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흠이 있다면 두 마리의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가 고객 소파 옆에 도도하게 앉아 노란 나를 관찰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기다리게 한 하얀 비서는 자기 일에 몰두해 있었고 고양이와 나는 조용히 눈으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 헤이 노아!" 조금 뒤 범상치 않은 변호사가 나타났다. 비서도 1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남미 여자였는데 변호사는" 변호사라 쓰고 모델이라 읽는다"가 맞아 보였다. 키는 비서보다 더 크고 하이힐까지 합하면 내가 올려보아야 했다. 아랍계로 보이는 외모에 하얀 머릿결과 노란색을 곁들인 염색을 하고 있었다. 선배는 변호사를 소개할 때 내가 좋아할 거라고 했었다. 나는 첫인상에 이미 놀라고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녀 방엔 페르시안 고양이가 두 마리나 더 있었다. 그녀 눈은 자기 고양이를 닮았고 나는 사무실에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하지만 업무에서, 화려한 그녀는 조용하고 섬세하고 예리하며 진중했다. 모델이나 연예인을 상상하는 외모와 달리 실력 있었고 의뢰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준비도 잘 되어 있었다. 선배는 내가 좋아할 완벽주의를 이미 알아 차린 것 같았다.
변호사와는 일로 자주 만났다. 그녀는 약속을 잘 지켰으며 페르시안들과도 가까워졌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내성품을 몰래 알아차렸는지 녀석들은 내가 방문할 때마다 내 무릎을 찾았다. 그녀는 내가 지불한 수임료보다 일을 더 많이 했다. 내가 의뢰한 업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게 허그하며 인사를 했다. 내 착각이겠지만 그녀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듯했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은 정말 고양이를 닮았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2
내가 사는 시카고 고층 아파트 데스크에 근무하는 제임스가 페르시안 애기를 데리고 출근했다. " 헤이 제임스, 이게 무슨 일이지? 부인이 고양이를 출산했어?" 나의 아재개그를 그가 받아쳤다. " 글쎄 이번엔 개가 나올 줄 알았는데 고양이네" 우리는 동시에 허당처럼 낄낄거렸다. 나는 미국 사람들의 이런 가벼움을 좋아했다. 한국에선 나이에 맞게, 차라리 입을 닫는 것이 유리 할때가 많아 입을 닫느라고 고생한 적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참을 웃고 나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는 아내가 키우던 페르시안이 새끼를 낳고 적당히 자라 입양을 보내고 한 마리만 남겼는데 그 녀석이 이 아이고 오늘은 아내가 수의사를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자기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제임스와 아내는 둘 다 백인이 섞인 흑인이었는데 그의 아내 눈은 고양이를 하나도 안 닮은 그냥 평범한 아몬드 눈이었다.
잠깐 변호사 생각이 났다. " 한번 안아 봐도 돼?" 변호사 눈을 닮은 페르시안은 따뜻했고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3.
한국 시골집에 머물 때 길고양이 두 마리가 집안을 들락거렸다. 검은 고양이 네로와 노란 고양이 노로 였다. 마침 집 마당에 두더지도 있어 보이고 뱀도 한 마리 처치한 적이 있어 그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허락했다. 사료도 주문해 먹이기 시작했다. 얼마간 균형과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침략군이 쳐들어왔다. 지금도 살고 있을 스레트였다. 스레트는 낡은 스레트 색의 군복을 입었고 무척 예민하고 눈이 섹시한 여군이었다. 침략군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중국처럼 덩치가 크고 몸이 하얀 흰둥이와 함께였다. 결국 네로와 노로는 낙동강 방어에 실패하며 점령군이 우리 집을 차지해 버렸다. 나는 참 난감했다. 즉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열었다.
서울가족들은 어차피 길고양이들도 생태계가 있을 거고 우리 입장에서 고양이 두 마리 정도 들락거리는 것을 허용한 것이니 그냥 두기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나는 대장 흰둥이를 하로라 작명하고 녀석을 미워했다. 밥도 조금 주고 틈만 나면 박해했다. 언젠가 네로가 돌아오길 바랬다. 나중에 잘 살펴보니 하로는 스레트의 엄마였고 자식을 사랑하고 관리하는 모성애도 보였다. 얼마 후 스레트는 가출했고 밖에서 임신한 네 마리의 아이를 낳아 당당히 우리 집에 입성했다. 네로와 노로는 영원히 사라지고 우리 집은 여섯 마리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세월이 약인지라 하로와 나는 화해했다. 그런데 녀석은 의외로 과묵하고 진중하며 예의 바르고 나에게 눈을 껌뻑이며 애정 인사도 할 줄 알았다.
나는 그해 겨울, 아기 길 고양이들을 업어 키웠다. 어쩌면 변호사 사무실 하얀 페르시안의 하얀색이 하로를 받아들이는데 영향을 주었고 내 선입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하얗고 예쁜 변호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하얀것은 좋다는 흑백논리때문인지 모른다.
4.
나는 애견인이지만 고양이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이불속에서 키우기 시작해 예뻐했는데 내가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로 들어가자 함께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녀석은 내가 집에 올 때마다 어떻게 알고 지붕에서 울었다. 잡으려 하면 도망갔고 나는 멀찌감치 그 아이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