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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ug 20. 2022

Tailgating

 놈은 집요하게 나를 따라왔다.


 빨간색 스포츠카였다. 오헤어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항상 붐비고 곳곳에 정체가 이어지는 곳인데, 나를 피해 가면 되지 왜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지 잘 이해 되 않았다.


 시카고를 경유해 귀국하는 화물기 조종사 친구와의 만남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공항에 가서 소소한 기쁨을 나누었다. 잠깐이지만 시간의 사각지대에서 얼굴이라도 보는 것은 요즘 같은 고액 항공권 시대에 공짜 사은품을 받은 기분이었다.

 기쁘게 만난 친구는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십 년 만에 만난 절친이었던 그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었다. 세월이 쌓여 막힌 둑같이, 공통 관심사의 괴리가 많았다. 그는 국내 정치와 주택 가격, 주식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자기가 주인이 된 인생의 나머지 삶에 대해 질문이 많았다.


 신경의학자이며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앞두고 한 말이 그때도 나의 화두였다.


"남아 있는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기력이 있는 한 더 많이 글을 쓰고 여행하고 싶다. 그래서 인식과 통찰력의 새 지평에 다다르려 한다. "  


 나는 항상 오래된 친구를 만날 때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오래된 친구는 오래된 기억에 갇혀 있을 뿐 "여기 지금" 내 앞에 기대했던 그 모습으론 나타나지 않았다. 내 앞엔 항상 낯선, 어쩌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 와서 앉아 있었다.  서로에게 더 이상 공통분모는 없었다. 오래된 친구는 이전의 내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외모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 뭐가 다른지 확인하느라 밥 한번 먹자고 했고 그렇게 밥 한번 먹으면 다시 만나기 어려웠다. 오랜 시간 외국에 사는 우리 이방인은 오래된 친구와 우정을 깊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이 친구가 우연히 나를 찾았다.  


친구는 여전히 송도 신도시 아파트값에 관심이 많지만 자기 몸에 낯선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고 대화를 주도했다.


"너, 눈썹 털이 혼자 한 개만 길게 나오진 않니? 누가 그러는데 우리 몸이 나이 들면 호르몬이 비정상으로 작동해서 균일하게 자라는 털이 각자 맘대로 자란데. 그래서 여기저기 털이 삐쭉빼죽 자란다는 거야. 하하 "  


 매번 3박 4일 시차 적응해 가며 평생을 비행했으니 나보다 먼저 몸이 고장 날 때도 되었다.

 

" 난, 오른쪽 뺨 작은 점에서 하얀 털이 혼자 심하게 자라. 그래서  매일 면도에 엄청 신경 써..."


  둘 다 웃었다.

 

 우리에게 넘쳐흐르던 열정과 욕망이 삶에서 동반 실종되었다.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도 전부 계엄을 걸어 통제하고 절제할 대상이었지만 이젠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가출해 버린 지 오래다. 밤새 안 깨고 자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자 친구는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테일 게이팅도 싫다고 했다. 친구는 생각 테일 게이팅으로 만성 수면장애에 시달린 지 오래라고 털어놓았다.  


친구 비행기를 뜰 때까지 밀어서 한국으로 날려 보내고 이별할 때 찾아오는 서운하고 허전한 기분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집요하게 놈이 나를 밀면서 테일 게이팅(이 단어엔 여러가지 다른 뜻 풀이가 있다) 한다. 나는 점점 예민해졌다. 한 성격 했던 나는 몇 분간의 꼬리물기가 이어지자 오랜만에 내속에서 호기스러운 공격 본능이 등장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넌 스피드로 인종차별하는 거야..."


나는 어려서부터 운전에 자신이 있었다. 스피드 티켓도 많아 벌점 죽이느라 교육도 여러 번 받았다. 운전하다 사람을 다치게 한적도 있었고 고속으로 측면 충돌해서 여러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놈인데 너 정도 스포츠카쯤이야,.. 이번엔 내가 놈의 꼬리를 물었다. 놈은 교묘하게 이리저리 달리는 차 사이를 도망치듯 달아났고 나는 경찰처럼 놈을 뒤쫓았다. 급정거와 수시로 번뜩이는 브레이크등, 뒤를 따를 때 적당한 공주 거리 확보가 어려운 것이 오랜만에 맛보는 스릴이었다.


 놈은 이 레이싱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 한국차 제네시스를 가지고 나와서 우리 차의 우수한 능력을 믿고 어차피 발발한 이 전투에 흥이 고조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불현듯 등장한 남자들의 전쟁 본능이 흥미로운지도 몰랐다. (차창에 짙은 틴팅을 해서 모르지만 운전자가 여자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다)


 서로의 꼬리를 바꿔 물며 달린 지 한참, 난 I-90에서 내려 길을 가야 했다. 이번엔 마지막으로 꼬리를 물다 놈을 추월해 마치 내가 이긴 듯 빠르게 옆을 지나 내 갈길로 들어섰다.


 빨간불이었다. 조금 지나자 내 옆으로 빨간 그 스포츠카도 나란히 멈췄다.


 빵 하고 짧은 경적을 울리더니 그쪽에서 창문을 먼저 내렸다. 놈은 구레나룻에 톰 크루즈가 쓴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약간은 뚱뚱해 보이는 건장한 젊은 흑인이었다. 랩처럼 속사포로 욕을 시작했다. 잠시 듣다 나도 판소리처럼 영어 욕을 했다. 빨간 신호등은 저 빨간 차를 도로에 묶어놓고 빨간 욕을 하게 놔두었다. 차에서 붐붐하는 음악소리와 랩 같은 욕소리가 터져 나오다 결국 그의 손에서 가운데 손가락이 불쑥 뛰쳐나왔다.


 나는 지성을 잠시 놓았다. 내 안에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분노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마침내 군대 시절 사용하던 한국 욕이 나왔다. 욕이라도 싫컨하자 나는 한국말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야~ @##$$%%#DGGTEW$&^*"


놈은 알아듣지 못해도 욕이란 걸 알았나 보다. 갑자기 영화 기생충에서 최우식이 "실전은 기세야"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내리려고 했다.  어쩌면 녀석이 권총을 꺼내 들지 모른다는 치밀한 계산도 했다. 주변에 증인이 많아 총은 꺼내지 못할 거야...


갑자기 파란불이 싸움을 말렸다.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시시하게 끝났고 에너지만 소진했다.


나는 다운타운에 들어서며 비로소 내면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정을 깊게 하며... 인식과 통찰력의 새 지평?"


혼자 웃었다.


너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https://youtu.be/QazDUeJMa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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