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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슬픈

by 강노아

밤사이 동장군이 시퍼런 칼날을 들고 명을 다할 생명들을 찾아 헤맨다.


살아남기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을 시작한 요즘, 예사롭지 않은 한파를 맞으며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고 말았다. 시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카고의 시간도 서울의 시간도 잊히고, 내 몸이 점점 농부의 허벅지로 변하고 있음을 인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흙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탄생한 백 야드 텃밭상자는 나의 걸작이었다. 허벅지 깊이까지 땅을 파, 통나무와 대나무를 묻어 베이스를 만들고 토양의 기초를 다시 다진 뒤 그 위엔 코코넛을 분쇄한 흙과 배양토를 섞어 무릎높이의 텃밭상자를 만들어 씨를 뿌렸다.


완벽하지 않지만 이름 모를 야채들이 모락모락 자라기 시작했고 겨울에도 온실을 만들어 키울 요량으로 이 아이들을 관찰하며 키웠다.


혼자 지내며 혼자 일하는 사람에겐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은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들은 주는 것 이상을 되돌려준다. 어쩌면 사랑이 "주기만 하는 것"이란 물성을 가진 것처럼, 서로 주는 것에 충실한 관계는 풍성한 얻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농약과 비료가 1도 안 들어간 채소를 마주하며 눈이 휘둥그레지고 황송해 하지만 나는 내 새끼들, 반려식물을 먹는 그들이 가혹하다 느끼기도 한다.

무럭무럭 자라는 텃밭상자의 보라색 잎을 가진 친구는 경이로웠다. 그 색은 여태까지 지구에서 본 적 없는 어떻게 저토록 영롱한 가 할 정도로 비색이었다. 씨에서 태어나고 모종을 심은 그 아이들이 밤새 동장군의 내려친 칼끝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삭풍이 두껍고 단단한 비닐을 송두리째 베어버렸다. 안에서 겨울을 늠름하게 이겨내던 그들이 폼페이 화산재의 시민처럼 굳어버렸다. 전부 내 탓인 것 같았다. 말이나 생각은 늘 그럴듯하지만 난 그들을 지키지 못하는 속물이었다.






앞마당 해가 잘 드는 데크에는 길냥이 임시 피난처를 지어놓았다. 우리 집을 드나드는 길냥이들이 얼어 죽지 않게 아담한 이층 집을 목재로 손수 지어 스티로폼으로 내부를 단단히 여미고 외부는 비닐로 한번 더 둘러 보온에 신경 써 출시했다. 다행히 한두 마리씩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것 같아 아이들이 모이면 꼭 밥을 앞에 두고 일장 연설을 했다.

잘 보란 말이야. 겨울에 혼자 지내면 체온이 떨어져. 그러니까 꼭 둘 이상 붙어서 자야 해 알았지? 그리고 못난이 너 우리 집에 들어온 업둥이 애기 꼭 챙겨 이모잖아? 안고 자야 한다 이거야.

그러나 1차 한파 때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동장군을 등에 업고 집을 덮쳤다.

뭉치, 이 녀석은 꼬리가 말려 태어나 그렇게 이름 지었고, 다른 아이들이 함바집에서 밥만 얻어먹고 건설현장으로 나가면 꼭 집에 남아 스핑크스처럼 대문 위에 앉아 있거나 목공을 할 때 몇 미터 앞에서 턱을 괴고 나를 돌보던 아이였다. 언뜻 보면 인간세상의 논다리 같은 행색을 하고 있지만 눈치도 빠르고 먹성도 좋아 꼭 집고양이 같이 크던 아이였다.


뭉치가 가장 심하게 앓았다. 한쪽눈이 푹 파이고 곪아들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식사시간에 잠깐 습관처럼 나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2차 한파가 밀려오고 모든 것이 꽁꽁 얼었을 때 뭉치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녀석은 내가 지어준 대피소 1충에 죽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파가 잠시 주춤한 사이 무덤으로 쓸 언 땅을 팠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우리 집 길냥이들은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뭉치가 다른 애기들과 마당에서 뜀박질하고 잽싸게 나무로 뛰어오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우리 집 도시견이 마당으로 뛰쳐나오는 바람에 시골묘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비가 되어 담장을 넘던 황홀한 묘기를 보여주던 녀석이었다. 일단 땅이 더 얼기 전에 파놓아야 한다. 지난번 다른 형제가 독극물로 사망한 듯 피를 흘리고 백 야드 구석에 있을 때 시청에 문의하니 쓰레기 봉지에 넣어버리라고 해 세마포에 고이 싸 버리긴 했지만 묻어주지 못한 죄책감이 심했다. (그동안 아기고양이들을 수도 없이 묻었다) 여동생은 연민이 별나다고 핀잔을 주지만 나보다 더한 여자가 현장에 있어보면 혼절할 것이 자명했다.


땅을 파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뭉치가 많이 아파, 죽은 것 같아.


아냐, 안 죽었을 거야.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아프냐?


나는 전화하다 말고 그만 소리 내어 울었고 동생은 나이 든 오빠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동물병원 가볼게. 일단 진정해.


동생은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착한 수의사를 우리 강아지 가정의로 두고 있었다. 뭉치가 사라지기 전에 찍은 얼굴이 일그러진 사진을 수의사에게 보여주자 수의사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런 아이들 자꾸 돌보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물리치세요.


마음이 연약한 동생을 잘 아는 수의사가 동생의 스트레스를 생각해서 한 말인데 나는 속으로 욕이 나왔다.


악한수의사...


오빠. 살릴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한다며 그래도 일단 약을 챙겨줬어.


뭉치는 포기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살려야 했다.



뭉치가 부활한 것은 식음을 전폐하고 사라진 지 사흘이 지난 뒤였다. 미루고 미루던 사체처리를 위해 대피소 1층칸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뭉치야 하는 순간 뭉치가 튀어나왔다. 두 눈이 다 감염되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고 뛰쳐나왔지만 살아있었다. 뭉치야.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지금 우리 패거리들은 전부 회복되었다. 올겨울 최강한파가 덮친 오늘 새벽에도 아이들은 내가 차려준 뜨거운 성찬과 물을 먹는다. 그리고 서로 안부 인사를 전한다. 서로에게 반려동물이다.


굿모닝. 잘 잤어 어이구 많이 춥구나. 야옹, 냐옹.


동생이 일등공신이지만 오빠가 집사냐고 매일 핀잔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마음이 여린 천사고 꼬박꼬박 아이들 사료를 챙겨 보낸다.


나는 깨달았다. 죽음보다 슬픈 것은 사실 이별이라고...


자전거를 타다가 그 사유가 선명해졌다.


젊은애들처럼 하루 100KM는 타지 못하지만 난 하루 80KM를 목표로 하고 60KM는 성공했다. 올해 생일엔 80KM를 주파하려 한다. 준비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자전거의 행복이 모르는 목적지의 새로움이나 목표를 달성한 성취감이 아니라, 내가 달리는 경로에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즐거움이 자전거의 동력이었음을...


삶은 목표를 달성하거나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보다 지금 내가 달리는 순간이 의미라는 쉬운진리.


죽음은 그가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지만 남은 자에게 사별이란 상처가 오랫동안 남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


삶은 항상 그것을 넘어 무엇이있다.


텃밭상자의 식물을 떠나보내며, 되살아난 뭉치를 돌아보며 울었다 웃었다를 미친놈처럼 반복한다.


어이구 오빠 울던 거 기억나? 다 큰 어른이...


슬픈데 어떡해...


조수미의 <바람이 머무는 날>이 방송에서 흘러나온다.


먼저 떠나가신 어머니 때문에 또 눈시울이 젖는다.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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