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혼할까요? 에필로그

by 강노아

나는 브런치 무명작가다.


수백 명의 구독자와 많은 글 그리고 출간 작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 여기서는 유명 작가다.

내가 여기서 글을 나눈 지가 한 8개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휴대폰 바꾸면 기능과 차이를 익히느라 며칠 붙들고 이것저것 해 보듯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만져보았다. 그 결과 브런치 작가, 독자의 연령층과 노출빈도, 관리자의 성향, 뜨는 글과 반짝 글, 지는 글 등을 알게 되었다.

수확도 있었다. 그것은 독자 한 사람의 소중함과 격려, 댓글 한 문장의 힘 그리고 소통의 힘을 직접 물리적으로 느낀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류 역사는 이야기를 통해 발전해 왔다. 여기서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성서 창세기도 창조설화로 신을 설명한다. 신약의 예수 탄생 이야기도 역사의 사람을 통해 발전하여 교리를 만들고 믿음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종교라는 제도권에 편입시켜 신자들을 만들고 그들의 노력으로 발전하여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다.


문학은 적극적인 이야기의 제작자로서 종교처럼 수많은 생각, 허구 혹은 실화들로 구성하여 독자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2000년 넘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책은 아직 살아남았다.


종이책은 인류와 Good bye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야기는 스스로 진화하여 벌써 나무에서 액정화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런치도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을 모아 네트워크를 통한 플랫폼으로, 신선한 발상의 모태로 잘 진화하는 셈이다. 하지만 염려도 있다. 내가 집단 문화를 좋아하지 않고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브런치만 놓고 보면 또다시 집단적 문학 트렌드가 형성되는 느낌이 그것이다.

검은색 외투에 동그란 안경.


비슷하고 개성 없는 거리, 비슷한 성형얼굴, 세대마다 특화된 비슷한 말투. 축약어, 외래어 무개성의 밋밋함이 출판계에도 작동하고 있다.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다 에세이로 넘어오고 너도나도 작가 되더니 누구나 작가 시대가 되어 민낯의 글로 "조회수와 구독자만 유명 작가"도 등장한다. 정작 글 쓰는 문학도의 고객은 별로 없다.


브런치 최고 권위자

브런치 편집자 아닐까? 그 자리에 하얀 긴 머리와 지팡이 들고 고무신 신은 노인이 수염 만지며 우리글을 읽고 있을까? 천만에, 작은방에서 젊은 분이 슬리퍼 신고 앉아 스타벅스에서 To go 한 커피 마시며 발가락 까딱거리고 검색할지 모른다.

"어떤 글을 맨 앞에 놓으면 사람들이 들어올까?" " 흠, 이 글은 재미있는걸?" " 오, 이 작가는 얼굴이 예뻐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 아, 아직 퇴근시간 멀었네."

오늘도 까맣고 동글동글해 비슷한 생활 단상과 간증문을 정리 배열한다.

오늘도 브런치 플랫폼의 발전을 위하여 작가라는 꿈을 무료로 제공하고 무료 작가들의 무료 삶의 이야기를 무료로 사용한다. 종교와 비슷하지 않은가? 영생을 무료로 주고 네 삶을 달라는.


구독자, 조회수에 빠져 헤매던 때가 있었다.

어떤 글에 갑자기 조회수가 빵 터져 수백 명이 후루룩 올라가는 내 글이 있었다.

편집자 실수인지 아침에 출근해서 예뻐 보인 건지 내 글이 브런치 밖으로 뛰쳐나갔다. 울타리에서 나간 글이 소셜 네트워크에 등장하여 조회수가 급증한 것이다. 평소에 댓글 달아주시는 브런치 선배님께 댓글로 물어봤다. "이 무슨 일인지요? 아시나요? 저도 모르겠어요, 글이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심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 글을 몇 번씩 다시 읽어봤다. 별로다. 내 글은 쓸 때 모습 다르고 나중 모습이 너무 다르다.

눈사람 같다. 막 만들었을 때가 젤 이쁘고 오래 지나면 녹아내려 내가 봐도 정말 별로다.


유명한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부른 노래 장면을 토크쇼에서 틀어주자, "방송 녹화 중에 뛰쳐나가 방송이 중단되었다."라는 기사를 보고 백번 공감했다. 그는 자기 작품을 찍고 나서 다시 보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보면 스스로 형편없으니까.


글도 작가의 입장에서 태어날 때가 가장 예쁘다.

글이 자라서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도 운명이 있다. 스스로 진화하고 스스로 죽어간다.

독자 세명을 만나고 사라지기도 하고 편집자에게 발견돼 책이 되기도 한다.


지난 글 "결혼. 이혼할까요?"는 그렇게 내 브런치 글 실험실에서 탄생하였다.


매일 내 이야기야 뭐 일하고, 밥 먹고, 글 쓰고, 산책하고, 마트 가고, 화장실 세 번가고, 문자하고, 전화하고 잔다. 요즘은 그 모든 것을 가택 연금 상태에서 하니 내가 미국에서 진작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남은 가족들 방독면 사서 보내야 하나 고민도 하고, 나 홀로 자유 대한민국을 즐기고 있다. 암튼 쓸 이야기가 별로 없다. 도시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산에서 농사짓고 홀로 자연과 함께 하는 분들, 그야말로 삶과 자연이 벗하니(고생하시는 것도 알고) 그 깊은 울림이 있을 텐데 도시의 휴대폰 신자들은 그런 걸 또 읽지 않는다. 휴대폰 신자들이 지하철과 소파, 침대에서 여백을 즐길 때 보고 싶은 것은 평소 볼 수 없는 글, 유튜브 말고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다. Cctv를 마음 위쪽 모서리에 달고 생각을 촬영해서 던져주는 이야기 그런 것이면 좋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너도 그런 생각 하는구나, 아 공감해 "


솔직히 내 생각에 문학은 그런 것 아니다. 소수의 유튜버들이 돈 되는 일이면 다 찍듯, 시선만 끄는 이야기는 작품이 아니라 문학의 소음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걸 편집자들이 모니터 앞에서 볼륨조절 하고 있다. 맨 위의 최고 지휘관 플랫폼 경영자는 일의 성과를 보고 있다.

이곳에서 작가가 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여러분의 창작이 현재 출판 트렌드를 거스리는 제목과 콘텐츠를 가진다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비상" 이렇게 제목 붙이고 글을 쓰면 바로 아웃이다.

"하늘을 날며 자유를 배웠습니다 " - 나래의 여행 로그, 예쁜 사진 한 장.

왜 제목을 독자들의 관심을 받는 문장으로만 쓸까?

" 독" 독사와 독에 대한 글을 쓰고 투고하면 바로 또 아웃당한다. 차라리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가 좋다.

편집자가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검정옷에 동그란 안경. 그들은 작품성보다 우선순위가 손익분기 즉 구매자, 초판 2천만 원, 이걸 계산해야 산다. 또 대박작품을 만나야 회사를 유지한다. 작가는 많은데 서로 쓸만한 사람은 없는 셈이다.


작가는 자유롭게 내 것을 쓰다가 그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더 낫다.

브런치는 그래서 글 놀이터 혹은 실험실이다. 여기서 한 명의 독자를 주목하고 그분의 관심과 반응을 보는 훈련도 가능하다. 훌륭한 브런치 작가님들의 고견이 더 있을 줄 안다. 오늘 평소보다 좀 일찍 일어나 객쩍게 썼다.


결혼, 이혼할까요? 이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인공 남녀에게 번갈아 이야기를 시켜 작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결혼할까요? 메시지는 돈에 취약한 세대의 약점을 찌르고 싶었다. 결혼이 돈인가? 하는 질문 하고 싶었다. 주인공 남자는 아버지를 잃고 적당히 돈을 가진 지방대 출신 대기업 청년이고 여자는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유학파 출신 대기업 다니는 노처녀다. 이 둘이 만나서 연애를 한다. 남자는 외모에 관심이 많다. 솔직히 그 나이에 쭉 빠진 각선미, 균형 잡힌 얼굴과 몸매 그것이 사랑 명찰 아닌가? 명찰 뒤에는 원산지 표시 가족관계 ( 니 아버지 뭐하시니? 친척 중에 국회의원 있다고? ) 학력, 직업 적혀있고 마지막에 생산자 표시 (소개한 사람) 그다음 선택하고 결혼하고 조금 지나서 이혼, 이런 순서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혼할까요? 는 연상의 여인을 만나 결혼한 직장인 두 사람 이야기다.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 아내에게 넋두리하는 연하 남편 완벽주의자를 가지고 구성하였다. 구성 초기부터 죽음이란 반전을 염두하지 않았다. 내 창작 포인트는 쓰면서 글이 스스로 진화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전체를 구상하고 쓰면 내가 재미없다. 나는 프로작가들이 쓰는 "글 노동"이라는 말에 반대한다. 나도 내 글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보면서 쓰면 정말 재미있다. 글짓기 교실 다니면 모두 똑같은 글밖에 쓸 수 없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한계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혹시 한 번쯤 다녀와도 자기를 잃으면 안 된다.


스티븐 킹이 글짓기 교실 다닌 것 같진 않다. 암튼 이혼할까요? 쓰다가 내 전문분야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렇게 이혼하려고 발버둥 치는데 서로의 약점과 문제를 공격하다 만약 이혼을 요구한 아내가 말기암 (너무 흔하지만 브런치는 길게 쓰면 안 읽기 때문에 근처에 말기암 밖에 없었다)에 걸린다면 하고 생각하다, 우리가 이혼하고 싶은 그 사소하고 작은 시작점, 사연들이 죽음 앞에 얼마나 초라할까? 말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다름은 개성인데 우리에게 다름은 죄악이다. 예를 들어 햄버거 주문, 햄버거 패티는 어떻게 구울까요? 뭘 넣고 뭘 뺄까요? 다 따진다. 우리는 뭐 넣고 뭐 빼면 편식이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요즘 국내에 자리 잡은 서브웨이, 미국에서 유학생들이 처음에 제일 어렵다는 주문 영어, 간단한 모법 답안은 " Everything on it" ( 다 넣으세요)다. 둘이 가서 주문하면 Foot long을 "Cut in half"(반으로 잘라주세요) 알면 된다. 한국에서 골고루 다 먹던 아이들이 뭘 고르냐? 그냥 주문만 성공하면 되지. 그런 것이 많이 다르다.


관계에서 다름이 부딪힐 때 이별이 발생한다. 부부가 같을 필요는 없다. 바로 그 작은 다름을 말하고 싶었다. 두 사람의 다름은 완벽주의자 남편과 덜렁거리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내다. 하지만 아내가 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혼을 하고 가족들 에게 죽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그것을 모른다. 이혼할 때 죽음 앞에 처럼 인간은 절박하다. 두 개의 절박함을 대칭시켜 놓은 것이다. 그때 서로의 다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혼은 태양계와 비슷하다.

억 년 전 달이 달 되기 전 지구와 충돌하고 그 잔해가 지구중력으로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부속물들이 결합해 지구에 밀물과 썰물 등등 우리에게 꿈을 주는 위성 달이 되었다. 결혼도 남자가 지구, 여자가 달이 되기도 한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처음에 부딪히고 깨지고 주변을 서성이며 동거하다 조화가 만들어진 거다. 아니면 부딪히고 깨져 다른 유성이 되기도 한다. 때론 태양 같은 남편과 아내가 만나 처음부터 궤도를 갖추고 잘 맞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결혼은 아마 확률 10% (너무 많은가) 안쪽일까? 열의 아홉은 부딪히고 깨지고 열과 소리가 난다. 치약 짜는 것으로 시작해 집안 욕으로, 혼수로 싸우고 과거 연인 때문에 갈라서고 다른 별의 중력에 끌려가다 바람피운다고 깨지고 갈라선다.


이런 사람도 있다. 태양과 아주 멀리 사는 목, 토, 천, 해, 명 같은 사람. 태양의 온기는 없지만 태양계를 돈다. 남편과 아내가 경제 공동체 궤도의 관계일 뿐 아무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다 언젠가 죽겠지. 이 찬란한 생명의 순간을 어둠에 숨어 자기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궤도에서 생존하다 우주에서 사라진다. 아깝고 분하다. 어떻게 보면 이혼하는 사람들 자기 소리를 가진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한 나머지는 너무 힘든데 화해도 못하고 목토 천해명으로 산다.


결혼을 앞둔 분들은 이 원리를 이해하고 신중하게 선택만 말고 신중하게 살아가기 도 해야 한다.

이혼했거나 이혼을 앞둔 분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궤도를 빨리 잡으면 좋다.

결혼과 이혼은 삶과 죽음처럼 존재의 양면성이다. 우주와 신은 양면의 조화를 슬기롭게 사용하라고 주문한다.

아무쪼록 슬기롭게 삶을 고민하는 브런치 작가님들을 응원하고 존중한다. 부족한 글을 조회해 주신 여러분과 궁금해하시는 한분 작가님께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의 삶이 찬란하게 빛나며 영겁의 시간을 조화롭게 헤쳐나가시길 이 작은 사람이 소망해본다. 건필을 기원하며.


* 혹시 이글만 읽고 어리둥절하실까 봐 안내드립니다.

우리 결혼할까요?(3부작), 우리 이혼할까요? (3부작)는 이미 발표되었고 제 브런치에 오시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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