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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ug 17. 2022

반려伴侶

짝이 되는 동무

  미시간 호수를 버리고 오랜만에 도심을 걸었다.


시카고 다운타운 N. 미시간 애비뉴는 늘어선 명품상가 덕분에 관광객들로 붐빈다. 나도 한때는 관광객으로 이곳을 드나들었다. 지금은 내가 현지인이라 이 거리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며칠 전 (남들은 오래전 이미 다 본) 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몰아서 봤다.  공유와 김고은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참 좋았다. 여러 가지 정제된 멋진 화면과 색감도 좋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전개가 압권이었다. 두 사람이 문을 열자 캐나다 퀘벡이 나오는 장면에 나도 언젠가 저런 문을 만들어 시카고와 한국 시골집을 연결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신선한 감흥이 밀려들어왔다.


 시카고 다운타운도 처음엔 감동이 많았지만 오래 살다 보니 도시가 따분해졌다. 마치 첫 사랑 했던 그녀와 삼십 년을 지나 재회했는데 낡아 해진 서로를 바라보며 지루하게 그저 웃다, 감흥 없는 시간을 보내고 마는 것처럼...


 언제나 어떤 것의 처음은 짜릿했고 나중은 항상 지루했다.


 삶이 그랬다. 처음 것으로 가득했던 찬란한 세상은 시간이 지나며 내가 낡은 것인지 세상이 낡아지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어디에서도 어릴 적 처음 감흥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고3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라면은 아무리 흉내 내도 다시는 그때 같은 그 맛이 등장하지 않았고, 요리에 자신 있던 남자 사람인 내가 서슬 퍼런 남자 기운으로 양파를 힘 있게 자르고 마늘을 짓뭉개 나만의 감칠맛을 음식 구석구석 교묘하게 구겨 숨겨놓곤  짠~하고 내놓지만  사실 난 내 음식이 지루하다.  식객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 유명한 "남이 해주는 밥"에 찬사를 담아 밥상 토크에 펼쳐놓지만 내겐 그것이 거짓 소음으로 들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시카고에 등장한 도깨비 신부 김고은과 함께 공유처럼 도심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명품관을 돌다 결국 저렴한 TJ max에서 바지 하나 샀지만 오늘만큼은 그들처럼 이 도시를 마냥 걷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내 눈을 의심할 놀라운 장면을 하나 목도했다.


작년에 한국 방문하기 전 온기가 사라진 추운 겨울 무채색이던 거리에 온기를 간직한, 그래서 색이 느껴지는,  백인 홈리스 청년과 믹스견, 귀가 아주 큰 강아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여기,  그들이 여름 거리에 앉아 구걸을 한다. (거리에 홈리스가 있는 미국이 거지를 전부 치워버린 한국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난 그 겨울, 구걸에 개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 알면서도 개 때문에 생각보다 지나친 금액을 적선했고, 그날 이후 강아지 통조림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볼 때마다 갖다 바쳤다. 어떤 날은 개는 그대로고 오후에 다른 청년이 그 자리를 교대해서 구걸했다. 개는 하루 종일 추운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청년은 개 주인이 맞고 형편은 좋지 않지만 애견인처럼 돌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

 지난해 추운 겨울 우리 만난 적이 있는데 오랜만이라고 오지랖을 떨었다. 처음에 청년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다 미소를 짓고 반갑다고, 지난날  청년CEO로 애견과 호화롭게 살았을지 모를 고운손을 내밀어 , 악수를 했다. 나는 "잠깐 기다려, 내가 네 애견 음식이랑 먹을 것 좀 구해올게" 하고 근처 서브웨이에서 (그의 취향은 모르지만) "Everything on it"  샌드위치와 콜라, 반려견을 위한 강아지 통조림까지 후다닥 구해 다시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 내 감정이 즉흥적으로 좋아서 하는 것을 나는 알았고 사실 약간 반가움에 다소 흥분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루한 도시의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그들에게는 지루한) 내  삶의 감흥을 되살리고 누군가를 도울 때 찾아오는 짜릿한 엑스타시를 맛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청년은 샌드위치와 애견 음식을 받고 좋아서 하얗게 웃었다.   


나는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개와 사람, 누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일까...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며 하루를 뒤적이다, 오늘 저녁 가족들과 남이 해준 소고기 외식을 했음에도, 거리의 그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늘 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 그들과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슬픈 청년과 불쌍한 개를 계속 생각하다, 로맹 가리의 소설 "유럽의 교육"에서  읽은 그 페이지를 일기에 적었다.


아마 사람은 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죽고, 또 너무나 불행할 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아니, 더는 할 일이 없을 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이 찾아드는 길이다...






 잠들기 전에 도깨비처럼 문을 열고 과거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 그곳에는 길냥이 두 마리가 들락거렸다. 암컷은 스레트고 남자아이는 흰둥이다. 이들은 우리 집을 차지하기 위해 한산대첩처럼 목숨 걸고 먼저 살던 검은 고양이 네로, 덩치큰  노랑이와 싸워  물리치고 입성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싫어했었다. 그들의 공격적인 흑역사와 그놈의 외모 때문이었다.  스레트는 수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집의 흉물 축사의 시커먼 스레트와 털 색이 같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고, 흰둥이는 싸움꾼이라 귀가 찢어지고 심하게 부은 얼굴로 만났다. 둘 다 싫었다. 스레트는 입은 옷 색깔이 싫었고 흰둥이는 너무 터프해 보였다.


 이 둘은 아침저녁으로 찾아왔다.

 

 "밥 달라냐 용" 협박인지 애원인지...


새벽에는 현관 마루까지 와서, 오래 쳐다보면 어지러운 눈동자로 뎅글뎅글 추파 던지듯 굴리며, 아침을 기다리셨다. 결국 고양이 사료를 한 포대 구입했다. 녀석들은 날마다 밥을 챙겨줘도 나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이 동거 나는 반댈세"


 대면에 첫인상이 망가진 그들과의 동거가 나는 불편했고 가끔 방문하던 동생은 그래도 집을 찾아온 아이들을 어떻게 내치냐는 논리로 서울에서 추가 사료를 계속 보내왔다.

 겁 많고 , 나를 호구로 보고, 수시로 무는 사나운 우리 제 바둑이가 가끔 시골집에  머물 땐 난리도 아니었다. 견묘지간犬猫之間을 현실에서 보는 순간이었다. 꼭 인간 부부 사이 같았다. 그럼에도 냥이들은 자기 구역을 잃지 않았다. 바둑이가 머물 땐 내가 몰래 놔둔 새벽밥을 먹고 다녔고, 비상계엄하에 그들은 평소 사용하던 고양이 구멍으로 드나들지 않고 지붕을 타고 담장을 이용해 출입을 했다. (드론을 띄워 높은 곳에서 바둑이를 감시하려는 듯 보였다)


" 어머, 스레트 임신한 거 아냐?"


" 에이, 아니야, 배가 나온 거지, 비만이야, 사료를 줄여야지..."


동생은 임신경험이 없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다 자기 배를 쓰윽 쳐다보았다. 임신 한건지 배 나온 것인지 정말 구분이 안 갔다. 임신 테스터에 두줄이 안 나와도 임신이 맞았다. 스레트는 하루하루 배가 불렀다.

동생은 서울 가서 이젠 습식사료까지 보내왔다.


 우리 집안은 이놈의 연민이 병이다.


그러다 한동안 스레트가 집에서 사라졌다.


"어디 사고라도 난 걸까?"


나는 혹시 몰라 종이박스로 산실도 꾸며 구석에 가져다 놓았는데 스레트는 실종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배가 홀쭉해진 스레트가 나타났다. 어디서 출산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루 두 번 방문하던 녀석은 그때부터 하루 한번 방문하고 흰둥이는 늘 그렇듯 두 번씩 찾아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저게 뭐지?"


어느 날 나는 눈을 의심하며 놀라운 광경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 하나, 둘, 셋, 넷..."


스레트가 꼬물이 아가들을 데리고 왔다.

아, 드디어 대식구가 되는구나 하는 탄식과 기쁨이 함께 몰려왔다. 아가들은 새로운 집에서 마음껏 뛰놀았다. 내가 인사하러 나가자 아가들은 신기하게 바퀴벌레처럼 사라졌다. 고양이 이유식을 공부했다.


" 사료를 불려서 어쩌고 저쩌고 @#$@$#@#%$%^* 아 몰라, 그냥 같이 사료 먹어"


우리 집 고양이는 엄마, 아빠, 아기 넷, 도합 여섯...


나는 고양이의 반려동물이 되었다.




담장 위로 노랗고 작은 족제비가 쥐를 사냥해 물고 달린다.

우리 집 길 고양이들은 사자처럼 앞마당에 누워 주무신다.


하나둘셋넷다섯여섯.



나는 그때 시골의 야생,

몸의 구석구석 감흥이 살아있고,

도시보다 행복했던 그 반려의 기억을,

뇌의 스위치를 내릴 때 마지막 정지화면으로 사용할지 모른다.        


https://youtu.be/k2wW-sIAu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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