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은 이미 손님 맞을 준비를 완벽히 끝낸 상태였다.
모든 한국아파트가 그렇듯, 현관을 넘어 짧은 복도를 지나자 긴 소파와 대형 tv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그날 초대받은 사람은 모두 네 명, 우리는 같은 직장에서 부서는 다르지만 취미가 같아, 번갈아 가며 각자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 동호인들이었다.
일행 중 내가 가장 어렸지만, 직급은 가장 높았다.
집주인은 사적인 모임임에도 나를 스스로 정한 상석에 앉혔고,
우리는 거실 가운데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장황한 인사가 오간뒤 적막은 짧지만 묵직하고 강렬했다.
그 누구도 단단히 얼어붙은 어색함의 언어 결빙을 깨려는 이가 없었다.
사람사이는 흐르기 전에 먼저 얼어 있었다.
봄이 없다면 눈에 덮여 무심한 대상으로 전락하는 얼음처럼,
봄은 언제나 얼음을 잘게 부숴 자기 목소리, 그 물소리를 냈다.
사람사이의 얼음을 깨는 것도 그 처음을 만지는 봄 같은 사람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항상 오야에게 먼저 열려있었다.
" 집 찾는데 힘들진 않았나요?"
" 요즘 뭐 네비가 좋아서 어렵지 않습니다"
나보다 조금 연장자인 김 형이 대답했다.
한번 깨진 얼음은 사람사이로 졸졸졸 물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했다.
" 네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떤 건 엉터리가 많아요. 일분만 빨리 도착해도 길을 뱅뱅 돌린다니까요?"
" 아무리 그래도 네비는 목적지 하나만큼은 확실히 데려다줍니다"
그 대답은 모두의 얼굴에 작은 동의의 미소를 남겼다.
한 챕터가 끝나자 다시 침묵의 한파가 시작되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 온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사람사이는 다시 얼기 시작한다.
" 집이 엄청 깨끗하네요"
그때 온기를 건넨 사람은 나였다.
" 제가 좀 결벽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주방에서 음식 세팅을 마무리하던 그의 아내가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려보냈다.
" 전에 동창집을 방문했는데 나보다 훨씬 깨끗하더라고요. 저 사람 결벽이 있나 생각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깨끗한 것도 문제다 싶었죠."
우리는 그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투리가 짙은 박 형이 끼어 들었다.
" 하고 말도 마소, 우리 마누라는 병이야 병, 하루 종일 집안 청소만 한다니까, 그리곤 종일 중얼중얼 불평만 해"
"왜요?"
" 청소하느라 죽겠다고"
" 안 하면 되지"
" 눈에 걸린 데나, 뭐 멧돼지 지나간데나."
" 오염강박이네"
우리 모두는 큰소리로 웃었다.
"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동창집 다녀오는 길에 무슨 생각 한지 아십니까?"
모두는 궁금하게 그의 대답을 바라보았다.
" 아, 다음부터 더 더 열심히 치워야겠구나, 생각했지요"
그는 자기 옆에 자기 것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눌러 집어내며 말했다.
아주 잠깐, 짧은 침묵이 우리 모두를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처럼 만들뻔하다가,
땅이 녹아 야산에서 굴러 내린 바위가 얼음을 깨듯 "쩍"하는 소리가 났다.
박장대소 였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어깨를 치고,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집주인을 놀리듯 꼬나보았다.
" 식사들 하세요 "
안주인의 목소리는 깨진 저수지 얼음 사이로 물을 마시러 내려온 새소리처럼 흘렀다.
" 더럽게 좀 살아"
우리 중에 최고 연장자인 전 형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집주인의 어깨를 툭치며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