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의 비밀

칼럼

by 강노아

올해 밀라노 동계 올림픽은 한 방송사의 독점중계 탓인지 유난히 흥미롭지 않았다.


정이 가는 도시 종로, 그곳에는 내 어린 시절이 녹아있다.

서울상공에 잘못 들어온 여객기를 향해 발사되던 대공포의 빨간 섬광을 종로에서 목격한 나는,

아직도 울렁거리던 그때의 공포를 기억한다.


지금 그곳엔 금은방이 모여있고 수많은 노인들이 오간다.

경제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모여 파는 것이 효율적인 것처럼

방송도 투표방송처럼 함께 중계해야 재미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꺼져가는 올림픽 관심의 불꽃을 되살린 것은 스노보드 가온이와 승은이의 패기였다.


기성세대 나랏말씀의 해석이 달라 서로 옳다며 총칼을 들이댄 순간,

군사독재의 나라는 총칼 앞에 맨몸으로 나선 젊은이들의 패기로 멈춰섰고


그 패기는 그 시대에 이미 폐기된 줄 알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관계가 분명하고 위아래가 없으며, 점점 핸드폰을 닮아 표정 없는 로봇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운영할 미래사회에 의심하며 걱정하고,

노후자금은 금으로 바꿔 장롱 속에 모셔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대답했다.


물론 가온이의 오늘을 만든 것은 흥민이 처럼 아버지의 땀과 수고가 함께 빚어낸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일이다.


전설이 된 클로이 역시 자랑스러운 선수생활을 마감하며 뭉클한 감동을 주었지만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포기하지 않는 패기.


나는 이 아이들 때문에 구정연휴 내내 대공포 섬광을 보듯 그들이 쏘아 올린 축포로

설레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자랑스럽고 훌륭해서 내내 눈물을 훔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서 세계인의 흙냄새가 난다.


세계인, 곧 지구촌 시민은 구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기 뿌리를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것에 능숙한 열린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외쳐왔던 세계화가 비로소 결실을 맺는듯해 뿌듯하다.

세계화는 조기유학으로 외국학위를 얻었다고 생기지 않으며

외국에 오래 살았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혀가 라면처럼 꼬부라져 영어에 능통해서 세계인이 아니고

엣지있는 패션과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계화는

내면이 무르익어

어느 나라에 가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자기 분야에서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의 능력은

경제, 과학, 문화, 예술, 스포츠 전반에서

인류의 삶을 고양시키는 여러 직업군에서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자리에서

작동 한다.


"출세했다"는 성공의 문장은 더 이상 세계인의 언어가 아니다.




젊어서 고향을 떠난 나는 지구로 귀환한 소유주 캡슐을 닮았다.

뜨거운 열기로 녹아버린 표면의 그을림,

고비마다 살아 이겨낸 흔적들.


어려서 고향을 떠난 연어도 그 모습을 닮았다.

연어의 피부는 상류로 소상하며 얻은 상처로 가득하다.


에미는 마침내 알을 낳고

거친 호흡으로 지구의 마지막을 기억하겠지.

하지만 에미는 두 손을 들며 제대로 착지한 거다.


싸움에서 이기는 우리 아이들은 자랑스럽다.


불굴의 의지로 패기를 뿜어내는 아이들은 감동을 준다.


이 아이들은 밤새워 휴전선의 철책을 지킬 것이고,


우주로 도약하는 로켓을 위해 늦은밤 연구실을 지키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배달 오토바이를 타며 꿈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와의 버거운 싸움에서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은 이겨낼 것이다.


오늘,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부끄러운 기성세대의 민낯과

재판결과를 기다리며

돌을 던지는 죄 없는 자들의 민낯을 함께 바라본다.


이 모든 역사는 더 높이 날기 위해 꼭 있어야 하며

인과응보의 우주법칙, 도돌이표도 기억해야 한다.


그래도 그토록 고대하던 우리의 세계화는

젊은이들의 패기로 앞당겨져

성큼 다가온 봄소식처럼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온다.


ps/


" 할머니! 높이 날 때 무섭지 않았어요?"

전설의 노인 최가온 여사가 대답했다.


" 라테는 말이야, 그냥..."

" 나한테 지기 싫었어..."

" 너도 할 수 있단다"


202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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