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빠르기

아다지오 Adagio

by 강노아

성질이 급해서 화가 자주 나고 눈에 걸리는 것이 많다면 삶의 속도 문제다.


한국에 여동생은 큰 키에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다.

그녀는 항상 갑으로 산다.


특별하게 갑부 딸도 아니고 이대 나온 여자도 아닌 데 가는 곳마다 상전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항상 자신만만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시비가 붙으면 지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마음이 여리고 약자를 배려하며 타인에게 희생하는 여자인 것은 사람들이 모른다.


조카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 대기업에 입사해 귀국했다.

미모는 엄마를 능가 하지만 성격은 엄마를 이기지 못한다.


" 엄마는 쌈닭이야!! "


다투면 그렇게 말하고 백화점 물건 바꿀 때는 엄마를 찾는다.


나도 여동생 덕분에, 집을 구할 때나 물건을 살 때 심지어 가족여행을 갈 때도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융숭한 대접 받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 하고 부딪치는 일이 생겼다.

정말 가벼운 일에도 그녀는 자주 얼굴을 붉혔다.


" 아 진짜 오빠, 주차를 왜 이리 못해! "


미국에서 널찍한 주차장에 정면 주차가 익숙한 나는 후면 주차가 정말 어려웠다.

웬만하면 여기서 운전을 안 하지만 장거리는 가끔 한다.

그때마다 잔소리 포함 직선적인 언어 싸대기를 그녀에게 맞는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그녀는 어릴 때 나의 위중한 병치레 때문에 어머니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동생은 자주 혼자 집을 지켰다.

혼자 지낸 어린 시간들이 상처가 되었을텐데 그녀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거친세파 탓인지

마음은 순둥인데 행동은 여전사 원더우먼을 닮았다. (진짜 얼굴도 원더우먼처럼 생겼다)



" 나랑 얘기 좀 하자"


그날은 강아지 산책을 같이 하다가 심하게 싸운 다음날이었다.


" 넌 그 성질 안 고치면 쓰레기야, 그리고 니 행동은 갑질이 아니고 꼴값질이야, 알아?"


전날, 뛰는 강아지와 앞서가던 그녀가 배변을 치우려고 보니 리드 줄에 달린 배변봉투가 다 떨어졌다.

가방을 멘 나를 찾았는데 길이 어긋나 내가 보이지 않자 그녀가 화를 내고 다툼 끝에 내가 한 말이었다.


집에서 말고 밖에서 식사를 하자 했다.

몸에 밥심이 돌고 단것을 먹어주면 사람들 대부분은 목욕탕에서 때 불린 것처럼 유들유들해진다.


" 어제 심한 말해서 미안해"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 나도 미안해"


" 오빠가 어제 일을 생각해 봤는데, 네 삶의 빠르기가 너무 빠른 것 같아"


삶의 빠르기라는 단어 때문에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빨랐다.


처음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한쪽이 서는 줄이고 다른 한쪽은 걸어서 올라가는 줄인 것을 몰랐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가는 것을 무슨 일이 일어나 도망가는 줄 알았다.


사실 나도 그 속도에 적응하느라 같이 뛰어다녔고 투자자를 만나도 빨리빨리 성과를 이루려고

성급하게 만난 그들 때문에 실패를 거듭한 일도 많았다.


횡단보도 대로에서 난생처음으로 유도선수에게 패대기치듯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따라 잡느라 같이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날 횡단보도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 세상속도를 포기한 순간, 나만의 고유한 빠르기를 되찾았다.


알레그로 Allegro(빠르게)에서 아디지오 Adagio(느리고 침착하게)로

속도가 바뀌자

삶은 놀랍도록 풍요로워졌다.


환승역에 달려가는 군중을 피해 천천히 , 횡단보도 삐리릭 경고음 전에 여유 있게 천천히,

회사 일도 아다지오 Adagio로 조바심 내지 말고 침착하게.


문자 대답이 늦게 와도 새해 인사를 받고 응답하지 않는 무심한 이들에게도 무시하나? 보다 사정이 있겠지.





" 내 삶의 빠르기 가 빠르다고?"


그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그런가 혼돈하듯 되 물었다.


"네가 반응하는 시간이 짧다 보니 네 기준에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건에 화가 난 거야.

탁구처럼 반응 말고 테니스처럼 해봐.

천천히, 상대 말을 바로 받지 말고 한 템포 죽이는 거지."


내 말에 수긍하는그녀의 눈빛이 느껴졌다.


" 사실 내가 반응이 좀 빠르지"





처음 미국에서 언어에 적응하느라 학교에 다닐 때나 일을 할 때 상대 마음을 읽기보다 한국어로 맴도는

생각을 영어로 번역해서 말하느라 참 허둥댔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발음이 교정되자 미국인 들은 나를 외국인에서 내국인 취급했다.

영어가 더 빠르고 더 어려워졌다.


시민권 시험 때도 구두로 몇 가지 테스트 하는데 1번 문제부터 틀렸다.


"국가 최고의 법은 무엇입니까?

What is the suprime law of the land"


( 나는 긴장하면 머리가 하얘지는 버릇이 있다 )


"모른다" 고 하자 장난하지 말고 빨리 가자고 했다.

"정말 모르겠다"고 하자 이민국 직원은 "C"라고 말했다.


" 아, 헌법 The 'C'onstitution"


바쁘니까 앞으로 장난하지 말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진짜 몰랐는데 내가 알만한 사람으로 보인 게다.


내 속도로 생각하고 내 속도로 말하면 최악의 경우를 피하게 되는 것을 인터뷰하며 알았다.

긴장하면 머리가 너무 빨리 돌고 불필요한 정보량이 너무 많아 뇌는 연산하다 멈춘다.



" 무엇이든 천천히 하려고 해 봐 "


우리는 그날 이후 아다지오 Adagio로 "삶의 빠르기"를 공유했다.


혈연, 부부, 국적, 피부색 관계없이 나와 삶의 속도를 같이하는 모든 사람을 가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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