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추억
직장인이 된 나는 시간 감각이 떨어질 정도로(*지난 2장 참고)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게 되었다. 그렇다고 맨날 일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나는 아직 어렸고 고된 노동 후에는 달디단 밤양갱 같은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내게는 고등학생일 때부터 펜팔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펜팔을 아시나요? 지금은 젊은 세대들에겐 낯선 단어일 수 있겠다. 그때는 얼굴도 모르는 이와 편지나 sns, 삐삐 호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가능했던 시기다. 핸드폰을 갖고 있던 친구들도 있었으나 내게는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삐삐뿐이었다. 20살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되었고,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온기를 나누던 그 친구와 약속을 정하고 드디어!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자라면서 주위에 이성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적은 딱히 없었다. 같은 반 친구들, 교회 오빠들처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해 오다 성인이 되어 아주 가까운 이성을 마주치게 된 첫 순간이었다.
첫 만남의 장면을 자세히 쓰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그가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잘생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인기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농구를 하고 있을 때나 학교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자신을 보러 온 여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지 허풍인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 눈에 이미 그가 베리 핸썸은 물론이고 키가 187센티미터나 되었다. 그러니까 나와는 30센티미터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는 말이다. 가까이에선 고개가 아플 정도였다. 얼굴은 어찌나 하얗고 손은 또 얼마나 크고 예쁜지.. 내가 메시지를 주고받던 그 친구가 맞을까?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첫눈에 반했다. 라는 식상한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그건 거짓이 아니다. 반하는데 몇 초가 흐르지 않았다. 급격히 커진 마음이 쌍방이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혼자만의 그린라이트였다.
일방적인 마음을 애써 숨기며 친구라는 이름으로 1년, 2년 시간이 계속 흘렀다. 그동안 나도 다른 이성 간의 썸과 같은 것들이 오갔고 여전히 그와는 종종 연락을 이어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특별한 사건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같아졌다. 쌍방의 그린라이트가 켜졌다. 내가 그의 외적인 면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거와 달리 그는 나와 친구로 지내면서 마음을 조금씩 키운 게 아닌가 싶다.
첫 연애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무르익어 결실을 맺었으니 잔잔할 법도 한데 우리의 연애는 매 순간 널뛰기를 했다. 하루는 좋고 하루는 나빴다. 친구였을 때와는 달리 삐걱거렸고 자꾸 서툴렀다. 그래도 한 번 연결된 실은 단단히 묶여 서로를 놓지 않았다. 밤낮이 구분 안 갈 정도로 힘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퇴근을 하고 나선 그를 만나러 갔으니 단단히 서로에게 빠져 있었음은 틀림이 없었다. 피곤해도 웃을 수 있었고, 일이 쉬는 날에는 함께라서 더 기뻤고, 못 만나는 날에는 핸드폰이 뜨거워질 만큼 늦은 밤까지 통화를 하곤 했다. 마치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처럼, 서로에게 시선을 맞췄다.
함께 모든 계절을 겪으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미숙했던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졌고, 만나는 동안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투박했던 모서리들이 다듬어졌다. 우리는 함께 나이가 들었고 좀 더 현실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각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그저 아련한 기억으로 남은, 나의 20대 시절 일대의 기록,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다음을 있게 해 준 날들이었다.
사랑이 끝나고 나니 2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