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이별하다
겨울을 풀고 봄을 묶었다.
얼핏 보면 봄은 풀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운동화 끈을 매듯 봄은 쓰려고 묶는다.
작년 겨울을 묶을 때 단단히 저며 놓았던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화분을 위한 비닐하우스,
뒷마당 헛간의 보온비닐,
흙을 보호하려 덮어놓았던 부직포,
꽃을 기다리며 전지 해둔 장미가지.
한국의 시골은 할 일이 태산이다.
도시남이 난생처음 맛보는 시골은 잃음보다 얻음이 훨씬 많았다.
나는 자연을 벗하며 공감과 소통을 식물에게 배웠고
작은 집의 노동에서 돈을 벌던 노동보다 더 귀한 품삯을 받았다.
철학자가 되었고
명상가가 되었으며
기상학자도 되었다.
이대로 살아간다면
죽음을 넉넉히 받아들일 용기도 생겼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진심으로 후원하고 응원한 가족 덕분인 것도 잊지 않는다.
얼마 전,
아직 봄꽃이 얼굴을 내밀기 전
동면을 잘 이겨낸 이모님 부부를 찾았다.
전화로 안부만 묻던 그 집에
처음으로 며칠 머물렀다.
팔십 대 노인이 구십 대 노인을 돌보는 풍경.
일찍 혼자되어 요양병원에 모셨던 작고하신 내 어머님과
그 풍경이 달랐다.
두 사람은 간수 없는 커다란 아파트에 수감되어 있었다.
로봇이 청소하고,
세탁기가 빨래하고,
식기세척기 정수기 대형 냉장고 대형 Tv
없는 것이 없지만,
그들에겐
보호자가 없었다.
둘 다 보호받을 사람이지만
자식들은 함께 살지 않는다.
그들도 손사래 치며 따로 사는 게 낫다고 자신하지만
그네들의 삶은 만만치가 않다.
늙으면 몸이 낡아 헐거워지고 뇌에서 쉰내가 나겠지만
인격마저 미천해지는 것은 정말 곤혹스럽다.
이모부는 가정적인 남자였고 이모는 부지런한 여인이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경전을 읽고
기도를 드리지만
삶은 정반대 길로 그들을 밀어낸다.
휴대폰은 들고 있지만 사용할 줄 몰라
기계가 조롱하는 노인이 되었다.
나는 아직 AI가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것에 익숙하고
" ~~ 하실까요? "라는 젊은이의 기형어법을 사용하는 것도 인내하며
그들의 틀린 것을 조율해 사용할 힘이 남아있지만
어쩌면 기계들이 어눌한 노인을 무시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무는 동안
노인은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계속 물을 내려
그 옛날 한강이 넘쳐 수해 당하던 놀람과 비명을 재현하고
이른 새벽 나는 119 소방대원처럼 출동을 했다.
사고수습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음날 새벽에는
이모부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하는 소리에 전쟁 난 줄 알았다는 이모의 비명이
이모부의 낙상보다 더 무서웠다.
병원은 두 개의 갈비뼈 골절이라는 대일밴드를 붙여주었다.
사건을 일으키는 쪽은 더 늙은 어르신이고
사건을 수습하는 쪽이 덜 늙은 어르신이지만
덜 늙은 사람의 정신상태도 이전 같지 않다.
이모는 불안장애를 품은 소녀가장 같고 조울증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매일 새벽 기도하는데 왜 그럴까?
신이 결국 저들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는 할까?
죽음뒤에 내 팽개쳐질 육신을 곱씹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봄을 만나 여름의 것들을 풀어놓는다.
이것저것 분주하다 옷걸이의 겨울옷이 눈에 스친다.
"옷도 바꿔야겠네"
매고 풀고 우리는 평생을 그렇게 산다.
어느 날부터 무엇을 맬 때 너무 꼭 매지 않기로 했다.
부부도 너무 꼭 매면 이혼할 때 힘들고
부모도 너무 꼭 붙들면 떠나보내기 힘들다.
조금은 느슨하게 매고 푸는 게 이모저모로 좋다.
실내온도가 높아지자 기름보일러가 더 이상 돌지 않는다.
때가 되면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듯
때가 되면 육체도 자연스럽게 벗고 싶어 질게다.
현대인은 삶이 벗으라고 명하는데 너무 오래 외투를 부여잡는다.
외투 안쪽엔 행여 자식이 버릴까 아파트 집문서 욱여넣고
바깥 주머니엔 사용할 줄 모르는 휴대폰을 움켜쥔다.
명품가방, 가발은 있어 보여야 그나마 대접받는 사회를 살아서,
나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를 더 사랑해서,
죽을 때까지 그 족쇄를 차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노인의 정글을 며칠 다녀온 뒤
얼마동안 내 마음이 무척 수척해졌다.
다시 돌아온 내 네버랜드에서
나는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잘 매고 푸는 자연처럼
살살
자연스레 살다 보면
내가 노인의 시간을 만나
내 육신을 벗을 즈음에는
그리 아프지 않다는 것을
정직하게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