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 말고 모두는 시간과 함께 불편해진다. "가족은 말이야, 물 같은 존재야. 한 공간에 있어도 전혀 거슬리지 않는 물, 그런데 가족이든 타인이든 내 공간에 들어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돌 같은 존재가 된단 말이야. 돌처럼 부딪히고 거슬리는 거지" 평소 내 생각은 이랬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같이 살때는 물 같더니 성장해서 자기 공간을 갖고 살다 내 공간에 들어오면 걸기작 거리는 돌처럼 부딪히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미국에서 처음 내 집을 구입했을 때였다. 이층짜리 저택을 샀으니 평생 융자의 부담보다 내 집 사랑 한국인 본능을 따라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웠다. 집은 지은 지 일 년밖에 안 되는 건물이라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았다. 크고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블라인더, 높은 천장의 커다란 팬, 마당의담장까지 직접 손이 안 가는 것이 없었다. 미국집은 점점 궁전처럼 되었다. 사실 눈여겨보았던 미국 모델 하우스 흉내를 냈다.
어느 날 아들 방 화장실에서 못 보던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 어, 이게 뭐야, 우리 아들이 액자를 다 사서 걸고?"
아들의 성의가 고맙고 신기했다. 그런데 액자의 위치나 모양은 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내 칭찬에 주저하는 태도가 조금 어색했다.
" 여기 액자 달기로 한건 누구 아이디어야?"
" 저요"
둘째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액자를 반듯이 맞추려고 만지다 그만 액자 뒤에 깨진 구멍을 발견했다. "이게 뭐야?" 형이랑 싸우다 화가 나서 벽을 주먹으로 "쾅" 쳤더니 "펑"하고 구멍이 났어요. (미국 주택은 거의 다 가벼운 합판으로 되어 있어 그러기 쉽다)
순간 내 분노가 치고 올라왔다. 사고를 치고도 은폐한 아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둘째는 그날 서너 시간 무릎 꿇고 종아리도 몇 대 맞고 한글로 반성문을 쓰게 했다. 결국엔 맞춤법 틀린 고등학생에게 기가 막혀 웃다가 액자 사건은 막을 내렸다.
가족은 물처럼 공감하며 어우러져야 하는데 솔직하지 못한 행동을 걸림돌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부모는 말할 것도 없다.
부모도 늙으면 물이 아니라 돌이 되는 것 같다. 미국은 한국노인들이 살기에 부적합하다. 차가 없어 마음대로 이동하기 힘들고 외국 노인들과 어울리기도 녹녹지 않다. 당연히 큰 집에 가택 연금당하고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식구들은 서둘러 자기 방으로 사라진다. 노인들이 가족사랑을 기다리는 망부석이 된 거다. 부모와 함께 살려면 최소한의 그분들의 공간, 가능하다면 옆에 살게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배우자는 안 그럴까?
배우자는 평생 물처럼 살아갈 것 같다. 만약 배우자가 돌이 되면, 방을 가득 채우는 큰 돌이 되면, 숨쉬기 곤란해진다. 물처럼 좋다가 한번 다투고 망부석이 되어 버리면 집은 돌로 가득 찬다.
늙어서 각자 방을 쓰고 침대도 두 개로 쓰는 부부, 졸혼을 선택하거나 이혼하는 부부, 굳어버린 관계의 돌이 서로에게 너무 쌓여버린 거다. 부부의 불편함은 치명적이다. 삶의 일부로 인해 삶의 전부가 손상받는다. 그것은 누구 잘못도 아니다. 그동안 오래 돌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직장엔 불편한 사람이 제일 많다. 천지가 돌밭이다.
솔직히 직급이 있지만 월급 주는 사람은 사장도 회장도 주주도 아니고 컴퓨터다. 회사에서 윗사람 눈치 보는 까닭은 승진과 해고를 피하려는 동기뿐이다. 그런데 마누라보다 더 오랜 시간 붙어 있는 곳에 돌같이 거추장스러운 불편한 사람이 있다. 게다가 그 돌은 하루에 몇 번씩 모난 것으로 나를 아프게 부딪혀 지나간다.
여자들은 일생에 단 한 번 눈조차 마주치기 싫은 비호감 남자에게 콧소리 섞어 과장님, 부장님을 연호하고 여사원의 친절이 자기에 대한 관심이라고 남자들은 착각한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 오래 살아 남기 위해 모든 선배가 다 이러고 살아서... 하지만 이제 이런 문제는 풀어야 한다.
직장에서 불편한 사람과 함께 살려면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러터지면 곤란하다. 늦게 입사하면 당연히 모르는 것과 틀린 것이 많다. 그때마다 지적질하는 것들이 한둘은 꼭 있다. 그 사람 얼굴 잘 봐라 집에 가도 그러고 산다. 자기가 의롭고 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른 아이일지 모른다.
" 오빠 싹수없는 직장 동료 어떻게 해야 해?"
" 왜?, 그냥 무시하거나 죽여버려 "
" 호호, 그러게 죽지도 않네"
사촌동생은 심각한데 내 농담 섞인 대답에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녀 문제는 농담보다 심각했다.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조금 먼저 입사한 남자가 사사건건 잘난척하며 그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도 반복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 사장한테 일러"
" 일렀지, 그런데 사장도 응응 하면서 그놈 말 들어주고 바로 무시하고 지나가"
자, 그럼 이건 어떨까?
심호흡 크게 하고 "그만 하라고 했지!" 소리 질러봐.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에게 물러 터지면 평생 당하고 살게 되어 있다.
마지노 선을 가지고 네가 그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야 한다.
" 근데 알잖아, 내가 강단이 없고 사람들 한테 그렇게 못해"
" 이런, 그러면 어쩌지?"
" 그러게 난 말도 못 하고 글도 못쓰고 자기표현을 못하는 사람인가 봐"
" 싸움을 못하는 거겠지, 나도 싸움은 잘 못해, 흥분하면 엎어 버리기나 하지..."
사실 나도 조리 있게 감정을 절제해서 잘 싸우지 못한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의 토트넘을 볼 때마다 그들의 로고, 싸움닭을 존경스럽게 바라본다. 동생의 상담은 그렇게 답 없는 결론을 내고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아마 동생은 내가 편이 되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 것 같다.
다시, 가족 중에 제일 불편한 사람으로 들어가면,
가족 중에 제일 불편한 사람이 자신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람은 직장처럼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해법으로 풀려고 하면 집 전체가 채석장이 되어 버린다.
집안의 불편한 사람과는 대화를 해야 유리할 것 같다.
상대가 불편하다는 것은 그 상대도 나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대도 나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서로 싫어한다는 의미가 된다. 왜 싫어하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름을 협상하지 않아서 싫어하게 된다.
각자 "자기만 옳아서"
친한 친구는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마누라는 한 마디로 건방져, 지만 잘 나 가지고 따뜻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남자들은 착하고, 밥 잘하고, 잘 가꾸고, 애 잘 낳고, 잘 기르고, 거기다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대부분 여자들도 착하고, 돈 잘 벌고, 자신을 잘 가꾸고, 똑똑하고, 자상하고, 섹시한 남자를 좋아한다.
둘 다 서로 원하는 것이 같다. 그런데 그들이 싸우면 백발백중 서로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 치타처럼 생긴 사람은 종일 뛰어다니고 하이에나처럼 생긴 이는 종일 남의 것 빼앗아 먹고 산다. 치타는 속도를 갖고 힘을 포기했고 사자는 속도를 포기하고 힘을 선택했다. 하이에나는 적당한 힘과 인내를 선택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글을 생긴 대로 산다.
남편과 아내는 생긴 대로 살지 변하지 않는다. 아 참, 조금 변하긴 한다. 늙어서 힘 빠지면 좀 얌전해진다. 하지만 유전자의 힘은 중력만큼 무섭고 강력하다. 결국 매우 불편하면 그 사람과 헤어지거나 서로 간섭 안 하고 살게 된다. 하지만 서로를 포기하는 결단을 하기 전에 해야 할 것은 바로 대화다. 누구나 다 아는 그 대화,
대화는 무엇인가 먹고 시작하면 좋다.
대화할 때 트럼프와 김정은처럼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쉽게 말해 적대적 관계라는 말이다. 김과 트는 각기 카드를 가지고 밀당을 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회담한다. 부부도 힘을 축적한 자기만의 카드가 있어야 한다.
만약 실직상태에 있거나 퇴직했다면 지금은 대화의 시기가 아니다. 일단 죽은 듯이 숨 죽이고 살아남아야 한다. 응축된 힘을 소유하고 대화를 해야 양보가 이루어지고 합의가 이루어진다.
"둘 다 성숙해지는 것" 은 대화로 부딪히며 서로 이해하는 동안 생긴다. 대화는 신의 묘수 일수도 있다.
내가 그릇이 커서 상대를 감싸 안거나 상대가 나보다 더 커 보여 그 속에 들어가거나, 서로 다름을 유지하며 공존하던지 방법은 각자 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