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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Dec 26. 2022

전자책

전자로 된 책인가? 참이름도 우스꽝스럽지, 우리는 이것을 전자책이라 부른다.  

앞으로 형광등은 전자등이라 불러야겠다.   


 옛날에 절친 선배는 집에 놀러 오면 꼭 태블릿을 가지고 와 밤새 전자책을 읽었다.

" 안 자고 뭘 그렇게 읽어?"

" 응, 무협지"

 밤새 무협지라니 나이가 얼만데 저걸 읽나 하는 생각을 하다,  무협지나 만화도 독서일까? 하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해본 기억이 난다. 나는 선배가 몇 가지 면에서(컴퓨터 도사에 클래시컬 악기연주자, 전문직) 특출 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무협지 독서는 백수의 전공이 아닌 스트레스 해독에 해당한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난 전자책을 잘 읽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기사를 인터넷으로 볼건지 신문으로 읽을 것인지의 차이겠지만, 전자책의 가장 불편한 점은 화면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공기 중 미세먼지 같은 그 빛은 피곤하고 불편하다. 게다가 전기만 꺼지면 별 볼 일 없는 현대문명의 artificial 한 것을 나는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종이 글을 선호했다. 물론 옛날옛적 한국 비디오 빌려보던 시절 미국에서 구독하던 몇 개의 한국일간지는 인쇄된 글이 손에 시커멓게 묻어 싫어했다. 하지만 글은 역시 나무에 담겨 살아야 오래가고, 오래되면 나이가 들어 보여 보기에도 좋다.  


어느 날 인류 문명에 갑자기 등장한 아이(AI:나는 이 녀석을 이렇게 부른다)는 비행기도 조종하고 운전도 할 줄 안다. 의사 노릇도 하고 음악을 작곡하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 닮은 외모도 지녔다. 창조 호모 원숭이는 스스로 신이 되어 알던 대로 배운 대로 흉내를 낸다. 역사 속의 조물주 처럼 전쟁놀이도 하고 무기 만들어 팔며 "혹성탈출"의 시저처럼 민중에게 자유의 환상과 빵을 먹이고 정권 잡아 천년만년 전쟁 하기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국가를 위해 죽어가는 집안남자를 가진 평민은 영화 "서부전선"에 나오는 <장군과 정치가들을 전쟁터에 내 보내면 된다>는 독설에 공감 하게된다. 한 사람 생명쯤이야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정의라고 착각한 다수결 민주주의도 이런 전쟁을 좋아한다. 나도 한때는 애국적인 국군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무차별 공중폭격으로 죽어간 양민의 수 남북 합해 얼만지 실체를 알고 나면(김태우."폭격". 창비, 2013 ) 우리는 이내 정치가에게 환멸을 느끼며 경찰국가 미국도 미워하게 될 것이다.


단 한 번뿐인 내 생명이 우주에서 얼마나 귀한데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이 필요한 죄인  혹은 한낱 우주먼지라 부른다.  






현대문명 아이 ai는 지구 생태계를 완전히 말아먹었다. 두말하면 잔소리, 여타 분야는 제외하고 전자책 말이다. 글이 기계 속에 갇혔다. 나무에 살던 글, 천년만년 오랫동안 호모원숭이의 생각을 고양시키던 천재들의 글이 아이의 기계 속에 갇혀 버렸다. 크리스마스 때면 카드를 만들어 자필로 글을 써 빨간 우체통에 넣어놓고 주고받던 편지의 추억 카톡아이가 말아먹었다. 무엇이든 빠르고 간결해야하는 0과1의 기계언어. 너도나도 느려터진 늙은이가 되면 미안하지만 가능한 빨리 우주먼지로 떠나 주셔야 좋다. 남녀노소 모두 아무 생각 없이 재빠르게 카톡아이의 인사를 주고 받는다.  

 웃기는 동영상이나 이모티콘이면 아무 감정, 애정 없이 성탄절이나 핼러윈을 지낼 수 있다.(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은 핼러윈날 다른 행사를 마련해 파티를 한다.) 올해 한국은 슬픈 참사를 경험해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성숙해져야 한다.  평범한 나도 올해는 카톡아이를 빌려 바다 건너 지인에게 1초 만 인사  절기를  때웠다.


 아이들이 만든 세상은 편리하지만 감성 없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배받으며, 우리 호모 시저는 신이자 노예로 진화해 나간다. 무협지를 좋아하던 은퇴조종사 선배는 앞으로 비행기는 기장 한 명만 타고 기계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고 인간은 점점 더 직장을 잃고 더 외로워질 거라고 예언한다.    





 나는 아직도 종이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어디든 도서관에 다니고 어쩔 수 없을 때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한다. 전자책에 갇혀 전자를 먹고사는 글은 눈 부시고 읽기 힘들지만 나무 글보다 보관하기는 편리하다.  항상 이사 다닐 때마다  몇 수레 씩 기증하던 종이글은 이제 내 서재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나무책 몇 권을 책상에 심어 두고  물도 주고 글향기도 맡는다


내 안의 지성이 나무의 글과 만나면 글 일어나 춤을 추고  나도 일어나  주인의 박자를 따라  함께  탱고를 춘다.


그땐 내가 호모원숭이 시져가 아니라 싯다르타 고타마가 되고 임마누엘이 된다.  



https://youtu.be/HmDpfaw2O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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