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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3. 2022

인터뷰

 바람의 도시 시카고는 지금, 미국 전역을 위협하는 북극한파와 스톰으로 가혹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화상 인터뷰 리허설을 진행했다. 미국에서 조기유학 마치고 8년 전 국내 대기업에 취직한 미녀 조카의 요청 때문이다. 그녀 전공은 생물학이고 주로 외국인과 한국에서 일을 한다.


"자, 그럼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


 우리는 서로 시차를 극복하고 각자 책상 앞에 앉아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서로를 보고 웃는다. 둘 다 속옷차림이다. 인터뷰 리허설 전 그녀의 치열했던 직장 이력서를 최종 확인했다. 왜 잘 다니던 한국회사를 포기하고 미국회사로 오려는지, 미국 회사정보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인터뷰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는 어떤지 점검했다. 곧이어 나는 면접관이 되고 그녀는 지원자가 되어 영어로 롤플레이를 시작했다.


" 왜 우리 회사지?"


 나의 첫 번째 질문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답변을 유창하게 읊어댔다. 답변이 길어지면서 갑자기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벌써 한국애가 다 되었구나. 외워서 준비한 것이 금방 티가 났다. 마치 연기초보자가 발연기하는 것 같아 자연스럽지 않았다. 나는 경청하면서 메모를 했다.

 그녀의 영어는 유창했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다 보니 많이 녹슬었다. 말하다가 한국말로 뭐지? 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만약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해결하는지, 또 그런 예가 있다면 설명하시오"


 그녀가 잠깐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는 예상문제라는 듯 또 줄줄줄 외워서 대답을 잘했다. 나는 "잠깐!!" 대답을 멈추게 하고 "공기반 소리반" 가수 박진영처럼 꼼꼼하게 지적을 했다.  자, 다시 계속해보자.


" 만약 동료의 실수로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은 팀워크를 어떻게 재건할 건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카는 살짝 버벅거리며 짧게 대답했다. " 잠깐 삼촌" 이번엔 그녀가 급 브레이크를 잡았다.  여기서 내가 준비가 좀 부족한데  전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좀 더 연습해야 해요"

 나는 또 노트에 비밀 메모를 적었다.  " 쟤는 뭐든 외워서 준비함. 바보시키"


 다시 영어 인터뷰가 재개되었다. 요즘은 그런 게 없다며 이력서에 기록하지 않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질문했다.  역시나 준비하지 못한 듯 그렇고 그런  답변이 돌아왔다. 

 

왜 우리 한국인은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답변을 못할까?






 코로나가 터지기 오래전 지인의 딸은 우리가 살던 중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로 향했다. 그때도 대부분 면접은 화상통화로 이루어졌지만 그 회사는 2박 3일 자기 회사에 방문할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회사가 마련해준 고급호텔에 여장을 풀고 신입사원처럼 회사 견학도 하고 호텔부근 고급레스토랑에서 임원들과 식사를 겸해 자연스럽게 면접을 했다. 식사예절은 어떤지, 밥을 먹으며 어떻게 대화하는지, 부모님에 대한 질문,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추억에 대한 자기 생각등 업무에 관한 전공지식보다 자신의 일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경청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지인의 말을 들으며 긴 탁자에 길게 앉아 줄줄이 짧은 의자에 앉은 작은 지원자들을 냉정하게 무 자르듯 평가하는 한국의 면접장이 떠올랐다. 그녀의 면접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지인의 딸은 출장 인터뷰를 마치고  합격해서 가족을 떠나 타주로 이사했다. 창의적인 면접방식에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답변한 것이 합격의 비결 같다고 그녀 가족은 생각했다.






나는 여러 가지 질문 끝에 마지막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 당신의 Life goal은?"


영상에 비친 조카는 리허설 도중 가장 당황한 듯 보였다. 웃음기 싹가시고 감전된 듯 말없이 침음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그녀는 화면뒤에 서성 거리는 엄마에게 크게 소리 질렀다.


" 엄마~ 내 인생목표가 뭐지?"


......





 우리는 리허설을 마치고 리뷰를 했다. 외국회사에 취직할 녀석이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는 것과 몸에 잔뜩 들어있는 불필요한 힘을 하나씩 꺼내 분해해 주었다. "가장 너답게 말하고  모르는 것 있으면 억지로 짜지 말고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녀는 내 지적을 대부분 수긍했다. 자신의 암기 연습은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생목표에 대해 생각 좀 해보고 잘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조카가 좋다.


다음날 미국서부 오후, 한국의 이른 아침에 화상통화로 실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 결과 어떻게 나왔어?"


조카는 공항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막 현관에 들어선 여행객처럼 말했다.


" 잘했어요, 삼촌 말대로 모르는 질문 하나, 내가  네 생각은 어떠냐고 역질문했고 분위기 좋게 마쳤어요.

아마 합격하면 2차 면접하라고 e멜이 곧 올 거예요"   


그녀는 나에게 감사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기특한 녀석, 가끔 나 닮은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또 나 닮아서 미울 때가 있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모습으로 지루하지 않게 생을 살아간다.


아픈 지구가 거칠게 토하는 겨울폭풍의 세모를 맞아,

올해 내 인생의 목표는 안녕하신지 나도 깊게 생각해 본다.



https://youtu.be/A8zO2KX_V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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