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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22. 2022

엉킨

 안 쓰던 맨 아랫 서랍을 열어보고 아연실색했다.  


이걸 해 말아? 한국에서 온 지가 언젠데 나는 다시 돌아갈 날을 생각하고 그곳에서 쓰던 전자제품을 무질서하게 구겨놓았다. 전기가 안 맞으니 당연 한국 물건은 여기서 무용지물이다. 전기문제로 잠자는 기구 말고도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이어폰들이 뭉터기로 엉켜있었다. 나는 더 이상 뇌가 망가지고 싶지 않아 유선 이어폰을 고집한다.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넥타이처럼 종류도 디자인도 다양하게 엉켜있었다.


 심기가 갑자기 불편해졌다.  이어폰 줄부터 풀기 시작했다.


 엉킨 것을 풀다가 갑자기 용팔이 생각이 났다.

 용팔이는 내 중학교 친구다. 그는 대학에 가지 않고 불량배로 취직했다. 어릴 때 많이 친했는데 아주 오랜만에 (대학 졸업할 무렵) 청량리 한 식당에서 보았다. 친구는 팀장급인 듯 패거리 사이에서 꽤 높아 보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서로 알아보았고 친구는 마시던 소주 한잔을 권했다. "친구야 오랜만이다. 어찌 지냈니? 난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해. 자 술 한잔 받아라." 어안이 벙벙하고 일행도 있어서 난감해하는 나에게 친구는 호기롭게 자기 자랑과 호탕한 웃음으로 힘을 과시했다.


" 너 말이다. 만약 이 동네에서 어떤 놈이 건들면 용팔이 친구라고 말해라. 용팔이 이름 흔하니까 꼭 내 성 독고를 붙여서 독고 용팔이 친구라고 말해라. 그럼 애들이 알 거다."


 용팔이는 그 짧은 시간 머뭇거리는 나에게 참 많은 정보를 던져주고 떠났다. 그중 압권은 패싸움 때 한놈만 잡아패면 열이든 백이든 다 이긴다는 말이었다.


"한놈만 잡아 죽이는 거라, 팰 동안 누가 나를 각목으로 쳐도 딱 한놈 잡고 죽을 때까지  

 한놈만 패면 슬슬 물러나지. 지도 잡히면 죽을지 아니까..."


용팔이 명언은 내 인생 잠언중 한 개가 되었다.


"한놈만 죽인다"


 문제가 엉켜 있을 때 나는 한 놈만 집중한다. 엉킨문제 전부를 생각하면 일이 더 안 풀리고 머리도 엉켜버리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꼬인 줄 풀다 갑자기 용팔이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하나씩 풀어서 정리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어제 나는 후배가 사는 샴버그를 방문했다. 후배는 아파트보다 전원주택을 좋아했다. 대도시 시카고에서 자기 사무실 가까운 곳에 편하게 살 수 있는 럭셔리 아파트가 있는데 그는 출근길 정체를 감수하고 약간 외곽 교외에 집을 구입했다. 그는 대형 로펌 변호사인데 시골 출신이라 농사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아니 어쩌면 매일 자기 집 정원과 텃밭을 관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여름 정원 잔디 관리에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니까 론 케어 회사에게 맡기고 일주일에 한 번 잔디나 깎으래니까, 왜 형 말을 안 들어?"


그는 법조인 똥고집으로 자기 혼자 잔디 관리한다고 애쓰다가 여기저기 잔디의 병든 노란색 스폿을 막지못하고 완전히 황금들녘이 되어버린 부고를 받았다. 미국 주택단지는 잔디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어떤 곳은 잔디를 한주만 안 깎아도 경고장을 받는다.


"그러니까, 형이 도와주세요. 한국에 살 때 잔디 망해봤다며?"


그랬다. 난 한국 시골집에서 손수 잔디 씨, 캔터키 블루 글라스, 를 뿌리고 엄청난 성공과 놀라운 절망을 동시에 경험했었다. 결국 마당 잔디를 손수 손으로 갈아엎고 경작기로 땅을 갈고 토양 살균제, 퇴비, 비료 무엇하나 소홀함 없이 땅을 뒤집어 새로 씨앗을 심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잔디는 또 한 번의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했다.


나는 용팔이처럼 후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한 가지 집중풀어가라고 조언했다. 잔디 문제는 복합적이고 잔디 생명체의 숫자는 정자만큼 많기 때문에 전문가 아니면 풀기 쉽지 않다고 침을 튀며 역설했다.  


가장 먼저 흙이야.

우리는 잔디라는 멋만 생각하고 풍경만을 주목하지. 하지만 그 서양 제국주의의 부요함을 상징하는  그 멋진 풍경은 미스코리아와 같이 아름답지만 숨겨진 고뇌가 많다는 걸 모르지. 암튼 흙은 잔디의 기초야. 흙이 건강하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영양을 관리하고 살아있는 흙이 되도록 해야 해. 내가 한국에서 손바닥만 한 땅에 배추를 심었는데 장난 아니더라고. 벌레가 아주.  옆집에게 물었지. 답은 농약이더라. 우리나라 청과류 대부분 과비료에 농약이야.  마트에서 멀쩡한 애들 다 농약이라니까. , 돼지, 닭도  공장식으로 키우니까 옛날 같지 않은거야. 


"형, 그거 전에 이미 다했던 얘기예요."

" 또 들어!"


나는 웃으면서 흙에서 시작해 물 주기, 잡초관리, 잔디 깎기 등 어쩌면 이 친구가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해서 용팔이처럼 자랑하며 길게 이어갔다. 후배는 곧 마당 파헤칠 공사를 강 노예 데리고 해야 하기에 억지로 참고 듣고 있었다.


"결론은 말이야. 문제가 엉키면 한 가지씩 풀어가야 해. 알았지? "


나는 그날 하루를 "열심히 안하지?" 소리 들으며 혹독한 무임금 노동자로 보내야했다.


문제가 엉키면 무질서가 되는 것이고 문제를 풀면 질서로 회귀한다.  

엔트로피 법칙처럼 자연현상은 그렇다 치고 사람이 살다 보면 본의아닌 엉킨일을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난 삶이 엉키면 용팔이처럼 딱 한 놈에게만 집중한다.

   

엉킨,

풀린.


https://youtu.be/VOj5AfQVi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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