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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16. 2022

사실이나 사실과 다른

 나는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있다. 


 어려서 읽은 것 같은데 지금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내 어릴 적 문해력과 어른이 되어서의 이해 차이가 대단히 차이가 나서 그럴 테지만 삶을 이해하는 차이 또한 크게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그 많은 차이중에 가장 괄목할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번역의 차이다.


 나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수십 년 미국에 살고 있어도 두 가지 언어 중에 한국어가 편리하다. 아이들은 이미 미국어가 편한 미국인이고 나는 여전히 모르는 영단어를 찾아 공부하며 전공서적 빼고 머리 식히는 책은 한국어로 읽는다. 한때 번역의 오류가 심한 책을 읽다 분노가 치밀어 영어책 원본을 구입해 갈증을 해결한 적도 있었지만 내 언어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 그 일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번역하다 절감했었다. 나는 국어 실력도 형편없으며 영어 실력도 엉망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말았다. 매사에 조금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이처럼 형편없는 언어 실력을 알고 나자 사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 전 LA에서 친하게 지내던 IT계열 부사장이던 한국인 지인은 재미난 일화를 들려주었다.


" 내가 한국에 처음 출장 갔을 때 한국 측 회사는 유명 호텔에 방을 잡아두고 호텔에서 조식을 겸해 회의를 시작했어요, 이른 아침인데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에 단정하게 하고 나왔더라고 나는 샤워만 하고 대충 반바지로, 왜 알잖아 미국에서 아침 뷔페 먹을 때 편한 차림,으로 나갔지. 처음엔 내가 누군지 모르다가 나를 알고 나니까 놀라면서 조폭처럼 인사를 하더라고, 참 불편했어요. 아 여기가 한국이구나 하고 느꼈지"
그는 중학생 때 이민을 와 한국 문화를 모르고 자랐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 나는 지금도 매일 새벽 영어공부를 해요. 매일 아침 회사에서 미국 아이들이 브리핑을 하는데 어떨 땐 단어 몇 개를 못 알아듣겠는 거야. 그럼 그 단어를 가지고 디음 날 아침 한바탕 공부질을 하지"

 내가 중학생 때 만난 몰몬교 선교사도 그랬다. 대화중 모르는 한국어 단어를 모나미 볼펜으로 손바닥에 문신처럼 새겨놓곤 했었다.


 미국에 오래 살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실이나 사실과 다르다."


 사실과 다른 사실은 세상 도처에 깔려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찾아보는 여행지의 정보는, 특히 호텔의 사진과 환경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여행정보나 사람들의 특징 또한 사실과 다르다. 결혼정보회사의 사진과 첫 만남에 대하게 되는 그녀(그)는 사실과 다르며 결혼 전의 그녀(그)와 살아보니 느끼는 그녀(그) 또한 사실과 다르다. 뿐만 아니라 첫인상에서 느낀 그(그녀)는 시간이 흐르면 사실과 다르다.


나열하면 종이가 모자라 끝이 없겠지만 왜 이토록 "사실은 맞는데 사실과 다를까?"


 그 답은 서두에 언급한 번역의 문제에서 제공한다. 존경하는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영국의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하여 맨부커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수상작은 번역가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NBC가 제작한 오래된 작품, 형사 같지 않은  형사 콜롬보는 더빙을 배한성, 최응찬이 맡았는데(나중에 최응찬이 전담) 나는 오래전 미국에서 재방된 콜롬보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익숙한 만화영화 가제트, 로빈 윌리엄스의 더빙 성우도 배한성 씨의 전매특허였다. 이처럼 더빙한 목소리는 번역의 오류와 함께 목소리 차이로 인해 작품과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어 외국 배우들이 한국인이 되어 걸어 나온다.  이 또한 "사실은 맞는데 사실과 다르다."


나는 수많은 사실과 다른 사실을 영점 조준하기 위해 나만의 비법을 사용한다.


 우선, 정보를 믿지 않는다.


 특히 너튜브에 등장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가짜 정보와 잘못된 정보는 심각한 문제다. 난 10초의 여유를 준다. 제목에 "경악,난리, 대박, 기절, 충격, 전세계, 초대박, 뒤집어진, 속보" 등 경박한 제목들은 무조건 거른다(끈다). 대부분 미끼다. "구독 좋아요"를 강조하는 채널도 미안하지만 패스다 "구걸"이다. 이런저런 나만의 방법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열개 정도 채널을 구독한다. 이는 메이저 언론에도 기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나는 아요 구독을 할수있는 전지전능하신 구독자다.


둘째, 웬만하면, 필요한 것 빼고,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언제나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착륙할 무렵엔 kbs 뉴스가 기내에서 방영되었다. 시그널 음악만 들으면 설레고 흥분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뉴스를 보지 않는다. 뉴스를보면 머리가 아프다. 우리나라가 치안이나 사회 전반적 시스템이 외국에서 보기 어려운  몇가지 강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단순 비교만으로 훌륭하다는 국가 평판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 막걸리에 알콜을 타서 배추밭에 갖다 놓으면 벌레가 싹 죽는다는 초딩적 실험과도 유사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성장하는 중이지 세계 선진국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최고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구구절절 할 말은 많지만...


 마지막으로, 사실과 다른 사실을 만나기 전에 제일 중요하게 하는 작업이 있다. 그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 

 타주에 살 때 유학생과 시카고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 전 유학원 사진에 나오는 장면과 여기가 이렇게 다른지 몰랐어요" 그녀는 자기 학교뿐 아니라 유학원에서 홍보한 사진과 다른  미국에 대해 실망한 눈치였다. 이젠 내가 시카고에 살면서 이 도시에 실망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이 도시에 여행으로 와서 보고 살고 싶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별것 아니었다.  요즘 코로나 시대 이후 여행 말고 사는 미국은 이전보다 더 무섭다.


지구라는 행성도 예외는 아니다.


 우주먼지에서 생명이 되는 기이한 영겁의 마술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 후예로 이 땅에 살아남은, 아님 하나님의 섭리로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난? , 우리는 이 행성에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세 번의 결혼과, 조종사, 외교관, 작가, 영화 제작 등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천재 작가 로맹 가리가 60대에 권총을 입에 물어야 했던 이유도 더 이상 이 행성에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과 다른 아비규환의 지옥 같은 외침 소음에서 멀리 떠나 조용히 멍 때리며 자주 삶을 관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질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독일 유보트 승조원의 마지막을 고통 없이 앞당기는 비결일지 모른다.    


나는 내 식으로 이렇게 산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고 행복할지 모르는 망상은 사실이 아닐 테지만 애써 믿어보려고 노력하며, 어떤 형태로든 불현듯 찾아올 죽음에 대비해 군대에서 아랫배에 힘주고 주먹질을 견뎌내던 그 오기와 깡으로 죽음의 매를 맞을 각오도 하고 산다.  


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 

사실은 맞는데 사실과 다르다.

    

https://youtu.be/j_kQsSgvZ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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