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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Dec 17. 2017

삶은 여기에 있다

목하의 삶

소셜미디어와 나


한국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사회연결망 서비스, Social Network Service), 영어명 소셜미디어(Social Media).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의사소통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을 뜯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데, 한국명은--비록 영어지만--하나의 산업적으로 접근하고 있고, 영어명은 의사소통의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비스, 즉 용역이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용역用役 [발음 : 용ː역] (명사)
<경제> 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 ‘품2’으로 순화.
(출처: 네이버 제공, <표준국어대사전>)


물질적 재화, 돈과 같은 교환가치의 형태가 아니라 노동력을 사용하여 제공하는 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는 개념이 용역,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다. 이에 반해 영어명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하나의 의사소통 구조로 이해한다. 


medium (n.)
1580s, "a middle ground, quality, or degree," from Latin medium "the middle, midst, center; interval," noun use of neuter of adjective medius (from PIE root *medhyo- "middle"). Meaning "intermediate agency, channel of communication" is from c. 1600. That of "person who conveys spiritual messages" first recorded 1853, from notion of "substance through which something is conveyed." Artistic sense (oil, watercolors, etc.) is from 1854. Happy medium is the "golden mean," Horace's aurea mediocritas.
(출처: etymonline)


미디어(media)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단어 medium의 복수형으로 본래 '중간(자)'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의미는 "영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person who conveys spiritual messages)", 즉 영매다. 그 옛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결정을 행할 때는 귀신에게 뜻을 물었고 그 귀신과 인간 세계를 이어주던 존재가 영매다. 미디어란 즉 의미가 거쳐가는 채널을 의미하며, 의사소통이 가능케 되는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연결망 서비스라는 명명이 어떤 형식으로 재화를 생산하는가에 주목한 경제학적 명명 행위라면, 소셜미디어는 메시지, 의미가 전달되는 형태에 주목한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명명 행위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유의미한, 무의미한 메시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전달되고, 읊조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현실로부터 유리


이런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어디 때,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마치 프로토스의 신경삭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을 공유하고 그를 통해 대화를 하고 공감하거나 반박하거나, 심지어 조롱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신경삭 (명)
<스타크래프트> 등장하는 개념으로 프로토스의 의사소통 체계인 칼라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신경조직으로 프로토스들은 이 신경삭을 통해 그들 특유의 힘을 내거나(사이오닉 에너지), 칼라 네트워크를 통해 오해가 없는 완벽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셜미디어는 신경삭처럼 완전하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또한 참여자를 현실로부터 유리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바로 앞에 있는 이와 대화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 연결돼 대화하고 삶을 공유한다. 이제는 너무 밀접하게 붙어 있어 가상현실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지만 소셜미디어는 여전히 가상현실의 공간이고 실제 공간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현실에서 떨어지고 만다. 당장 가까이 있는 카페를 나가보아도 서로 대화하기보다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붙든 채로 웹서핑을 하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연결시키지만 동시에 우리를 배제시키고 있는 셈이다.





욜로,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최근 한국에서 가장 유행했던 단어를 꼽아보면 그중 하나는 욜로(YOLO)일 것이다. You only live once(당신은 딱 한번 살뿐이다)라는 문장의 첫 영어 철자를 딴 욜로는 미래를 대비해 현재를 너무 억압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유명한 라틴어 명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또 다른 표현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비록 해외에서든 한국에서든 이 의미가 다소 변질되어 현재를 브레이크 없이 즐기는 표현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이에 대해 이 줄임말을 처음 만든 래퍼 드레이크가 사과하기도 했다), 욜로라는 단어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욜로족(族)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탄생시킨 현상의 뿌리에는 '너무 고민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고 싶다'는 정서를 담고 있다고 본다.


즉 내가 지금 감각하는 현실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 그것이 욜로로 변주된 카르페 디엠이 삶의 태도 혹은 철학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종종 카르페 디엠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또 다른 라틴어 명구가 제시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이 명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것들은 부질없으며 신 앞에 겸손하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사실 그 의미만 따지고 보면 카르페 디엠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다. 어차피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은 반대편에서 살펴보면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메멘토 모리의 그 유래를 봐도 개선하는 로마 장군이 들었던 말이라고 하니 인생 최고의 순간이 메멘토 모리라고 봐도 괜찮을 것이다. 즉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공통적으로 은유하는 바는 지금 바로 여기라는 정신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요즘 우리는 지금 여기를 즐기는 의미로 소셜미디어에 나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상황을 보면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나는 이만큼 행복하다, 이만치 즐기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키워드를 해쉬태그(#)로 남기면 전 세계의 카르페 디엠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삶을 정말로 즐기고 있을까.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기회가 있어서 초등학생들의 연주회를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든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이 연주하는 순서가 되면 그들을 스마트폰으로 혹은 아이패드로 촬영하기에 바빴다. 연주회란 본디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연주를 들으면서 동시에 연주자의 표정, 기술 등을 보는 것이 재미일 텐데 촬영하는 부모들은 비디오를 찍기 좋은 자리를 확보하느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저렇게 자리다툼을 하면서 찍고는 그 현장감,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 혹은 실수하는 해프닝 등을 즐길 수 있을까, 그리고 저 동영상을 얼마나 찾아볼까 하는 생각은 연주회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차라리 스마트폰 액정을 거치지 않고 내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현장은 훨씬 감동적이지 않을까 하는, 꽤 꼰대스러운 생각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목하의 삶


목하(目下)라는 한자어가 있다. 그 뜻을 바로 풀면 '눈 아래'라는 뜻이고, 국어사전에 수록된 뜻은 '지금 당장'이다. 내 눈에 어떤 매개체, 미디어도 거치지 않은 것이 목하가 의미하는 바다. 당장 거리가 멀다면 전화와 같은 매개체를 거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매개체도 거치지 않은 것이 가장 왜곡이 적은 것이다. 심지어 내 눈을 거치는 정보조차 나의 인식, 사전 지식 등을 거쳐 왜곡이 되는데 중간 매개를 하나 더 놓는다면 그 정보의 왜곡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너무도 뻔한 교장선생님의 훈화 같은 말이지만 삶은 지금 여기에 있다. 목하의 삶을 사는 것, 지금 당장을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삶이 아닐까. 삶은 매개되는 만큼 왜곡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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