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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못난이

by 강노아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도 대자로, 막 봄이 왔다고, 제일 먼저 살아난 잔디가 파릇파릇 자태를 자랑하는 정원 맨 앞자리에 노란색 길고양이 못난이가 엎드려 있었다.


너 거기서 머 해?


잠자는 모습이 기괴하기도 하고, 밥시간에 제일 늦게 나타나는, 우리 집 길고양이 중 제일 게으르고 미모가 떨어지는 못난이는 거기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내가 머무는 한국시골집에 길고양이가 등장한 것은 이 집을 구입해 고쳐 살아보려고 거의 텐트를 치고 살다시피 했던 그날밤, 건축업자들이 들락거리고, 천장을 뜯은 무서운 방, 모기장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같은 못난이의 할머니 스레트의 등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이 집에는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은 자유묘, 길고양이도 집고양이도 아닌 단골 반고양이들이 최소 6마리 최고 8마리 끼니때마다 찾아들었다.


조상님 고양이 스레트(낡은 스레트 색 같은 털 때문에)는 아이를 낳아 나에게 맡긴 채 가출하시고 수많은 아이들은 별관의 반지하에서 까르륵까르륵 발차기하며 무럭무럭 자라나 2세대가 되었다. 그 아이들은 또 새끼를 낳고 3세대 최신 고양이를 생산했다. 뭉치, 못난이, 보리가 3세대 아이들이고 그 위에 타이거와 퓨마가 2세대 어미와 이모다. 그동안 숱한 아기들을 잃었고 그 아기들을 땅에 묻어주는 고통스러운 순간들, 이곳 사람들이 쳐놓은 독극물을 먹고 우리 집 백 야드 구석에 피를 흘리고 누워있던 아롱이, 먹다 남은 쥐의 사체, 나에게 주는 선물인지 온전한 쥐를 현관 앞에 떡하니 같다 놓은 것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드디어, 길고양이 급식은 중지해야 한다는 여동생 대통령의 발의로 온 가족이 국무회의를 열어 밤새워 논의하다 결국 새벽녘에 고양이 중성화 계엄을 확정하고 이른 새벽 시청 축산과 회의실에 줄 서서 대기하다 대상자로 합격되는 역사적 사건을 비롯한 새로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탄생했다.


난 그때까지 길고양이는 성가신 존재, 발정기의 성폭행범, 텃밭과 정원의 똥싸개, 서울에서 출장 오는 우리 바둑이의 안압을 높이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끼니때 만되면 밥그릇 앞에 눈을 마주치며 윙크하는 그 기술에 홀려 어느덧 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급식과 체중 관리를 하는 캣대디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고양이가 아니라 나였다.


연민이 너무 많아 다정하다가 간혹 돌변해 사이코 같은 킬러로 서늘해지는 싸한 성격, 우리 집에 찾아든 손님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정성껏 보살피자 하다가도 한 번씩 돌변하는, 힘을 숨기고 시골에 숨어 사는 전직 킬러라는 유튜버의 혀 짧은 문장을 흉내 내는, 피식 너드 nerd 같아 보여 웃음을 철회하고 다시 진지하게 삶을 이어가던 때가 한두 번 아닌 연민 많은 문제아 사이코가 길고양이의 집사였다.


이 모든 변화는 겨울 혹한기, 그나마 집고양이에 가까운 뭉치(꼬리가 말려서)가 고양이 헤르페스에 감염되어 죽었다 살아난 것이 시작이었고- 그가 거의 일주일간 죽어있어 그의 시체를 묻어주려 꽁꽁 언 마당을 깊이 파 미루고 미루던 장례를 치르려고 양이 겨울집을 두드릴 때, 얼굴이 온통 망가진 살아있는 뭉치를 보고 화들짝 놀라 펑펑 울었던 것이- 마침표였다.


그리고 이렇게 마른 봄, 온 나라를 불태우는 잔인한 봄을 맞아, 뭉치가 아닌 못난이가 독극물로 세상을 떠났다. 남아있는 아이들은 아직도 형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중성화 수술을 경험해서 언젠가 다시 올 것을 이해하는 건지 동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속 깊을 때가 많다.


나는 아이를 떠나보내며


"그래 나도 무지개다리 건너면 너를 꼭 찾을 테니 금방 만나자 자리 잡고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국가의 수준은 약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라고 늘 생각했다. 짐승을 짐승으로 대하는 호모는 사피엔스가 아니고 고장 난 호모 사이보그 아닐까. 더 이상 독극물로 생명을 해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이들과 싸우는 일은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사피엔스는 모든 생명을 자기와 똑같다 생각하는 존재고, 계산만 하고 생각 없는 존재는 호모 사이보그 아닐까. 앞으로 우리나라는 약자가 되어버린 베이비 부머 세대가 자녀들에게 역차별 당하는 무덤에 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보인다.


어차피 잠시 태어나 돌고 돌다 원래로 돌아가는 세상...



못난이 고양이를 기억하며 못난이를 위해 못난 글을 사이버 우주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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