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빌런이었을까.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래, 모든 사람이 따뜻할 수는 없는 거다. 모든 이들이 착하고 의로우면 세상에 상처나 결핍도 없겠지만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성경에도 ‘의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죄악이 가득했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은 멸하겠다고 했다. 단, 아브라함이 살려달라고 간곡히 빌었기에 그곳에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없었고 결국 그 곳은 멸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떤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는 반드시 빌런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취업하기 전 아르바이트나 봉사를 나갔을 때, 나는 스스로를 제법 일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일의 흐름도 빨리 파악하고 고객들이나 사장님의 니즈를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크게 혼나본 적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잘해서라기보다는 맡은 역할이 아르바이트생이었고 봉사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업무가 단순했다. 큰 기대나 책임감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직장과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었다. 사회는 그렇게 심플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른 상태로 신입이 되었다.
평범한 오전 업무 중이었다. 상사가 한 번 말한 지시사항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네?” 하고 반문했을 때였다. 그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의 큰 데시벨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더 언성을 높일까 겁이 나 허둥지둥 일을 했다. 힘쓰는 일이 많을 때도 막내인 내가 앞장서고, 행사를 할 때도 가장 먼저 차출되었고, 어렵고 불편한 곳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그게 불만은 아니었다. 단지 인간관계가 이렇게 어려운 지는 그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직장이 친목 동아리도 아닌데 끼리끼리 뭉쳐 동맹을 맺는 걸 자주 보았다.
처음 직장인이 된 내가 무슨 업무 지식과 얼마의 사회성이 있었겠나 싶다. 나는 그야말로 ‘바보’였다. 잘할 수 있을거라 여겼던 믿음이 날마다 쪼그라들었다. 한동안 계속해서 자잘한 실수를 하며 반성과 자괴감의 횟수는 늘어갔다. 그럴 때마다 애써 희망회로를 돌리며 ‘금방 나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되뇌이곤 했다. 그래야 좀 살 것 같았다.
견디는 시간이 쌓여가고 한 달,, 1년,, 시간은 계속 흘렀고 결국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업무 능률이 올라갔음은 물론이며 나와 결이 맞는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신입 티가 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났다.
말귀를 못 알아듣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치던 모습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어쩌면 첫 직장이라는 낯선 무대 위에 정말로 사오정이 되었던 20대 초반의 나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직장 이후로도 다양한 빌런들을 마주쳐야만 했다. 좀 무뎌지고 다듬어진 직장인이 되어도 항상 쉽지 않았다. 어쩌면 직장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나 또한 빌런이었던 때도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아니길 바란다. 확실한 건 그 시간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생존능력이 향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