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대형 창으로 보면 밖엔 남의 일이다. 우리 집은 정해놓은 온도로 24시간 방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전기는 요금 정액제라 많이 쓰던 적게 쓰던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다. 한국도 요즘엔 에어컨이 많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습하고 더워서 여름에 방문하기 버거웠다. 내가 머물던 동생의 별채, 한국 농가주택에도 우린 제일 먼저 에어컨부터 설치했었다. 그래서 고국의 지난여름도 생각난다.
이곳의 요란한 날씨로 안과 밖이 다른 두 개의 세상을 살다 문득, 내 안에 살고 있는, 잊혀 연락이 뚝 끓긴, 나를 오랜만에 만났다. 내 안의 동반자.
내 안에 나와는 혼자 있을 땐 친하게 지냈는데 아마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관계가 소원해진 것 같다.
내 안에 나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는 양치를 하며 화장실 거울을 쳐다보는데 문득 그 속에 있는 내가 낯설었다. 그래서 물었다. " 야, 넌 누구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 것 같다. 그곳에 서있는 생명체는 내가 아닌 타인 같았다. 그때 그 순간이 참 재미있었다. 왜 중학생 때 그 호기심, 나는 그때도 지구 땅속에 다른 인류가 산다는 생각에 심취해 있었고 " 엘리야와 신공 위성" 이란 번역된 책 때문에 예수가 외계인이라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를 분리시키는 "자아이탈"연습을 계속했다. 거울 속에서 나와 나에게 빠져나온 독자적인 나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자 친구들을 모아놓고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내가 발견한 기술은 '자아 분리법"이라 명명하고 손거울 하나로 아이들을 모아 "자아교" 전도를 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1,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2. 거울로 자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얼굴 말고 눈만 10초 이상)
3. 약간 현기증 날 때 묻는다. " 야, 넌 누구니?"
4. 잠시 후, 자신이 낯선, 남 같은 강한 느낌이 온다. 그때 혼에서 나와 분리된다.
많은 친구들이 따라 하면서 '자아분리'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나는 약간 신비스러운 아이로 친구들에게 추앙받았다. 게다가 지구과학 선생님이 같은 교회 집사님인데 수업시간마다 성경의 창조론을 가르쳤다. 나는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선생님이 의문스러웠다. 그래도 창세기 이야기를 하다 질문하면 내가 손을 척척 들고 대답 잘 하자 선생님은 손흥민 팀 감독처럼 나를 예뻐했다. 나는 자아교와 기독교 사이의 "사이비 교주"가 되고 있었다.
자아 분리법은 고등학교 가면서 없어졌다. 그 대신 내 안의 음욕과 씨름해야 했다. 같은 학교에 여고가 있었는데 버스를 타면 우리 남고와 여고는 같은 만원 버스 안에서 살을 맞대고 콩나무 시루처럼 이리저리, 좌로 우로 흔들렸다. 내 안의 나는 그녀의 살이 내 몸에 밀착되어 뭉클거릴 때마다 주기도문과 찬송가를 속으로 불러 젖혔다.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은 노아의 홍수가 참이라 가르치지 말고 내 안에 음욕 제어법이나 알려주지 난 매일 아침마다 이 무슨 꼴이람 하며 자책했고 내 안에 나는 꿈에도 나타나 몽정으로 매일 나를 괴롭혔다.
내 안에 나는 대학에 들어가며 변했다. 음욕 대신독서가 늘고 영화, 클래식 음악, 스포츠 등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마치 AI가 정보 수집해 스스로 정리해서 진화하듯 애벌레처럼 세상을 마구마구 먹어치웠다. 그때 나는 몸과 머리가 커지며 스스로 최고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자 결혼도 하고 일도 시작하면서 역시 내가 지존이라 생각했다.
젊어서 이민 온 나에게 미국은 처음으로 돌아가 나를 다시 시작하는 신세계였다. 이곳에서 나는 두 개의 나로 확연히 분리되었다. 하나의 나는 한국어를 쓰는 한국 사람이고 또 다른 나는 영어를 쓰는 미국 사람이었다.
둘로 분리된 나는 내 안에서 혼자가 아닌 샴쌍둥이로 살자고 했다. 그건됐지만, 또 한가지 문제는 아직 가면을 쓰고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은것이다. 나와 내안의 나는 둘 다 성격이 너무 솔직해서 속이 다 보인다, 성질 다 보이고 산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자주 들었다.
점점 성체가 되자 나는 드디어 가면 하나를 구입해서 복면가왕이 되었다. " 흠 이렇게 사는 것도 흥미롭군 " 익명을 가지고 숨어 댓글로 난도질하는 복면 괴한의 역설적 쾌감도 이해했다. 남에게 솔직한 자기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세상의 기본을 뒤늦게 장착했다.
세월이 흘러 더 자라자 이젠 성숙한 영장류로 세상을 알게 되었다.
가면도 내려놓고 썼다 벗었다를 하며 스마트한 자아를 얻은 듯했다. 내 안의 나는 나를 통제하기도 하고 때론 열정으로 춤추게 하며 삶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해 준다. 내가 아주 부족한 사람인 것도 인정하게 하고 또한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지극히 작은 자이다.
상점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집었다가 다시 놓게 하고, 음식은 과식하면 그만 먹게도 한다. 사람들이 거짓말로 그저 하는 말과 진심의 문장을 구분해 주고 진정성 가진 얼굴도 식별하게 한다.
내 안의 동반자 나는, 나이는 먹지 않지만 어른이 되었다.
또 나는, 내 글을 읽어주고 퇴고할 때 세심하게 내 초고의 생각을 고쳐준다. 제목만 써놓고 나중에 쓰려고 오랫동안 작가의 서랍에 방치해 냄새나는 글도 삭제하게 한다. 비가 오면 감상에 젖어 만물이 가진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혼자가 외롭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이 웃을 줄도 아는 여백이 생겼다.
나는 내 안에서 점점 순결해지고 정직해지고 과거의 잘못과 성품까지 깊이 반성해 태어날 때 가진 하늘의 색을 닮은 아이의 순수한 청결의 옷을 입는다.
그런 내가
하루는 TJ Max에 들러 브랜드 반바지를 저렴하게 구입했다. 집에 와서 옷을 다시 한번 입어보고 정말 싸서 좋다고 감탄하다 영수증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이런 바코드 착오인지 원래 금액보다 적게 돈이 찍혀 있었다. 가격차이는 2$, 정의로운 나는 집 근처라 바로 달려 나갔다. 계산한 캐셔에게 설명했다. "qwqeqrwfcxscsg" 그녀는 곧 알아듣고 나에게 2불을 더 받았다. 그녀는 또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 그냥 넘어가지, 2불 가지고 뭘 이렇게 다시 왔어?"
내 안의 나는 매우 흡족했다.
그다음 날이었다.
잘 때 숙면에 도움이 되는 중력 이불을 Target에서 구입했다. 여름에도 몸을 무게로 조금 눌러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전에 쓰다가 기증하고 한국 갔는데 또다시 사고 싶었다. 이번에도 집에 와서 화들짝 놀랐다. 또 직원이 실수한 건지 20불이나 적게 적혀 있었다. Target은 집에서 조금 멀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착한 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해. 그쪽 잘못인걸 이번엔 넘어가자. 어제 2불 착하게 해서 20불로 복 받은 거야 "
나는 20불을 꿀꺽 먹었다.
나는 내 안의 정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나는 내 안의 나를 존중하고 좋아하지만 여전히 나의 감시가 필요한 동반자라는 사실에 매일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