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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5. 2022

오래된 글의 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브런치 시스템 오류, 갑작스런 조회수 증가로 이전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 내 이전 글(몇 달 전에서 몇 년 전까지)들은 여기저기 낡아 해어져 있었고 문장 구성이나 주제를 붙들고 가는 힘- 글의 근육과, 철자오류, 흐름 등 - 글의 신경이  끊어진, 한심하기 짝이 없  몰골이었다.


 가끔 요리할때,  맛의 길을 잃으면, 나는 신중하게 곰곰이 생각한다.  "신맛? 짠맛? 매운맛? 그렇지, 매운맛이야"  청양고추 한 개 송송 썰어 투척하면 "후루룩, 바로 이거" 정확하게 빠진맛을 찾아 죽어가는 요리를 회생시킨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내 지난 글은 회생이 불가하다.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확 지워버릴까? 분명히 그때는 발행 누르고 회심의 썩소를 지으며 좋아한 것 같은데 글이 뭐 이렇지?


 배우 Adam Driver는 자기가 연기한 필름을 보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 기사를 접할 때 "내 지난 글 보는 것도 아마 끔찍할 거야"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현실이 되고 보니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한 두개 글을 고치기 시작했다. 마치 글짓기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이건 이렇게 쓰면 안 되지." "이건 다른 표현이 있잖아?" 퍼즐 맞추기 같고 논술고사 채점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는 영어로 에세이 쓰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학부는 이공 계고 대학원이 인문학 쪽이다 보니 더 힘들었고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것이 주된 공부였다. 영어로 글쓰기가 힘들 때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한국 공군에 근무할 때 친하게 지냈던 헬기 조종사. 그는 신형 헬기를 인수하러 미국에 단기연수를 마치고 왔다. "당신은 영어도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신형 헬기를 어떻게 배우고 왔어?"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잠시 뜸을 들이다 진중하게 대답했다. "흠, 통밥이랄까? 뭐 헬기 모는 기술은 이미 있었고 아무리 신형 헬기라도 대충 뭔 소린지 다 알아듣지, 물론 밤새워 공부도 했고..." 그의 대답이 웃겼다.


 "흠, 통밥이란 말이지"  


 도,

 한국에서 생애 첫 번째 동시통역 하던 날, 강사에게 원고를 부탁해 밤새 외우고 공부했다. 다 아시듯이 그가 말하고, 내가 말하는. 순조로운 통역은 진행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가 원고에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당황하면 머리가 하얘지는 백치병이 있다. 그 순간이 단 몇 초였지만 내 머리는 얼어 있었다.




 우리 형은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공중에서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비상탈출  성공했으나 낙하산이 안 펴지더란다. Free Fall, 그 몇 초간 머리가 얼어 세상이 정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생 전체가 스치고 지나가?" 나의 우문에 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슨, 땅에 떨어지면 계란 터지듯 죽겠구나 생각했어"  살아 나온 일이라 웃으며 말하지만 형은 정말 죽었다 살아났다. 지상에 거의 다다라서 우연히 낙하산이 펴지고 그는 나무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나도 형처럼  갑자기 하얗게 정지된, 강사 웃으며 나의 통역을 기다리고 있었 그 유머를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통역했다. "흠, 여러분, 이분이 지금 우리가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농담을 했습니다. 심하게 웃으시면 됩니다" 청중석에서 "와~" 하는 웃음이 터졌다. 강사는 원고에 없는 멘트를 내가 잘 통역한 줄로 착각했고 원고로 다시 돌아왔다.


"휴, 죽을뻔했네"

 

 강연을 마치자 강사는 엄지 척 하고 떠났고 지인도 나를 찾아왔다.


" 넌, 어쩜 그리 통역을 잘하니? 난 반성했어. 앞으로 영어공부에 매진하기로, 수고했다. 잘했어" 그는 등을 토닥이며 사라졌다.  


" 잘하긴, 나 사실은 별로야..."





 교수님은 내 에세이에 빨간색 글씨를 도배해 놓았다. 아, 빨간 글씨. 저거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내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와 간단한 소감을 적어주던, 얼마 안 가 스탬프로 바뀌어 선생님의 육필이 그리웠던, 그것을 미국에서 백인 선생님이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노아, 어디를 손대야 할지 모르겠지만. 혹시 에세이 쓸 때 바로 쓰나? 아니면 한국말로 쓰고 번역해서 쓰나?"  난  잠시 숨을 고르고 침을 꿀꺽 삼킨뒤 솔직히 대답했다.


"바로 씁니다"


"내 생각엔 말이야, 한국어로 먼저 쓰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작문 공부도 좀 더 하고"


 나는 그 당시 어떤 글이든 퇴고가 약했다. 다행히 심기일전하여 그 과목을 B뿔로 마쳤다. 아마 내 수업태도와 개근 성적으로 학점을 준 것 같았다. (Asian Chance 같기도) 나는 유학시절 모든 것(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이 힘들었지만 에세이 쓰기가 정말 힘들었다. 나는 그 시절을 다 보내고 연수교육 마친 헬기 조종사처럼 영어를 한다.       




내 삶도 그렇다.


오늘의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얻은, 굳이 말하면 삶의 퇴고에서 얻은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내 잘못된 삶의 습관을 고치는 비결은 내 주변의 원수 같은 인간들이다. 원수는 가족이 제일 많다. 이 원수들은 자주 나를 힘들게 한다. 같은데 다르고 다른데 비슷하다. 민낯을 감추지 않고 부딪히다 보면 어려서는 싸웠고 커서는 돌아보았다. 내 모습이 저들 속에 있음을 보았다. 마치 오래된 글이 부끄럽듯, 지난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난데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 이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가끔 스스로 느낀다.


"참 멍청하게 살았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또 그렇게 느낄 테지만 난 이렇게 스스로 진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 가르침을 받아 따라 하기보다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좋은삶의 비밀 아닐까.


어떤 사람은 한 번뿐인 생인데 죽은 화석처럼 살기도 한다.






지인 한분이 자기가 코로나 걸린 것 같다고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분을 만나야 하는데, " 어쩌죠? 몸 관리 잘하시고 만남은 좀 미뤄야겠어요" 한국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었다. 시골에 숨어 지내야지,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그분이 신통한 말을 하나 했다.


" 사람은 음성이 제일 중요해요. 코로나 걸리니까 목소리도 그렇고. 참, 암튼 남자는 항상 '레'(도레미파솔라시도) 정도 톤을 가져야 해"     


 "그럼 나는 어느 정도?"


" 그쪽은 '미'"


전화를 끊고 재미있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미"가 아니라 "파"다. 미국에 지낼 때도 목소리가 커서 AT&T 전화회사 직원이 "워워워, 제발 목소리 낮추고 네가 원하는 것을 천천히 말해봐"그런 적이 있었다. 난 '파'야. 미, 레, 두음을 어떻게 낮추지?"


절친의 아들은 F15조종사다. 친구가 아들의 영어를 손 봐달라고 했다. "야, 나 영어선생 아니야, 그냥 미. 쿡. 시. 민." 그래도 해 달라고 해서 바쁜 아들에게 전화로 몇 번 지도해 주었다. 그때 나는 우습게도 "영어 할 때는 목소리를 깔아. 배로 소리를 내는 거지" 하면서 "레"를 가르쳤다.



삶과 글은 변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것 같다.   


나는 퇴고가 문학의 열쇠라고 생각하며 우리 삶도 항상 퇴고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오늘도 산만해보이는 글을 퇴고하며...


https://youtu.be/1SL79EFE0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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