명가량 모인 교실에 나 빼고 모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쾅"







 날카롭고 둔탁한 그 소리는  분명  벼락 꽂히는 소리였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최신식 책걸상이 있었는데 의자는 푹신하고 철제 책상은 넓고 편했다. 다른 대학 친구들은 그걸 무척 부러워했다. 바로 그 넓고 무거운 철제 책상을 붙들고 자던 한 친구가 책상과 함께 넘어졌다. 불가능에 가까운 묘기 같았다. AI교수님은 한번 쓱쳐다보고 무표정에 아무 말이 없었다. 학생들은 엄청 놀라 깨 놓고 "와"하고 웃으며 자신도 공범인 것을 들키려 하지 않았다.


 영어회화 수업은  달랐다.


 첫 수업시간부터, 우리를 뭘로 본 건지, 바구니에 가득 사과를 들고 들어왔다.


 "What is this?"


 "It's an apple"


 허 참, 기가 막혀서, 우리를 뭘로 보고, 이래 봬도 28:1의 경쟁을 뚫고 특차대학에 합격한 인재들인데-고교시절 우리 반 담임은 기특하다고 나를 안아주었다- 그런 우리에게 요즘 영어 유치원 애들이 하는 영어를 가르쳤다. 그런데 우리는 유치원 영어는 못하고 시험 치는 대학 영어만 잘했다. 시간이 흐르며 대학생들은 유치원 영어시간을 기다렸다. 우리는 집중하고 또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진짜 영어를 배웠다.


아마 내 미국 생활은 그때 배운 영어가 없었으면 망할 수도 있었다. "It's an apple"영어가 내 인생 영어를 바꿔놓았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방송에서 조차 K 영어의 잘못된 발음이 들려 불편했다.(DMZ, LA, MZ) 불행하게도  BTS 한국은 아직도 알파벳을 제대로 발음 못 한다. (B, G, V, Z)         


그때 영어회화 시간은 꿀맛이었다. 한 시간이 오분 같았다.




 시간과의 싸움은 그만두고 시간에 기대 살기로 했다. 

 시간에게 쫓기며 치열한 생존 무대를 살다 내려오면 우린 이제 시간을 죽인다.


나는 시간을 죽이는 대신 시간에 기대어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의 속도를 지하며  나 자신을 위해 해야 할 생명의 숙제를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사업도 계속하며 무궁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느라 돌아보지 못했던 나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수리하고 보다 나은 사람으로 생명의 순결한 순환을 누릴 작정이다.


조금만 더 일찍 시간에 기대어 나를 돌아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면서...  


비가 그쳤다.

오랜만에 글을 퇴고하니 거짓말 처럼 마음도 뻥 뚫린다.



https://youtu.be/5DcQlK2Mr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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