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도에서 카페를 검색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역을 넣어 검색을 하다가 점점 범위가 넓혀졌다.
사는 곳과 점점 멀어진다.
의외로 화요일에 휴무인 카페가 많았다.
주차가 편하고 커피가 맛있다는 후기를 찾아 그 카페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는 길에 주유도 할 수 있을 그런 위치에 있는 카페.
이번에 온 곳은 파주 '커피 한 조각'이라는 카페다.
검색해 보니 리뷰가 많아서 믿어보기로 하고 일단 출발했다.
도로변에 위치한 카페는 아담한 편이었다. 주차자리가 많진 않았지만 내 자리는 있었다. 그게 중요하다.
카페에 들어서니 먼저 온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인 코코넛 스무디를 시키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2층에도 자리가 있어 올라갔다. 오픈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텅 비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음껏 찍었다.
갤러리카페처럼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어 멋스러움을 더했다.
나무 모양의 조형물도 있었는데 빛과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저 나무 뒤에 숨어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그림이 걸려있다. 굉장히 예쁜 카페인데 사람들이 적어 의아했다.
리뷰가 더 필요한 곳이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있었다.
빵과 소품들을 팔았는데 이 물건들을 올려두는 선반이 귀여웠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오면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까? 카페 주인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한 입 맛보니 달달한 커피맛에 식감이 느껴지는 코코넛이 더해졌다.
원래 차가운 음료를 잘 안 마시는 편인데 차가워도 달달함에 녹아 더운 여름을 말끔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는 앙증맞은 작은 화분들이 있었다.
이 화분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 읽은 책은 최진영작가의 신작소설 [쓰게 될 것]이다.
이 글이 연재되고 있는 <읽게 될 것>과 비슷한 이름. (가 훨씬 나중에 브런치북을 만들습니다만.)
책을 펼치자 귀여운 글씨의 엽서 한 장이 나왔다.
작가의 친필엽서다.
<최진영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단어의 뜻을 적은 듯하다.
[쓰게 될 것]에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쓴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수상작도 함께 실려 있어 이미 읽은 소설도 있었다.
표제작인 <쓰게 될 것> 은 전쟁을 겪는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전쟁이 참혹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아이만의 세상에서 나름 견뎌낸다.
나는 총의 쓰임을 알았다. 앎을 의심하듯 계속 바라봤다. 바라보지 않으면 총이 나를 쏠 것 같았다. p22
아이 혼자 남겨진 방에서 찾은 총. 이 총이 나온 장면에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엄마가 만들어놓은 주먹밥을 먹는 것조차 새에게 들통이 날까 쉬쉬 숨어서 먹는 아이에게 보인 총이란.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건 아동학대라고 해도 별 말이 없을 것만 같다.
엄마는 집을 나가 햇빛을 모으지. 밤이 될 때까지 바구니에 햇빛을 주워 담는다. 빈 바구니에는 다시 어둠을 모으지. 밤에 모은 어둠을 낮에 뿌리지. 어둠은 그림자가 된다. p27
아이가 만든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준다. 그러자 키를 재는 엄마.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성장을 생각한 걸까? 더 자란 아이.
전쟁은 끝났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돌아왔다.
전쟁은 끝이 없다. 악몽과 공황으로 재현된다. p37
할머니가 겪은 세 번의 전쟁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린 소설 중 가장 어렵게 다가웠다.
<유진>이라는 소설은 작년 이맘때쯤 필사를 하며 읽었던 책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홈 스위트 홈>이란 작품이 실린 책에 같이 실려있던 작품인데 꽤 인상 깊어 필사를 했었다.
다시 읽은 소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 최유진과 공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유진언니’ 이유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유진언니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는 공미의 말에 죄책감을 느낀다. ‘베네치아’ 매니저 이유진은 고고한 학같은 존재였다.
이유진은 댄스곡을 틀어놓고 막춤을 추는 야유회에서 혼자 진지하게 발레를 하는 사람 같았다. p57
무영처럼 대처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무영을 조금 밀어내는 시늉을 했고 무영은 바로 알아차렸다. 너도 별수 없구나 생각하며 무영이 먼저 나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p65
<ㅊㅅㄹ>
처음엔 ㅊㅅㄹ 이 뭘까?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첫사랑’이라는 걸 알았다.
서진은 부족함을 느꼈다. 말하면 말할수록, 울고 또 울어도, 사람들이 자기를 보듬어줄수록 갈증 끝에 소금물 마시듯 괴로움만 커졌다. p82
잘못 온 카톡 채팅내용을 읽으며 서진은 자신의 첫사랑을 되새겨본다. 어른 서진이 아이 은율과의 카톡 대화를 보면 아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꼰대라고 비웃지 않는다. 이 대화를 보며 계속 키득거렸다.
작가의 유머에 놀라며.
예측할 수 없이 폭발하고 밀려오는 감정에 위기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선배를 보며 아름다움의 개념을 뒤엎고 확장했다. 선배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럴수록 자기혐오도 짙어졌다. 사랑하는 마음은 서진에게 희망을 주고, 절망시켰다. p99
초성으로 대화하기. ㄴㄴ ㅇㄱ ㅇㄴㄴ?
소설 속 초성 내용을 아직도 모르겠다.
<썸머의 마술과학>라는 소설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소설이나 동화 같은 느낌이었다.
계절명을 이름으로 쓰는 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이름이 예뻐서. 봄아, 여름아, 가을아, 겨울아. 이렇게 부르는 것을 쓰는 것만으로도 예쁜 문장이 된다.
여름이는 언니에게 자신을 영어이름을 지었다고 썸머라 불러달라고 한다.
할머니, 3억은 별로 큰돈이 아닌가 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빚을 갚을 생각이 없거나 그보다 더 큰 빚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정말 난사람이다. p139
아빠가 가상화폐 사기를 당해 3억이라는 빚이 생겼다. 몇 십억짜리 집을 갖고 있지만 마이너스 1억이 든 통장을 갖고 있다면 부자가 맞을까?
이 가족에게 3억이라는 빚이 생겼다면 누군가에게는 3억이라는 이득이 생겼겠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의 세상은 썸머가 없었던 때와 썸머가 존재하는 때로 나뉜다. 썸머를 생각하면 미래를 무한하게 긍정하고 싶다. p153
자매가 서로 생각하는 게 예뻤다. 어리석은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표현한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기후위기를 한 가정에 대입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인간의 쓸모>라는 소설에는 ‘모부’라는 표현이 나온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한 간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였다. 부모라는 단어 대신 모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상당히 어색했다. 이제 많은 작품들 속에 이 단어를 보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 소설은 SF소설로 보인다.
모부들의 결정에 의해 유전자를 편집하여 최상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다. 그리고 안나를 만들었다. 갤럭시존, 타운존, 노고존 등 각자의 세계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노고존에서는 배아를 디자인하지 않는다. 기저질환을 제거하지도 않는다. 이곳에서의 생명은 어떻게 지켜지는지 궁금하다.
안나의 탄생 이후 안나의 생각은 전혀 고려 없이 모부는 무분별하게 인터넷에 사진과 영상이 업로드한다. 안나가 댓글의 의미를 알아챌 무렵 영상을 지워준다는 문구를 보게 되고 그 계정에 접속한 안나는 그 계정의 주인이 노고존 사람인 '노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노고존 사람들은 코뮌이라고 부른다며 이름에 자긍심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본 적 없어요?’라는 질문 때문에 안나는 심장이 아팠다. 생각을 안 해본 것 같아서. 안나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p180
이 세계에서는 종이책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종이책이 사라지고 전자책만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것마저도 다른 것으로 대체되거나.
그보다 높은 차원의 질문이 필요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노의 눈빛이 달라지고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의 농도가 변한다고 느꼈으니까. p189
타운존 내부에서만 맴돌았던 안나는 노아를 만나기 위해 코뮌으로 나간다. 용기를 낸 것이다.
집에서 작업을 하다 공유오피스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나름 열심히 시간을 지키려고 한다. 익숙해진 게으름으로 인해 쉽게 바뀔 순 없겠지만 석 달 동안 열심히 쓸 예정이다.
<차고 뜨거운>은 우리 부모님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모 부부마저 비슷하다. 그 시절은 다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시절을 지내온 부부들 중 다정한 부부도 많으니까.
엄마와 딸과의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왜 그렇게 말을 할까? 굳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될 텐데.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할 테고 나는 이제 누구의 기억에도 엉겨 붙지 않을 것이다. 지금을 생각할 것이다. p258
현재를 살고 있는 내게 필요한 말이다. 이미 지난 일들을 복기할 필요는 없다. 좋은 일이라면 모를까 나에게 해를 끼친 일들이라면 굳이 되새길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중요하다.
또 소설 속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