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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27. 2022

식물인간

식물인간 I


 고작 사십 대였던 절친은 사고로 뇌사에 빠져 잠시 식물인간으로 살았다. 내가 몇 개의 주 state를 건너 헐레벌떡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정장을 갈아입고 멀쩡한 모습으로 갈색 관에 누워있었다. 내 아버지도 육십 대 말 한국에서 이른 죽음을 맞았다. 그분도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돌아가셨다. 문득 사랑하는 이들이 뇌리를 스친 것은 봄나무를 심다, 식물이 죽은 듯 사는 게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생물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머무는 시골집 정원에는 감나무 한그루, 덩치 큰 느티나무 사체 한그루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는 작년부터 대대적인 정원 녹화 사업을 결정했다. 조팝나무, 남천나무, 목수국, 배롱나무, 삼색 도화 나무, 자두나무, 미니사과나무, 넝쿨장미,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몇 나무까지 합하면 정말 많은 나무를 마당 구석구석에 심었다. 이웃에 사는 은퇴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젊은 화원 주인은  갈 때마다 서비스? 라며 작은 나무 한 개를 선물로 주었다. 해맑은 그를 보면, 사람이 나무를 닮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들었다. 이쪽을 보면 약간 모자라 보이고, 저쪽을 보면 순수하고 성심껏 일하는, 돈 잘 버는 젊은 사장.  그 때문일까 인간 얼굴에 동물이 떠오르는 내 관찰 영역이 더 크게 넓어졌다. 아, 식물 같은 인간도 있구나. 하긴 학자들은 우주에서 어찌어찌하다 지구가 태어나고 또 지구에서 어찌하다 생명이 나타나고 그 생명의 씨가 하나는 식물세포로 다른 하나는 동물세포가 되어 진화했다고 하니 그렇게 보면 우리 안에는 식물 얼굴도 들어 있는지 모른다.

 

 넝쿨장미를 심으며 고생했다. 다른 나무들이야 땅 파고 적당히 자리 잡아 심고 물 주면 되는데 넝쿨장미는 애견 입마개 같은 화분에 뿌리가 나와 있어 일일이 덮개를 조심스레 제거하다 보니 가시에도 찔리고, 줄기가 어찌나 길고 세찬지 담장에 고정하면서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담장에 활짝 필 도도한 그날을 상상하면 설렘이 앞서 힘든 작업을 기쁨으로 마주 했다. 반복적인 작업 중에 우연히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제각기 다르게 생긴,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영양의 일부를 다시 뿌리로 돌려보내 흙속의 미생물들을 모은다고 한다) 뿌리들. 바람을 이겨내고 수분을 섭취하고 미생물을 모아 생명 장치를 작동시키고 열매와 꽃을 피우게 하는 뿌리.


 사실 뿌리에 대한 감동은 며칠 전에도 있었다. 옆집 대추나무가 우리 집 담 넘어 길게 가지를 내놓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추나무가 출산을 했다. "오, 이것 봐. 대추가 아기를 낳았어" 나의 식물 같은 해맑은 탄성에 가족들은 나를 동물처럼 바라보았다. 담장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아기 대추나무의 위치를 변경해야 했다. 땅을 팠다. 이런. 씨가 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엄마 뿌리에서 태어난 생명이었다. 대추 엄마의 늘씬한 다리 하나를 잘라야 했다. 이게 맞나? 아, 몰라. 그냥 뿌리째 잘라서 옮겨 심었다. 그때도 이번처럼 리를 오랫동안 유심히 바라보았다. 굵은 뿌리는 칡이나 도라지 같고 잔뿌리는 할아버지 수염 같다.

 식물은 조용히 한 곳에 뿌리박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살아가는데 동물은 수시로 자리를 바꾸며  남보다 먼저 차지하거나 빼앗느라 분주한 것 같다.


식물인간 II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식물 총장" 이 되었다는 과거 기사를 접했다. 이번에도 국민 절반 에게만 신임을 얻었으니 미국과 비슷하게 절반의 반대를 극복해야만 한다. 잘못하면 "식물대통령" 도 될 수 있다. 의식 없이, 살았으나 죽어가는 동물 인간을 식물인간이라 하고 칼날이 무뎌진 지도자도 식물 00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명퇴, 조퇴, 은퇴한 남자도 전부 식물인간이다. 더 이상 동물 인간의 일개미가 될 수 없으면 식물로 신분을 바꾼 셈이다. 식물이 동물보다 하등 한 것이 아데 동물 인간, 그중에 영장류는 자신의 주제를 너무 모르고 스스로 교만한 신이 되 식물을 낮춰부른다.

 나무를 심으며 식물도 우리 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식물인간이라도 소중한 존재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가장, 자녀, 아내도 소중하다. 나는 겨우내 미니 비닐하우스에서 생명을 지켜낸 상추 계열의 잎을 따먹지 못했다. 겨울을 이겨낸 것이 너무 거룩해서 너무 대견해서. 이번에 동생이 방문해서 가차 없이 그들을 수확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뿌리째 뽑힌 아이들은 마당 구석에 초라하게 유기되었다. 전쟁에서 집단으로 살해된 시신 같았다. 나는 겨울을 이겨낸 그들이 안타까워 네 개를 엄선해 마당 구석에 심었다. 뿌리는 말라 있었고 겉보기엔 죽어 있었다. 밤새 비가 내렸다. 다음날 죽은 것 같은 아이들이 머리를 바짝 들고 되살아났다.  서둘러 시체더미에서 몇을 더 골라 심었다. 그냥 살아서 지내기만 하라고.


 

식물인간 III


 식물처럼 살면 안 될까?


 같은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며 흙에 다리를 곧추 세우고 하늘을 바라본다. 비바람을 참고 여름과 겨울을 견디며 침묵하나 속삭이는, 꽃과 열매, 푸르름을 세상에 선물하는 식물처럼.


 가족과 동료에게 변함없이 꾸준하며 이익이 없어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고 상대의 그대로를 지지하는, 고난과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땅과 하늘의 생명을 공유하며 인류의 삶과 하늘 너머 삶의 깊은 철학을 품고 통찰과 성찰을 자유롭게 오가는 삶은 살 수 없을까?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에서 그런 식물인간을 보았다. 나치 독일에 항거하며 정의로운 독일을 지키려고 투쟁하다 나치에게 살해당한 독일 청년들. 사형집행 날 서로를 부둥켜안고 웃으며 당당하게 죽어가던 그들, 눈물을 참다가, 그들에게서 식물의 꽃내음을 맡았다.  


 우리도 그런 청년들이 있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나라에 생기를 불어넣던 식물 같은 사람들.  그래서 우리나라엔 아직도 꽃냄새가 난다.  


세찬 봄비가 지난 후 우리 집 식물을 돌아 보며 깊은 생각에 젖는다.   


            https://youtu.be/-ZJXLZdnh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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