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Aug 06. 2022

수준있는 이웃

시카고 도심 아파트는 한국과 달라서 고급 호텔을 연상케 한다.


언제나 엄격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세입자도 크레딧부터 직장 연봉까지 세심하게 심사해 결정하기 때문에 주거지는 자신과 이웃의 수준을 말한다. 그래서 삶의 궤적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층에는 네 가구가 산다. 하지만 우리와 벽을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군지는 사실 몰랐다.  그러나  어제부터 들려오는 개소리 때문에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개는 늦은 밤까지 낑낑댔다.  생각 같아선 바로 프런트 데스크에 신고해서 해결할 일이었지만 점점 자정이 다가오자 옆집 벨 한 번 눌러 확인  해보고 신고하는 것이 옳아 보였다. 옷은 대충 추슬러 입고 나갔다. 옆집 벨을 누르는 순간, 띵똥 소리와 함께 갑자기 엘리베이터도 띵 거리며  문이 열렸다. 그때 집안에 개는 격렬하게 울부짖었고 주인 부부는 초면인 나를 보고 알아차렸다.


 " 아, 미안해. 우리가 너무 오래 집을 비워서 개가 시끄럽지?"


젊은 인도 여자와 백인 남자 부부. 인도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줌파 라히리를 닮았고 남자는 약간 시크해 보이는 줄리안 반스를 닮았다. 그들은 파티를 다녀온듯했다. 우리는 엉겁결에 인사를 나눴다. 현관문이 열리자 가지런히 미용해 고운 털을 가진 슈나우져가 뛰쳐나왔고 녀석은 그들 품에 안겼다. 그때 나는 하마터면 " 앞으로 오래 외출할 거면 저 녀석은 내게 맡겨 "라고 말할뻔했다. 강아지도 부부도 무척 예뻤다.


그 후론 강아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웃의 불편함을 알아차린 그들의 가족 중 누군가가 강아지 시터로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적당한 수준의 사람들과 적당한 교양을 나누며 사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내가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내 이웃은 적당히 전부가 맞지 않는 농사짓는 노인부부였다. 그들은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시골은 인심이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 시골은 부족사회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지 이방인에겐 인심이 후하지 않았다.  골목의 제일 마지막 집에 사는 나는 서울에서 가족들 차가 들어올 때마다 집 골목 전체에 널어놓은 작물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으며 도로 주변에 심어놓은 채소를 차가 밟는 문제로 집수리를 위해 찾은 우리 업자들과 그들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다. 그럼에도 나는 친절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반복되는 내 친절에 다소 태도가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집 동네 골목을 점령하고 온갖 불편함을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었다.


"시골 노인들에게는 단호해야 해요"


시골 출신인 동생의 애견미용사는 우리가 겪는 불편에 대해 항상 일관된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무르게 굴면 이웃에게 계속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게 그녀의 요지였다. 내가 단골로 가는 읍내 미용사도 같은 말을 했다.


 " 무엇이든 불편한 게 있으면 정확하게 좋다 싫다는 표현 하세요. 양보가 다 좋은 것은 아니죠"






그날은 너무 더워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나는 날 이었다.


내가 애지중지 하던 잔디는 얼굴 버짐처럼 노란색을 띠며 더위로 죽어가고 있었고 잔디를 미는 동안 내 가슴도 한 움큼씩 잘려 나갔다. 게다가 디딤석을 수리하며 손가락을 다쳐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그날은 시골생활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들어가 남은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었다. 그뿐 아니라 평소 조용하고 일면식 없던 건너집 에선 노래방 기기를 웅장하게 틀어놓고 낡은 노래를 목청껏 불러젖히는 여자 목소리가 내내 마음에 거슬렀다.


그래도 힘내서 집안 잔디 정리는 모두 마치고 담장 밖 화단을 손보러 나갔다.


 그 풍경은 가히 놀라웠다. 이런 세상에, 우리 집 앞 골목은 붉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빨간 고추 사체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도로보다 집이 약간 낮아 노출된 우리 집 지붕에도 고추를 널어놓았다. 순간, 그날 분위기 탓이겠지만,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이런 XX"


저 멀리 서 있던 옆집 화상 할머니는 그녀가 지붕에 널어놓은 고추를 내가 멍하니 보고 서 있자 등을 돌려 슬그머니 집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걸 어쩌지? 뭐 옆집에서 우리 집 지붕에 고추 좀 널었다고 화낼 것까지? 아니지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남의 집 소유를 자기 맘대로 침범한 거잖아? 내 안의 나와, 원래 나는 격하게 말다툼을 시작했다. 일단 담장 앞 화단을 다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해서 차분하게 화내지 말고  "우리 집 지붕에 고추 널지 마세요"라고 말하기로 결심을 했다.


평소에 잘 지내보려고 먹을 것을 자주 챙겨줄 때 상냥하게 등장하던 그녀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들어가 놓고 아무 기척도 없었다. 숨어있는 게지. 나는 여러 번 부르다  돌아와 일하던 장비들을 집어넣고 다시 들어가  " 저기 계세요? 할머니? " 하고 불렀지만 아무 기척이 없었다. "권사님!" 자기만 사랑하는 그녀는 근처 교회 권사였고 그 호칭을 무척 좋아했다.  역시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나는 쇠 쟁반에 담아 지붕에 올린 몇 개의 고추 쟁반을 바닥에 내팽개치려다 마음잡고 다시 조심스레 고추를 땅에 옮겨 놓았다.  






그날 오후엔 서울에서 여동생 가족이 방문했다.  내 얼굴에 수심을 발견한 동생은 물었다.


" 무슨 일 있어?"

" 아니  스트레스 받아서, 손도 좀 다치고"


그냥 넘어가려다 다 말하고 말았다.


" 너무 싫네, 남 불편하게 하고 도망가듯 숨어서 말도 않고 그런다 말이지?"


동생은 나보다 더 화가 났다. 내가 가서 난리 쳐 버릴까? 아냐, 하지 마. 일단 진정하고 기회 되면 그동안 쌓인 것을 말하자.  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김밥을 만들었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김밥은 역시 예술이었다. 아까 다친 손가락도 망가진 잔디도 무례한 옆집 할머니의 태도도 음식이 전부 지워버렸다. 김밥이 딱 두줄 남았다.


" 혹시, 이거 옆집 갔다 줄까?"


내 뜬금없는 제안에 동생은 벌떡 일어나  김밥을 썰어 쟁반에 예쁜 덮개를 씌워 들려주었다.


" 할머니!"


 "네?"


한참 뜸을 들이다 나타난 할머니는 몰골이 많이 상해 있었다. 이 더운데 다시 밭일을 하고 온듯했다.


"할아버지는요?"


" 안에 있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 아직 안 했어요. 방금 들어와서 힘이 들어서 쉬고 있었지"


나는 김밥을 건넸다.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감사하고 호박한개와 가지 두 개를 건넸다.


"아참, 그리고 우리 지붕에 고추 널지 마세요. 거기 녹슬어서 수리도 해야 하고..."


"네네"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애처롭게 답을 했다.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아까 그만한 일로 분노해서 소리를 치고 항의를 했으면 얼마나 일이 꼬였을까?


나는 봉사 활동하고 돌아갈 때 느끼던 그 행복감을 잠시 느꼈다.


수준에 맞는 이웃?

난감한 이웃?


아니


내가 먼저 베푸는 이웃이 되면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나는 그때 선명하게 알았다.    



https://youtu.be/0UoTMCPkMp8

    

 


   

 


 

작가의 이전글 내 안에 동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