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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18. 2022

삶의 속셈

" 너는 항상 너무 속이 훤히 다 보여." 

 앉으나 서나 이모는 내 속이 다 보인다고 타박했다. 미국에 오면 영어를 못하니까 끽소리 못하고 지내다가 한국에 내가 방문하면 나보고 또 저런다. 속 좀 감추고 살아. 저놈의 지적질은 우리 집 최우성 유전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속셈을 못했다. 아니 어쩌면 수학에 약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암산이나 속셈이나 주판이나 이런 것에 재주가 없었다. 그뿐아니라 생각도 느리고 반응속도가 약해 빠르게 들어오는 상대 언어 공격에 취약해서 버벅대며 말로 못 이기다 순간적으로 주먹이 먼저 나갔다. 우리 큰애가 나를 닮아 동생에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편이다.


어른이 되면서 청년시절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속이 안 보이는 훈련을 다 이수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미국 사람은 더 속이 없다. 우리처럼 계산적이지도 않고 생각도 단순하다. 에누리에 기싸움에 힘 뺄 생각도 없고 물건도 마음도 정찰제다. 애초부터 동양인 이노무자슥이 우스워서 그런지도 모르고, 아니면 속을 아예 꽁꽁 걸어 잠그고 거짓을 공개용으로 내놓고 사는지 모르지만 있는 그대로 사는 모습에 나도 동화되었다. 원래 속없던 내가 맑은 투명 유리가 되었다. 내 마음엔 투명 통유리를 달아 남이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그나저나 나는 그런 나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적어도 한 직업에서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르면 

 그렇게 속없는 놈 이라도 말을 경청해주고 속없게 행동하는 철없음도 받아주고 때론 억지를 부려도 통한다. 그런데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책상 명패가 치워지면 웬걸 고분고분하던 놈들이 그렇게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나 할 정도로 눈인사만 쓱하고 믿는 도끼들에겐 자주 발등을 찍힌다. 내가 그동안 나쁜 놈이었나 골똘히 생각하다 답안지엔 <너도 언젠가 당해봐라> 쓰고 패스다. 여간 낭패가 아니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자식들이 수도 없이 폭동을 일으킨다. 이미 권좌에서 내려왔건만 "나이가 벼슬이냐" 피켓 들고 시위한다. 나는 결국 정권을 내려놓고 내 나이 "0"살로 수정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내 부하가 아니다. 마눌님은 내가 내시로 모신 지 오래다.


 어느 날 갑자기, 가만... 생각 좀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 시골에서 한 일 년, 집 고치며 원 없게 살았다. 

 슬슬 몸이 근질거리는 걸 보니 오 필승 코리아가 나를 부른다. 그 시골은 백제 땅이었다. 주변 사람은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고 했다. 인터넷 보고 왔다고 하면 체면이 안 설 것 같고 그래서 전주고, 남성고, 명문고 출신 자랑하는 절친들의 명성을 팔았다. 사실대로 친구 소개받아 왔다고 하자 은근 시골 눈빛이 우호적으로 달라졌다.


 그 땅엔 지방색이 있었다. 나는 서울 사람에 미국 촌놈이라 그들은 나를 무심하게 개 쳐다보듯 바라봐 줬지만 내 절친들한테 미처 발견하지 못한 특징을 옆집 영감님에게  발견하게 되었다.


  속셈이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속마음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웃과의  땅 경계문제로 약간 설전이 있었는데 일 년간 참고 상대했더니 그들이 양보해 주었다. 내가 살던 집에 한오년 주인이 안 살 때 우리 대문 앞에 이웃의 텃밭을 일구어 놓도로마저 좁아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거기 작물 좀 치우고 주차장으로 써야겠다 했더니 노인은 "시골을 몰라서 그렇지  먼저 차지한 은 안 건드는 도리여"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고, 때론 좋게 타협도 하며 서로가 노력했지만 잘 안 풀리다가 그분들이 마침내 선의를 가지고 원래 우리가 땅을 돌려주었다.


 눈에 가시 같던 영토분쟁이 해결되니 참 시원하지만 가슴이 아팠다. 

 시골에서 저토록 땅을 차지하고 허리 휘어지며 노동한 대가는 뭘까, 인생은 뭘까, 하는 생각이 새벽에 다리 저리듯 찌릿하게 온몸에 찾아왔다.  인터넷 정글에서 자판 두드리며 허리 휘어지게 수고하며 밥 벌어먹는 현대인이야 이해 못 할 바지만, 땅을 찾은 날 나는 괜스레 시원섭섭했다. "노인네들, 더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이상하게 속에서 화날 때처럼 치밀어 올랐다.     


 아무러하든 그 노인들은 속셈을 잘했다. 

 앉으나 서나 표정에 변화도 없었고 우리네 가족들이 들락거릴 때 예쁜 중년 여동생  빼고 잇몸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통 그 속을 알 길이 없었다.  아, 그래 할아버지가 속셈을 잘하시는구나. 절친 생각이 났다. 그놈도 속셈을 잘한다. 이놈은 어쩌다 중견기업 부사장에 대주주다. 서울에서 잘 나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전에 그가 아니다. 졸부같이 생각하고 졸부같이 말한다. 부자 친구들은 미국에서 오랜만에 친구가 만나자 하면 조금 대화하다 얼마 안 가 돈 필요하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누가 오랜만에 찾아오면 보험 들라고 한다는 구석기 농담으로 얼버무리지만 몸에 갑옷이 찰싹 붙은 거다.  그래서 난 부자 친구들을 멀리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며 네 재산의 십 퍼센트는 세상에 토하라고 하면 개처럼 컹컹 웃는다.  그래서 난 부자들은 안 만난다. 언제는 온갖 아첨 떨며 경애하는 미국에 놀러 오더니 요 십 년 어간에 경애하는 한국 살람 태도가 참 오만해졌다.


오래전 만난 반가운 지인은 서울 대형교회 목사님 부인 이시다. 그분이 식사 도중 요즘 서울 부자들이 전쟁을 대비해 땅굴, 지하실 있는 집을 선호한다며 객담을 늘어놓았다.  그래 나는 부르주아지가 아니지 뼈다귀만 남은 프로레타리아 주제에 놈들이 땅굴을 파든 B747을 개조한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북한의 핵도발을 피해 살던 그건 내가 알 바 아닌데, 나야 태평양 건너 누군가 브런치 글에 좋아요, 띵똥 소리에 코카콜라 목구멍 내려갈 때 트림하듯 기분 좋아지는 소시민인데,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핵전쟁 나면 다 죽을 텐데) 그때도 대화 중 치밀어 오르는 속생각에 브레이크를 잡느라 애쓰다 말없이 그저 웃었다. 어라라 나도 모르게 이웃집 할아버지의 속셈 기술을 전수받은 셈이었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비겁한 것 일까, 아님 지혜로운 것일까...


이 나라에서 잘 쓰는 영어 " IT's up to you"가 답이겠지.


난 어쨌든 그때 시골에서 속셈을 배웠고 이모 앞에서 속없는 소리를 끊었다.

그러자 이모는 다른 버전으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너 요즘 왜 그리  말이 없니? 어디 아프니?"      


난 언제나 물끄러미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미국에 놀러 오면 난 또 속없이 행동한다.


난 그게 더 자유롭다. 하지만 난 이제 속셈도 할 줄 안다.   


https://youtu.be/jFdscUaR3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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