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화장실을 나서다 문득, 오늘 오후 내 민원 때문에 방문할 시청직원과의 약속이 생각났다.
" 아, 귀찮은 일이네. 오늘은 하루 일과를 어떻게 조정하지?"
요즘 단 몇 차례 심리학 영상을 보았는데 유튜브 알고리즘 Ai가 파리처럼 달라붙어 관련영상이 쏟아져 나온다. 귀찮은 일이다. 옛날엔 머리가 돌이라 그냥 두고 살면 되었는데 요즘은 머리가 두부로 변했다. 세레토닌, 도파민, 감정라벨링, 메타센싱등의 양념들이 두부뇌로 투하된다.
세상이 내 마음을 요리한다.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닌 척, 싫은척하면서도 이런 세태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간혹 아주 가끔 나를 요리하는 뇌요리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불안장애를 공부하다 보면 그로 인해 불안해진다. 정보는 지나치다.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직장을 내 팽개치고 유튜브로 쏟아져 나온다. 그게 돈이 되니까. 이제 광고나 정보는 구분하기 힘들다.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웠다. 옛날세상이 지금보다 맑고 아름다웠다.
소설가였던 국어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 웅덩이에 돌멩이를 던지면 바닥의 진흙이 올라와 흙탕물이 되지, 그런데 조금 지나 흙이 가라앉고 수면이 다시 고요해지는 순간이 있어. 바로 그 순간, 그게 관조야"
관조라는 단어는 내 돌머리에 깊이 새겨졌다.
매 순간 삶이 던지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가 내 마음 웅덩이에 닿을 때마다
나는 관조를 기억했다.
오늘 약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고 나는 일정을 그것에 맞게 조정했다.
일정을 조정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미팅이 귀찮은 일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이라면.
"유레카" 꿰 재미난 발상이었다. 가족들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가 새벽에 득도한 깨달음을 들려주자 나름 호응이 괜찮았다.
어쩌면 나는 하루 중 처리할 일들을 문제로 이해하고 문제를 치워버리려고 산건 아닐까.
글쓰기와 인문학에 관심 많은 나는 우습게도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전혀 다른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대학원 논문지도 교수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자네 학부에서 뭘 공부했나?"
내 전공을 듣더니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글이 기계적이야."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전자적이지"
나는 요즘 Ai와 협업하며 기계끼리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기계 같던 나는 큰 문제를 만나면 몹시 당황하는 편이었다.
적성에 안 맞는 전자공학을 공부할 때도 (옛날엔 예상문제와 모법답안을 달달 외우는 암기를 공부라 불렀다) 나는 허옇게 밤을 새워 압축된 예상문제를 외웠다.
그리고 다음날, 졸린 눈으로 받아 든 기말고사 문제는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관식 열 문제.
" 아 망했다. "
이번에 성적이 안 나오면 겨우 얻은 장학금이 날아갈 상황이었다.
돌대가리를 굴렸다.
노답이었다.
그 순간 돌머리가 두부가 되더니 번쩍, 찰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발칙한 생각이었다.
1번부터 문제를 지우고 밤새 암기한 문제로 풀어나갔다.
2번도 내 문제로 바꾸고 10번까지 내가 출제하고 내가 답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마쳤다.
역시나 며칠 뒤 교수님 호출이 있었다.
죽을 각오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 너 구나"
그는 내가 예상한 대로 발칙한 답안지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내가 예상치 못한 해법을 제시했다.
" 내가 자네가 출제한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어. 잘 만들었더군, 잘 외웠고 하지만 안 되는 건 알지? 내일 내가 기회를 한번 더 줄 테니 따로 와서 재시험 보도록 해, F는 아닐 거야..."
고마운 교수님, 사랑하는 우리 교수님, 연신 꾸벅거리고
최가온 선수처럼 차가운 복도를 날아올라 가볍게 착지했다.
발칙한 나는 그 과목의 최종 점수로 C학점을 받았다.
F에서 C로 간 것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 인류의 도약과도 같은 일이었다.
인간의 삶은 지루하다.
어떤 이는 돈에 빠져 그걸 일이라고 가족 팽개치고 밤새 고스톱판에 살아가듯 일을 한다.
어떤 이는 권력에 빠져 그걸 잡으려고 온몸을 불태운다. 페어플레이 없는 그 판에 뛰어들어 반칙도 윤리도 내던지고 주변인들을 도구로 만든 뒤 걸리면 사정없이 죽여버린다.
거대한 나라가 단 한 사람 미치광이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지는데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민중은
집단으로 뒤집기 하는 우리 같은 힘이 없어 현대판 히틀러에게 폭력을 당하고 산다.
자업자득이다.
어떤 이는 사랑에 빠지고 어떤 이는 종교에 빠진다.
님들 앞에 있어 보이려고 온갖 가면을 옷장에 걸어놓고 살지만 민낯은 문둥이다.
바이블에 등장하는 시리아의 국방장관 나아만 장군도 갑옷뒤의 문둥병을 숨기고 살았다. 그는 병을 고치려고 선지자를 찾아가지만 그의 치료방법은 자기를 내려놓는 자기 혁신의 순종 방식이었다.
청년 때는 우수개소리로 나아만을 나만 장군이라 부르며
나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의 언어유희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 요즘말로 나르시시스트다.
인간은 사는 게 지루하다.
그래서 문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면 정말 문제다.
나는 문제를 재미로 인식하기로 나와 합의했다.
물론 그동안 재미있는 일로만 산건 아니지만 이젠 먼저 재미를 예측해 본다.
머리가 하얘진 예상 기출문제 아니라도 문제를 만나면
한 개씩 내 페이스로 내가 갑이 되어 문제를 다스리면 그만이다.
이 깨달음을 서른에 알았더라면 지금쯤 내가 최초의 한인 미국대통령이었을 텐데
아깝다.
"한인 미국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이란과 북한의 핵폐기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는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유력합니다, 지금까지 Cnn 노아 케인이었습니다."
미팅을 마친 시청주무관을 골목 앞까지 배웅했다. 그는 젊었고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 문제는 잘 해결될 것 같았고 오늘 만남은 생각보다 참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