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본다면, 영화관에서 먼저 보고 나오는 사람 표정 살피고 그날 영화의 승패를 추측했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를 면밀히 확인하고 심지어 관객이 내린 점수 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쪼끄만 휴대폰이 내 뇌의 R2(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깡통로봇)가 되어버려 그런지 모른다.
최근 Netflix 영화의 품질이 심상치 않다.
멋진 수작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후보, 골든글로브 각종 후보 등등 이미 여러 지역에서 받을 상은 다 받고, 화려한 배우들의 열연까지 상상하면 보기 전부터 군침이 뚝뚝 흘러나온다.
잘생기고 젊은 노아 바움백 Noah Baumbach 이 감독과 각본을 맡아 영화의 품질은 예사롭지가 않다. 또한 여주인공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은 메릴린 먼로 Marilyn Monroe를 능가하는 개성과 멋을 간직하고 있어 차기작 블랙위도우 Black Widow가 개봉될 2020년 5월이 더욱 기다려지는 배우 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 애덤 드라이버 Adam Driver는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우리나라 연예인 광수와 이미지가 비슷해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보다, 왜 그가 영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와 아카데미 시상식에 경쟁 후보인지 알만한 배우임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부부의 기둥, 아들 헨리 역을 해낸 애지 로버트슨 Azhy Robertson 은 너무 사랑스럽고, 먹먹한 이야기 내내 감초 같은 자리를 잘 지켜 주었다.
이 영화는 당신이 죽기 전에 봐야 할 명작으로 감히 추천드린다.
마블 Marvel 영화나 마동석 액션을 좋아하는 분에게는 비호감이고, 삶의 진지한 독해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해 무거운 이야기에 바로 집중을 잃어버리는 분은 15분 이내 잠들게 될 비추 영화다. 그만큼 이 영화는 화려한 군단에 의해 정성껏 만들어졌지만 영화를 독해하는 청중의 수준과 몰입이 없으면 조금은 불편하고 재미없는 영화다.
이야기의 힘
책이든 영화든 관객을 이끌어 가는 힘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 영화는 이혼으로 결혼을 이끌어간다. 이혼 이야기가 주는 기승전결은 너무 흔한 소재라 2시간 넘게 이 줄거리를 가지고 관객을 어떻게 끌고 갈지 솔직이 궁금했다. 그러나 긴 대사에 오래 집중하다 뇌에 쥐가 나서 딱 한번 스트레칭했을 뿐, 영화의 마지막까지 몰입한 대단히 깊은(Rich) 영화였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와 마지막 씬에 서로의 결혼을 회상하고 생각하기 위해 만든 장점 노트를 읽게 함으로, 관객이 지치지 않고 따라가면 삶의 깊은 여운을 갖도록 장치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치밀함과 정교함은 감독 자신이 마치 주인공 찰리(애덤 드라이버) 같아 보인다.
이혼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결혼, 이혼, 삶을 한 그릇에 담았다.
영화 마지막에 니콜(스칼렛 요한슨) 가족이 부르는 'You could drive a person crazy" 나 챨리가 극단 모임에서 부른 곡 "Being alive"는 뮤지컬 Company에서 주제로 사용한 "결혼,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담아, 영화 전체 주제를 두 곡으로 녹여 삶과 결혼의 숨 막히는 동행을 평행선으로 그린다.
영화는,
두 남녀가 벼락 맞아 사랑했고,
LA와 뉴욕이라는 양극의 지역을 넘어 결혼에 골인하고,
이혼으로 치달리며 법정에 들어가,
인격마저 변호사에게 탈탈 털리다,
따뜻한 이혼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 막을 내리는 영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가졌던 아스라한 사랑의 잔불은 열기를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들 삶의 일부로 결혼과 이혼의 여정을 지펴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간직한 따뜻한 영화다.
주연 세 사람
이 영화의 주연은 세 사람이다. 남편 찰리(Adam Driver), 부인 니콜(Scarlett Johnsson), 아들 헨리( Azhy Robertson)다. 챨리는 연극 감독이며 일에 빠진 이기적인 젊은 가장이다. 그가 이혼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신의 결혼생활은 자기중심적이며 성취지향적인 논리에 빠져있다.
아내와 섹스가 시들해질 무렵 극단 여인과 딱 한번 잠자리를 같이 한 것에 대해, " 네가 거부하니까 나도 그걸 권리가 있어"라는 고백으로 인생의 즐김을 포기했던 자기 인생( 자기 것)에 대한 확고한 변명도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완벽하며 창의적이지만 결혼으로 얻어진 삶의 영역에 아내 니콜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놓은 무거운 책임은 마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니콜은 자신의 삶의 일부, 사랑에 미친? 결혼 때문에 공간(LA), 자신의 친정가족, 촉망받는 여배우의 삶을 포기하고 선택한 희생이 무시된 것에 화가 나있고 그것이 바로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 사이의 파경, 평행선은 영화 내내 좁혀지지 않는다.
파경의 "원인이 너 때문"이라는 가장 악질적인 논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애의 집착"에 기인한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분노한 니콜이 이혼 과정에서 챨리와 전화로 말다툼하다, 그날 처음 본 남자와 카섹스 하면서 손가락으로만 해달라는 궁색한 외도 역시, 자신은 챨리와 다르다 는 의로움에 기초한 자기애의 소심한 이기적 복수로 보인다.
아들 헨리는 영화 내내 그들의 팽팽한 긴장을 지켜주는 주춧돌 같은 존재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에 담담하게 감당하는 아이의 모습은 현대 아이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두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헨리의 덤덤한 노력은 이 영화의 가장 아픈 생인손이다. 어려서부터 분리된 가족의 울타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은, 왜 서양인들이 탁월한 독립생활을 삶의 전략으로 채택하고 사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연들
니콜의 여자 변호사 노라(Laura Dern)는 여성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자신도 이혼녀로 이혼 전문 변호사인 그녀는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롱다리 각선미를 뽐내며 남다른 유머를 장착하고 이혼을 매개로 남자들을 공격한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자 하느님에 대한 페미니즘적 도발까지 유머 있게, 남성 우월적 제도의 약점들을 하나씩 지적한다. 사실 그녀가 가차 없이 밟아 버리는 남성 우월적 세상에 대한 공격이 남자로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도 평등하지 않았다.
강자에 의해 기록된, 강자만이 칭송받는 세상에서 여자가 약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인류가 정신을 차리고 땅으로 내려와 두발로 걷기 시작한 후부터 쭈욱 있어 왔던 그것은, 야생의 암사자처럼 사냥하고 출산하면, 왕국을 지켜주며 또 한 번 찾아와 쓰윽 임신시키고 가는 사자 왕국의 수놈들 생태계와 비슷한 공동체 세상을 보여준다.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그 나라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안다. 여자, 장애인, 반려동물, 부상당한 병사, 가난한 시민을 대하는 그 나라의 남자 관료 모습에 그 국가의 수준이 심어져 있다.
변호사 노라는 "도전적이며 영리하고 이기는 일에 혁명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외뢰인 니콜에게만큼은 연민을 가진 모성애를 보여준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법정에서 남자 사람 챨리의 약점을 왜곡하고 치열하게 파고드는 집요함은 남성들 싸움의 기술과 똑같다. 그녀는 법정 싸움에서 여자의 탈을 쓰고 남자처럼 싸운다.
반대로 챨리의 첫 번째 변호사 버트(Alan Alda: 실제 82세의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감독이자 연기자)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도전적이고 유능한 변호사 노라에 비견되는, 챨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싸워줄 수 있는 인물이나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해가는 법정 다툼에서 이기려고 찰리는 노라에 필적할 다른 변호사로 교체한다.
변호사 버트는 좋은 남자를 상징한다. 이혼을 네 번이나 경험한 그는 이혼이 얼마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고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경험자로 이해시키며 남자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싸우는 니콜 변호사 노라에 대비된, 따뜻한 부성애로 (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고 싶은 ) 멋진 성품을 보여준다.
이혼의 온기
이 영화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이유는 이혼 소송 내내 끈끈한 가족 구성원들의 퍼즐 파트 같은 사랑 때문에 그렇다. 모양을 잃고 흩어져 있지만 과거의 사랑의 온기는 이혼 여정을 따뜻하게 만든다.
첫 장면에서 부부의 장점 읽기는 마지막에 아들도 더듬거리며 (글을 늦게 깨우쳐 잘 못 읽어서 ;부부가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아들은 성장하지 못한 거다) 아내의 손 노트를 읽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온도가 적절할 때 느낄 수 있던 사랑은 이혼이라는 빙하기에 아들의 양육권, 책임전가, 요구사항, 비방, 공간 다툼( 내가 사는 곳이 옳다는)과 금전적 낭비로 양쪽은 다 피해를 당한다.
롱테이크 씬 부부싸움-혹자는 전투씬-에서( 이 영화의 절정이다 ) 남편 찰리가 자신의 초자아 Super ego에 숨겨놓은 말
" 난 네가 우리 아들에게 피해가 없는 한 병이 걸리거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어"
(그녀 앞에 무릎 꿇고 흐느끼는 장면)은 압권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부인 니콜이 그를 감싸 안고
찰리: " 미안해 " (오열) ( 현실감이 넘쳐서 나도 하마터면 울뻔했다. 그동안 울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 울컥한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에)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는 아내, 집 문이 잠겨 남편을 찾고 그녀를 도와준 뒤 숨이 닿을듯한 얼굴 Close-up,
아이를 가운데 두고 함께 눕고, 남편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주옥같은 명장면들은 영화의 시선이 두 사람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영화는 죽기 전에 꼭 보시면 좋겠다.
이혼을 준비 중인 분들도 보면 좋고 물론 혼자인 분들도 봐야 한다. 연애하는 커플은 각자 삶의 일부가 되는 "결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위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