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해 말아? 한국에서 온 지가 언젠데 나는 다시 돌아갈 날을 생각하고 그곳에서 쓰던 전자제품을 무질서하게 구겨놓았다. 전기가 안 맞으니 당연 한국 물건은 여기서 무용지물이다. 전기문제로 잠자는 기구 말고도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이어폰들이 뭉터기로 엉켜있었다. 나는 더 이상 뇌가 망가지고 싶지 않아 유선 이어폰을 고집한다.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넥타이처럼 종류도 디자인도 다양하게 엉켜있었다.
심기가 갑자기 불편해졌다. 이어폰 줄부터 풀기 시작했다.
엉킨 것을 풀다가 갑자기 용팔이 생각이 났다.
용팔이는 내 중학교 친구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고 불량배로 취직했다. 어릴 때 많이 친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대학 졸업할 무렵) 청량리 한 식당에서 보았다. 친구는 팀장급인 듯 패거리 사이에서 꽤 높아 보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서로 알아보았고 친구는 마시던 소주 한잔을 권했다. "친구야 오랜만이다. 어찌 지냈니? 난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해. 자 술 한잔 받아라." 어안이 벙벙하고 일행도 있어서 난감해하는 나에게 친구는 호기롭게 자기 자랑과 호탕한 웃음으로 힘을 과시했다.
" 너 말이다. 만약 이 동네에서 어떤 놈이 건들면 용팔이 친구라고 말해라. 용팔이 이름 흔하니까 꼭 내 성 독고를 붙여서 독고 용팔이 친구라고 말해라. 그럼 애들이 알 거다."
용팔이는 그 짧은 시간 머뭇거리는 나에게 참 많은 정보를 던져주고 떠났다. 그중 압권은 패싸움 때 한놈만 잡아패면 열이든 백이든 다 이긴다는 말이었다.
"한놈만 잡아 죽이는 거라, 팰 동안 누가 나를 각목으로 쳐도 딱 한놈 잡고 죽을 때까지
한놈만 패면 슬슬 물러나지. 지도 잡히면 죽을지 아니까..."
용팔이 명언은 내 인생 잠언중 한 개가 되었다.
"한놈만 죽인다"
문제가 엉켜 있을 때 나는 한 놈만 집중한다. 엉킨문제 전부를 생각하면 일이 더 안 풀리고 머리도 엉켜버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인 줄 풀다 갑자기 용팔이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하나씩 풀어서 정리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어제 나는 후배가 사는 샴버그를 방문했다. 후배는 아파트보다 전원주택을 좋아했다. 대도시 시카고에서 자기 사무실 가까운 곳에 편하게 살 수 있는 럭셔리 아파트가 있는데 그는 출근길 정체를 감수하고 약간 외곽 교외에 집을 구입했다. 그는 대형 로펌 변호사인데 시골 출신이라 농사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아니 어쩌면 매일 자기 집 정원과 텃밭을 관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여름 정원 잔디 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니까 론 케어 회사에게 맡기고 일주일에 한 번 잔디나 깎으래니까, 왜 형 말을 안 들어?"
그는 법조인 똥고집으로 자기 혼자 잔디 관리한다고 애쓰다가 여기저기 잔디의 병든 노란색 스폿을 막지못하고 완전히 황금들녘이 되어버린 부고를 받았다. 미국 주택단지는 잔디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어떤 곳은 잔디를 한주만 안 깎아도 경고장을 받는다.
"그러니까, 형이 도와주세요. 한국에 살 때 잔디 망해봤다며?"
그랬다. 난 한국 시골집에서 손수 잔디 씨, 캔터키 블루 글라스, 를 뿌리고 엄청난 성공과 놀라운 절망을 동시에 경험했었다. 결국 마당 잔디를 손수 손으로 갈아엎고 경작기로 땅을 갈고 토양 살균제, 퇴비, 비료 무엇하나 소홀함 없이 땅을 뒤집어 새로 씨앗을 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잔디는 또 한 번의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했다.
나는 용팔이처럼 후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한 가지씩 집중해 풀어가라고 조언했다. 잔디 문제는 복합적이고 잔디 생명체의 숫자는 정자만큼 많기 때문에 전문가 아니면 풀기 쉽지 않다고 침을 튀며 역설했다.
가장 먼저 흙이야.
우리는 잔디라는 멋만 생각하고 풍경만을 주목하지. 하지만 그 서양 제국주의의 부요함을 상징하는 그 멋진 풍경은 미스코리아와 같이 아름답지만 숨겨진 고뇌가 많다는 걸 모르지. 암튼 흙은 잔디의 기초야. 흙이 건강하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영양을 관리하고 살아있는 흙이 되도록 해야 해. 내가 한국에서 손바닥만 한 땅에 배추를 심었는데 장난 아니더라고. 벌레가 아주. 옆집에게 물었지. 답은 농약이더라. 우리나라 청과류 대부분 과비료에 농약이야. 마트에서 멀쩡한 애들 다 농약이라니까. 소, 돼지, 닭도 공장식으로 키우니까 옛날 같지 않은거야.
"형, 그거 전에 이미 다했던 얘기예요."
" 또 들어!"
나는 웃으면서 흙에서 시작해 물 주기, 잡초관리, 잔디 깎기 등 어쩌면 이 친구가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해서 용팔이처럼 자랑하며 길게 이어갔다. 후배는 곧 마당 파헤칠 공사를 강 노예 데리고 해야 하기에 억지로 참고 듣고 있었다.
"결론은 말이야. 문제가 엉키면 한 가지씩 풀어가야 해. 알았지? "
나는 그날 하루를 "열심히 안하지?" 소리 들으며 혹독한 무임금 노동자로 보내야했다.
문제가 엉키면 무질서가 되는 것이고 문제를 풀면 질서로 회귀한다.
엔트로피 법칙처럼 자연현상은 그렇다 치고 사람이 살다 보면 본의아닌 엉킨일을 자주 만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