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라 마디간

사랑을 변호하다

by 강노아

사랑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강하며 위험하다.


사랑은 존재할까?

음 후 영혼은?


이 영화는 1967년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보 비더보그 감독의 사랑 영화다. 영화는 초라한 몰골을 가졌다. 귀족 가문의 유부남 군 장교가 가정과 조직을 배신하고 나이 어린 곡예사와 무단이탈해 사랑의 행각을 벌이다 자살했다는 판결문 같은 고지로 포문을 연다.



"1889년 스웨덴 백작 육군 장교 식스틴 스파리 중위와 덴마크 출신 소녀 엘비라 마디간이 숲 속에서 자살하다. 이 영화는 실화다."



영화가 개봉되던 5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패륜과 자살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랑 아니다" 등등의 부정적 의견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유럽의 수려한 풍광, 여배우의 눈부신 미모 가지고도 지우기 힘든 것 같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랑을 변호한다.

전쟁을 비난하고 제도와 관습에 매여 사는 것은 비판한다.

후에 그의 유작인 "아름다운 청춘"(1996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 96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에서도 여교사와 제자의 불륜, 2차 세계대전, 죽음, 성장, 욕망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사회 비판적인 작가주의 감독이며 템포가 느리고 많은 곳에 상징을 심어놓기 때문에 관객은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들다. (봉준호 감독은 예술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하이브리드 작가주의 감독이라 본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려지고 화려한 영상미에 탄복하고 엘비라의 미모에 심취하는 동안 작가는 은밀하게 사랑을 변호한다. 두 사람의 영화 속 대화는 사랑에 대한 변론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는 식스틴에게 엘비라는 말한다.


" 당신은 내 이름을 돌려주었어요"


엘비라 마디간은 본명이 아니다. 자기 직업과 함께 타인이 부르는 그 이름 "엘비라 마디간"은 자신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래의 자기" - 본명이 불려지길 원했다.


사랑의 품위


그녀의 품위는 그녀 삶의 고상함이며 세상의 잣대로 잘못임을 선언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큰 호텔에서 점점 작은 호텔로, 백작이며 탈영한 장교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도피하면서, 친구 장교가 식스틴을 설득하며 거창한 식사를 할 때도 비상금으로 식비를 지불하며, 사랑을 원망하지 않는다.


백작 출신 장교와 곡예사 출신 그녀는 신분이 엇나가 보이지만 사실 귀족은 그녀였다. 낚시로 잡은 생선 한 마리도 기뻐하고 돈이 떨어져도 낙천성은 잃지 않는다. 운명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대로 정해진다는 신념도 숨어있다.


마을축제에서 다리를 드러내고 춤을 추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에 생계를 위해 그녀는 춤을 춘다. 식스틴이 그녀와 자고 싶다는 취객을 때려눕히지만 않았어도 약간의 돈은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원망하지 않는다. 막다른 길에 선택한 최후도 그녀가 제안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다. 관자놀이를 겨냥하나 방아쇠를 못 당기는 남자를 떠나 나비를 쫒아 뛰어가던 그녀에게 식스틴은 총을 겨누고, 두 발의 총성이 울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총성은 사랑을 유죄 Guilty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감독은 여인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을까? 욕망 아닌 진정한 사랑이 여전히 유효하다 말하는 것일까?

어떤 사랑이 진정한 걸까?


감독은 영화 <아름다운 청춘>에서 주인공 소년이 극장에 초콜릿 파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호텔 정문 앞 직원처럼 붉은색 제복에 모자를 써야 하는데 소년이 여러 번 그것을 불편해한다. 사장이 "모자를 쓰라고!" 소년은 "안 쓰면 안 돼요?" 이 작은 대사 틈에서 감독은 규율의 저항을 표현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지성으로 질문하기 시작하며 사랑과 죽음에도 의문을 품었다. 달에는 토끼가 살고, 그 동화를 간직한 채, 망원경을 가지고 분화구를 보고 달에 착륙해 암석에 현미경을 들이 대고 우리 존재의 의문들을 풀어내며 살았다.


달의 환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달을 보고 살던 인류는 아직도 달을 보며 꿈꾸고 낭만을 읊는다. 인간을 생존 기계로 보는 도키(도킨스)의 의견을 존중하면 사랑은 번식을 위한 유전자 활동이다. 호모 사피엔스를 상징하는 "자아"도 복잡한 뇌세포의 활동 가운데 한 현상일 뿐 망상이다. 우월한 존재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은? 당연히 본능이 빚어낸 욕망이다.

우리는 달을 망원경으로 보고 현미경으로도 본다. 보 비더보그 감독은 사랑에 망원경도 현미경도 들이대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그의 눈으로 본다. 눈에 비친 사랑은 아직 빛나고 있었고 보는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들 사랑은 포도주, 빵과 치즈와 낭만이 있다. 그들 사랑은 Taboo를 깨 부순다. 규칙을 정한 인류 권력에 대항한다. 어둠에 얼굴을 가리고 밀실에 숨어들어 사랑 대신 섹스하는 "걸리지 않은 죄인" 교양인을 조롱한다.


감독은 식스틴을 통해서도 사랑을 변호한다.


친구가 찾아와 그를 설득한다. 명예와 조국, 가족을 생각하라고. 식스틴은 밝은 낯으로 아이들 소식도 궁금해한다. 아내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도 함께 듣는다. 당황스러울 노릇이다.


어디서나 친구의 조언은 항상 다수의 편이다.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 부른다. 아내와 화해하고 조국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면 사람들은 그를 잊을지 모른다. 식스틴이 부자였다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식스틴은 거절한다. 전쟁을 혐오하고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지지한다.


다분히 서구적이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지되 죽은 사랑에 대해 더 이상 인공호흡하지 않는다. 오래전 기고한 "이혼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도 서구와 우리의 인식 차이를 설명했다. 깨진 사랑을 봉합하기보다 남은 우정이라도 간수하려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태도 말이다.


식스틴은 지금 소유한 사랑의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다. 부인의 자살 시도 소식을 엘비라가 들으라는 듯이 말하자 엘비라는 낙심하여 자리를 피한다. 그들이 시냇물 앞에 상심하여 멀어져 있을 때 식스틴은 그 유명한 장면 "미안하다"는 쪽지를 흘려보낸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낭만적이다.


사랑은 우유 같다. 유효기간이 짧다. 적당한 온도가 없으면 부패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냉장고 같은 집과 온도를 유지할 전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사랑도 한다" 말한다. 돈이 많으면 사랑은 영원히 썩지 않을까? 영원하려면 사랑의 박제 말고는 없을 텐데.


이제 감독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통해 숨 가쁘게 사랑을 변호한다.


둘의 사랑은 고통스럽다. 돈에게 쫓기고 도덕에게 포위되었으며 명예와 명분에게 고문당한다. 감독은 이들이 선택한 죽음을 위해 마지막 피크닉, 팔씨름으로 얻은 포도주와 빵을 준비한다. 시작도 피크닉 마지막도 피크닉이다. 그곳에는 죽음의 공포나 사랑의 무효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비를 쫒아 가는 엘비라는 환생(다음 생애)을 상징하는 의도일지 모른다. 감독이 "사랑이여 영원하라"라고 마지막 변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죽음은 총성만으로 상상하게 한다. 죽음의 영상은 없다.


관객에겐 여운만 남긴다. 그 여백에 모차르트 선율과 두발의 총성, 나비와 남녀를 그린다.

가슴이 점점 아려오고 배심원 관객은 탄식을 뱉으며 사랑은 Not guilty 무죄라고 정리한다.


"내가 죽어 못다 할 그 어려운 사랑을 저들이 해냈구나"


감독은 죽음으로 사랑의 자유를 선포한다. 엔딩 크레딧이 지나가고 생각이 많아진 관객은 그날 밤 잠 못 이루며 엘비라 마디간을 생각할 것이다. 자신도 인간 TABOO에 도발할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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