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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ug 27. 2022

평화의 순간

 그날은 이상한 새벽이었다.  묘한 평화를 느꼈다.


 요리가 우연히 잘된 날 그 비결이 무엇인지 되돌려 기억을 저장하듯 나는 평화가 느껴진 그날 평화의 이유를 찾아 천천히 복기해 보았다.


 그동안 실종되었던 내 평화가 발견된 곳은 서재였다. Calm Radio 클래식 음악이 헤드폰을 통해 내 귀를 점령했고  새벽 여명은 통유리의 맑은창을 조심스레 노크하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너무 이른 새벽 일어나  어젯밤 못 다 읽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맹 가리)를  읽으려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 졌고, 어느 순간 그 평화의  감정이 찾아왔다.

  

 "행복하다"를 넘어 "평화롭다"를 강렬하게 느낀 것 참 보기 드문 경우였다.






항상 그랬다.


여름이 끝나고 24절기 중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나면, 집안 청소를 미루다 이젠 반드시 해야 하는 강렬한 욕구처럼, 여름의 혼란을 정리하고픈 가을이 한걸음에 반드시 찾아왔다. 이번 여름은 더 이상 동해의 정열과 낭만을 품은 계절이 아니라 가뭄과 폭우의 얼굴을 가진 괴물이었다.  그럼에도 그 괴물, 혼란한 여름을 정리하며 헤어지는 것은 항상 시원섭섭했다.


 그네가 한없이 하늘로 솟구치다 막 내려오는 허공 자유와  변곡점이 숨어있다.  어떤  변곡점 앞엔 폭풍전야 같은 평화가 있었다.  




 어릴 때 <김영사>에서 발간한 "바이오 리듬" 이란 책에 빠진 적이 있었다.


바이오리듬은 인체에 신체, 감성, 지성의 세 가지 주기가 있으며 이 세 가지 주기가 생년월일의 입력에 따라 어떤 패턴으로 나타나고 이 패턴의 조합에 따라 능력이나 활동 효율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체는 23일, 감성은 28일 그리고 지성은 33일을 주기로 한다. 위키백과   


 조종사들 비행 스케줄 만들 때 바이오리듬을 참고하는 것도 보았지만 그 리듬은 인간이 동굴 속에 살지 않는 한 정확하지 않았다. 남녀 간 바이오 리듬 궁합은 더더욱 의심스러웠다. 그 원인도 환경 때문이었다. 내 리듬은 주변 사소로운 것부터 시작해 사건사고까지 모든 것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게다가 나는 어릴 때 완벽주의 성향이 지나쳐 정리정돈 좋아하고 계획적이며 가끔 충동적이기도 해서 남들과 다르게 내 바이오 리듬은 변태처럼 수시로 요동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간혹 평화의 순간이 있었다. 어쩌면 아프지 않고 배부를 때, 감성리듬 최고점의 순간, 혹시 그때가 평화의 순간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평화의 순간"은 더더욱 찾기 어렵고 "편한 순간"만 좋아하는 듯하다.




지난여름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나는 집에 드나드는 길냥이 사료를 매일 챙겨 주었다.


몇 번 지난 글에 언급한 고양이 스레트, 까칠한 그녀는 임신을 했고 한동안 발길을 끊다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친정 방문하듯 당당히 우리집으로 금의환향했다. 아가들은 몇 주 동안 우리 집에서 이유식도 얻어먹으며 무럭무럭 잘 자랐다. 새끼들 때문에 골칫거리는 더 많지만 하루 한두 번 제 어미 주변에서 노는 것을 볼때 나는 항상 숨이 멎었다.


"세상에 어쩜 저리 귀여운 것이 있을까?"


 넋 놓고 "고멍(고양이 보며 멍 때리기)"을 하는 순간, 나는 평화에 흠뻑 취했다.   


 어느 날 갑자기 평화의 도구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족제비가 물어간 건 아닐까, 다른 영역의 수놈 고양이가 해친 것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것저것 검색하다 고양이들은 새끼 낳고 한두 번 이소 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잔디 깎는 소음으로 예민해진 스레트가 새끼들 은신처 입구를 몸으로 막고 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하루 뒤에 어디서 주워온 빵 한 봉지를 감사의 표시로 남기고 스레트는 떠났다. 평화도 함께 떠났다. 




 새끼들의 빈자리가 시리도록 허전했던 어느 날, 통유리 앞에 번개처럼 번쩍이며 스치고 지나가는 작은 물체 하나를 보았다. 세상에 녀석들이다. 나는 얼른 먹을 것부터 준비해 나를 보면 바퀴벌레처럼 스스슥 사라지는 꼬물이들을 먹였다. 집 나가니 개고생 인가보다. 마음엔 미안함, 반가움, 행복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새끼들 노는 모습을 다시 오랜만에 구경하니 배부르고 한가한 것도 아닌데 행복감과 평화가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평화를 잃어버린 때는 머리가 어지러운 생각들로 가득차 어수선 하고, 내가 무엇이든 주도하려는 의지가 강할 때인 것 같다.


쉬운 말 같지만,

힘 빼고

받아들이고

생각을 멈추고

마음이 쉬도록 여유 가지면


행복을 넘어 평화를 자주 발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늘 "평화의 순간"이 되도록 애쓰며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며 살고 싶다.

  


  

 https://youtu.be/WiKRshWN7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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