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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09. 2022

자기 혁명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레미제라블의 노래다.  지금도 나는 그 음악을 서재 블루투스 스피커로 크게 틀고 글을 쓴다. 2012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에 개봉된 이 영화를 나는 직접 개봉관에서 봤다.  미국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자 기립박수를 쳤고 나도 얼떨결에 일어나 손뼉을 친 기억이 난다. 영화는 가사가 영어자막으로 나와 편안하게 줄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휴 잭맨,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아만다 사이프리드, 에드 레이 메인 등 주요 배우들의 팬이 되었다. 여러 장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장에서 쫓겨나 머리카락을 팔고 매춘의 나락까지 떨어진 팡틴의 Dreamed a dream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 나는 가난이라는 삶의 논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의 여러 혁명 중 작은 봉기를 가지고 만든 정부군과의 전투에 나오는 노래 "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은 그저 가슴이 뛰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도 노래가 마음에 선명하고 나를 자극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내가 살아가는 삶의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아니 어쩌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학창 시절은 공부가 출세, 아니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공부는 군대의 선착순 체벌과 비슷했고 오징어 게임과도 닮았다. 암기는 공부의 중요한 기술이었고 노력은 무식한 열심으로 4당 5 락(네 시간 자면 대학에 가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나는 잠이 많아 늘 책상에서 엎드려 자며 공부했다. 반복해서 쓰고 외우고 밤에 외우고 나서 아침에 다시 외우면 더 잘 기억에 저장된다 하여 그렇게 연습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야자 끝나고 뒷골목 식당에서 먹던 라면이 그립기도 하다. 오래전 미국 대학원에 유학 온 90년대 학번 학생 하나를 알고 친하게 지냈다. 그는 무엇이든 복사기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암기했다. 우리 때도 암기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갔다.  명문대학 계급장은 고3 시절 한해만 노력하면 (그 당시) 평생 이마빡에 양반이라 붙이고 살며 권력과 부를 동시에 누리게 해 주었다.

 

 한심하게 나도 그렇게 이마빡에 계급장을 붙이고 살았다. 오죽하면 우리 아이들한테, 월마트에서 일하는 청년을 보고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월 마트에서 일해야 해"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삶의 무지는 내가 생산하기도 하지만 사회와 국가가 제공하기도 한다. 무지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치명적인 듯하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팡틴의 노래에서 가난을 읽었다.

 

 대한민국 민중의 봉기를 보고 자란 나는 이전에 민중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군사정권에서도 은밀하게 Legitimacy 뜻을 가르쳐 주시며 현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던 용기 있는 정치학 교수님께 배우며 자랐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우유부단하게 머물며 먹고사는 거기 그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남아있는 정신적 적폐다. 내가 경험한 미국 사회는 천조국이라는 군사력뿐 아니라 국민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정의와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아는 많은 미국인 지인들은 그렇게 직업을 잃기도 하고 실업자가 되기도 했지만 또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는 주로 인터넷으로 보게 된다. 식상한 뉴스 대신 너튜브도 잘 보는데 가끔 자화자찬의 우물에 빠진 너튜브의 국가 찬양 (지하철 자랑, 인천공항 자랑, 한식 자랑, 축구 자랑, 국민성 자랑, 도시 자랑 등)을 본다. 그것은 왠지 열등감으로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국민은   자기모습 그대로도 자체발광하는 우수한 민족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업무상  코리안 아메리칸 땅주인과 미팅이 있었다. 그는 거지같이 하고 나왔다. 예의가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부동산 업자( 미니스커트 정장에 하이힐, 벤츠를 타고 온)는 " 원래 진짜 부자는 저래요"라는 말로 그의 행색을 궁색하게 변명해 주었다.  진짜 부자는 굳이 말로 자랑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삶이 가난하고 추우니까 명품을 걸치고 화장을 하고 거짓말을 해서 나를 공작새 처럼 부풀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 자신에게 쿠데타를 세 번 일으켰다.


 한 번은 내 종교에 대한 쿠데타, 참된 각성이라는 말이 옳은 것 같다. 구태의연한 낡은 기독교를 버리고 제대로 정리해서 참 신앙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혁명은 유전자 혁명이다.  내 몸에  섞여있는 아버지 피의 불순물을 정확히 이해했다. 내 어리숙한 생각과 태도에 섞여 있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장단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혁명적으로 정리했다.  그저 부모보다  조금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한 내가 가장 형편없고 매우 작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 있었다.  자감은 초라한 자기발견을 거쳐야 비로소 등장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마지막 혁명은 살아갈 이유를 분명히 깨달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주, 지구, 인류, 신, 생명 등에 대한 총체적 통찰이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불렀다.


혁명을 거치자 나는 부족하고 작지만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도 자기 혁명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온전하게 생명의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


https://youtu.be/TX9UtBij_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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