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복무하다’를 읽고
“나는 이제 공자의 삶에서 노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군자의 미덕으로 삼았던 논어적 삶을 떠나려 하는 것이죠...... 내면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원리를 찾고 그 원리 속에 일체화하는 노력을 하면서 살려고 해요.”
최근 언론의 행태를 보면 결코 좋은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거짓 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내는 건 양반이요, 악의적인 제목과 자극적인 내용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레기’에 비교가 되는, 결코 불의에 굽히지 않는 참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영희’님의 평전을 읽게 된 것은 과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깐깐하고 배짱 두둑한 모습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 아닌가 싶다. 1964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제안준비]라는 기사로 인해 수사를 받은 아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담당 검사의 뺨부터 때렸다는 대목에서 감탄을 자아냈다. 멋지다. 우리 아이들도 당당하게 키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계속해서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을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일기장을 통해 깨달은 아들, 리영희. 사랑과 헌신으로 자식을 키운 부모가 있었기에 대 인물이 자라난 것 같다.
끊임없는 도전과 배움,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이야말로 나약해지고 있는 내 정신 상태에 불을 붙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내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로서의 다짐, 한 인간으로서의 성찰, 한 국민으로서의 당당한 목소리를 낼 것을 깨우친 것 같다.
리영희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항상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
예로 그가 통역장교로 일하는 동안 만난 메인소령은 중상을 입은 병사가 처벌까지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모른척하지 않고 소리를 높였다. 리영희는 이 모습에서도 휴머니즘을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거의 대부분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창민간인학살 사건’은 이번에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이 묻히지 않은 것도 기자들 덕분이었다. 어디든 필요한 기자, 기자가 필요하다. 기레기가 아닌 기자.
리영희 삶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쉽게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그 삶에 따뜻한 연이 있다면 바로 아내였다. 첫 만남에서 에스코트를 배려있게 했던 통에 좋은 인연이 된 것이다.
올곧은 남편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을 터이지만 끝까지 옥바라지며 가족과 남편을 간수했다. 우리네 엄마들은 모두 이런 삶이었을까?
리영희가 ‘드디어’ 기자가 된 것은 합동통신 기자 모집공고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다. 이런 인물이 기자가 된 것에 참으로 다행이다.
오로지 진실에만 복무하겠다는 신념, 이것이야말로 요즘 기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한국역사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대구가 심각한 보수집단으로 표현되지만 4.19가 있었던 때만 해도 학생들이 분노하고 선두에 나서 시위를 했고 결국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랬던 대구가 요즘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고 미국에 그 사건에 대해 기사를 보냈다. 주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기사를 썼고, 발간했다.
읽어주는 대로 받아쓸 기자가 아닌, 기사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는 기자가 아닌, 6시 퇴근시간에 불렀다고 징징거리지 않을 기자가 이 땅엔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김재규 의사의 희생은 참으로 감사하다. 악의 축인 박정희는 물불가리지 않고 그냥 잡아가뒀다. 양심적 지식인까지. 이 시대에 꿋꿋이 살아왔던 국민들, 내 부모님, 선생님, 감사하다.
리영희가 조선일보에 입사를 했다는 대목에서 예전에는 조선일보가 그래도 정상적인 신문사였나보다. 지금 조선일보는 어떤 식으로 신입기자를 뽑을까? 혹독한 훈련을 통해 거짓기사만 배설해 내고 있는 조선일보가 한심하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곧 조선일보를 나오게 되었다는 대목에서 왜 안심이 되는 걸까?
‘정확한 호명, 정명, 진실에 접근하고 진실을 복원하는 시작점’이라고 일컫는 리영희 정명 중시사상도 배울 점이다.
이만큼 리영희의 글과 기사가 선동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구체적 증거와 자료제시, 어려운 관계를 쉽게 풀어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려운 말만 그득한 기사를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쓰는 것도 기자의 능력이다.
인간적인 면모, 권위적이지 않고 즐길 줄 아는, 그리고 어려운 이에게 도움을 줄줄 아는 리영희의 삶을 읽으니 꼭 한 번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로서나마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티가 있다는 것은 눈에 티가 끼어 있다는 뜻이며, 밖에 있는 티를 못 보는 것은 마음의 눈에 티가 끼어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라는 깨달음을 감옥에서 할 수 있을까?
구더기가 나오고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은 그런 쪽방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의 삶을 돌아보며 이제는 노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하늘에서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현생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글귀와 자료들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주)창비 주관, <리영희를 읽다, 리영희를 쓰다> 글쓰기 대회 장려상 수상작. 2021.12.20